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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를 먹어줘서 고마워

느린 아이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

by 레이첼쌤

아이는 어려서부터 유독 편식이 심했다. 보통의 일반 아이들이 말하는 편식의 개념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감각에 아주 예민하고 그래서 좀 낯선 식감도 굉장히 거부하는 성향이 있어서 웬만하면 먹던 것만 먹으려고 고집한다.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도통 새로운 걸 도전하려 하지 않고 맨날 먹던 것만 먹는다. 식감뿐 아니라 냄새에도 아주 예민해서 해산물이나 특정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은 거부하는 게 여전히 많은 편이다.


어른들은 엄마가 다양한 많은 음식을 충분히 노출해주지 않고 잘 해먹이지 않아서 편식이 있는 거라고 편하게 평가하지만, 감각조절장애는 발달지연이 있는 아이들에게 동반하는 흔한 증상이다.


친한 센터 엄마 중에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 쇼핑하듯 유명하다는 소아정신과 교수님들에게 몇 년씩 대기를 걸어놓고도 부지런히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정확한 진단명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이 있다. 나는 언감생심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여유도 체력도 되지 않는데 워킹맘이면서 어쩜 부지런히 열정적이게 움직일 수 있을까 존경심까지 불러일으키는 분이다.


그 엄마가 어느 유명하다는 소아정신과 원장님께 진료를 받고 올 때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후기를 탐색했다. 직접 그렇게까지 진료받으러 다녀보지는 못하지만 아이들끼리 나이도 증상도(?) 어느 정도 비슷한 처지라 왠지 우리 아이를 판단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탐욕스럽게 후기를 기다리곤 한다.


티브이나 유튜브에서 유명하다는 소아정신과 전문의를 만나고 와서도 딱히 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분들은 이미 대외적으로 너무나 유명하고 바쁠 대로 바빠서 그런지 일반 외래 환자를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봐주는데 쓸 에너지가 소진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여러 진료 중 어떤 한 곳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애가 햄버거 잘 못 먹죠? 그럼 자폐일 가능성이 높아요."


"....?!"


아마 몇 년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내 아이도 햄버거를 먹지 못했다. 아니, 먹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초1쯤이었는데 다른 보통의 또래 친구들과 한참 친구 만들어주려고 온갖 모임에 민폐를 끼치든 말든 따라다니면서 어울릴 수 있게 필사적으로 자리를 만들고 다니던 때였다.


어디 놀러 갔던 날 간단히 햄버거로 때우자고 해서 롯데리아에서 애들이 그나마 가장 먹기 편한 두껍지 않은 기본 햄버거를 사가지고 온 날이었다. 아이는 햄버거 먹기를 거부했다. 다른 애들은 각자 하나씩 들고 야무지게 잘도 먹는 그 햄버거를 아이는 어째서 거부하는 걸까. 내가 건강식 챙겨준답시고 이런 패스트푸드를 전혀 안 먹여서 그런 건가. 그래도 애들 입맛에는 냄새도 향도 유혹적이라 거부하기 힘들 텐데, 아이는 아예 시도조차 하기 싫어했다.


그냥 편식이려니 했다. 모두가 햄버거를 먹는데 그 사이에서 혼자 내가 싸간 주먹밥을 먹었다. 안 그래도 겉돌면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가 혼자서 주먹밥을 먹고 앉아 있으니 더 도드라져 보였다.

어차피 내 목적도 같이 어울리면서 노는 걸 바란 것도 아니고 다른 아이들 노는 모습이나 소통방식을 근거리에서 관찰이라도 해볼 수 있게 노출시키는 거라서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았지만 속이 상하기는 했다.


그런데 진료를 받고 왔던 센터 엄마가 유명하다는 원장님이 애가 햄버거를 먹기 싫어하면 자폐스펙트럼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는 말을 들으니 얼마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지.


햄버거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먹기 위해서는 입근육이 발달되어 있어야 한다거나 아니면 감각적인 이상이 없어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가 보다. 아니면 그 의사 말대로 정말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아이들이 많은 경우에 햄버거를 잘 먹지 못하는 걸 관찰했기에 일리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햄버거 안의 다양한 야채와 소스, 고기 패티의 조합이 발달이 느린 아이들에게는 못 견디게 만드는 어떤 것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후로 가끔씩 아이가 언제쯤 햄버거나 피자를 편하게 먹을 수 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아니, 거의 포기하면서 지냈다. 매일 즐겨 먹는 음식을 해 먹고 외식 메뉴도 한정적이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어디서 햄버거를 먹어봤는지 애가 어디서 피자를 한 조각 들고 먹어보더니 자신감이 붙었는지 아니면 맛을 정말로 느껴버린 건지 피자도 잘 먹고 햄버거도 가장 얇은 버전은 혼자 한 개를 뚝딱 먹는 것이다.


솔직히 햄버거 하나를 붙잡고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먹는 걸 본 날은 혼자 속으로 감격했다. 자폐스펙트럼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어려서는 자폐 증상도 동반되었겠지만 지금은 좀 벗어난 건가 싶기도 하고 온갖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분명 햄버거는 몸에 좋지도 않은 음식이고 자주 먹여봤자 득 될 게 전혀 없지만, 그래도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감사했다.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햄버거 하나 먹고 옴싹옴싹 베어 먹는 모습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느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생각지 못한 일상의 소소한 장면에서 감동도 느끼고 작은 행복도 만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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