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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트라우마 극복기

느린아이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

by 레이첼쌤

6년여전, 처음 아이를 데리고 롯데월드를 간 날이었다.연초라 네 살 딱지를 이제 막 떼고 다섯살이 된 시점이었다. 그 날 처음으로 아이가 어딘가 이상하고 아픈것 같다는 부모로서 객관적 판단을 하게 되었다.


롯데월드에 잠깐 머물렀던 한시간 내외의 그 시간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웠다. 아이는 놀이기구를 타는데 줄서서 기다릴줄을 전혀 몰랐다. 자기 뜻대로 안되면 울고 불고 땅에 드러눕고 생떼를 부렸다. 막무가내로 앞쪽으로 뛰어가서 먼저 타버린다든지, 겨우 줄을 기다린다고 해도 기다리는내내 짜증을 내고 못 견디게 징징댔다.


참 이상했다.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사진을 보면 다른 또래들과 활동할 때 줄서서 기다리기도 하고 자기 차례를 기다릴 줄 아는 모습같았다. 주말에 어디 데리고 다닐 때에도 그렇게까지 말이 안 통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롯데월드에서 보여준 아이의 모습은 한 마리의 망아지같다고나할까. 규칙을 전혀 지킬 줄 모르고, 지킬 의지도 없고, 아무거나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전혀 교육되지 않은 동물적인 상태. 아예 말이 안 통하는것도 아닌데, 말이 느려 답답해서 그렇지 뭔가 설명하고 납득시키면 이해하는 수준이었는데 어쩜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정말 처참했다.


흥분을 자제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아이는 바지에 오줌까지 싸버렸다. 소변 가리는건 한참전에 뗐었는데 참 희한한 일이었다. 바지가 오줌으로 다 젖어서 무겁게 내려앉는 상태인데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이거 타겠다, 저거 타겠다하면서 울고불고 하면서 뛰어다니를 애를 잡으러 다니느라 남편이랑 나랑 금세 녹초가 되버렸다.


이게 모두 감각과부하로 벌어진 일이라는건 나중에 어렴풋이 깨달은 사실이다. 감각조절발달에 장애가 있으니, 롯데월드라는 화려하고 재미난 자극이 주는 강한 감각을 전혀 조절하지 못하고 순간 아이는 말도 안 통하고 생떼만 부리는 상태로 돌입했던 것이다.


ADHD로 제대로 진단을 받은건 그로부터 이년 이상 지난 후였지만 주의렵결핍으로 인한 발달지연은 유아기 시절에 이렇게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걸 배웠다. 말이 늦게 터져서 언어발달지연에,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에, 감각발달장애, 소근육대근육 느림 등 이 증상들이 주의력이 약한게 주원인이었다. 물론 원인과 결과 전후 상관관계는 분명치 않다. 전반적인 발달 지연이 원인이 되어서 ADHD라는 결과가 나온건지, 처음에는 자폐스펙트럼이었다가 그나마 꾸준한 치료로 주의력 결핍이라는 증상만 남은건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되었건 그 날 롯데월드를 다녀오고 나서 남편은 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애가 어디 아픈것 같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이 말은 그간 애써 현실을 부정해왔던 나에게 쾅하고 망치로 두들겨맞은것처럼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다음주에 바로 소아정신과를 예약해서 검사를 받았다. 아마 이 때 롯데월드를 가지 않았더라면 치료와 진단이 더뎌졌을지도 모른다. 그냥 말이 좀 늦게 터지는거겠지, 설마 애한테 문제가 있겠어라고 애써 위안하면서 현실을 부정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통 사람들은 애가 그 정도로 뭔가 이상하면 진작에 감지했어야지, 하면서 훈수를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게 막상 내 자식 일이 되면 자꾸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되고 아닐거야라며 현실을 부정하면서 객관적으로 상황 판단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아닌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랬다.


다행히 롯데월드에서의 그 난리로 인해서 발달치료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후로 나의 정체성은 '느린 아이 엄마'로 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치료센터를 열심히 드나들기 시작하였으며, 예정에 없는 장기 휴직을 하면서 육아와 치료에 매진하고, 발달장애 관련 책자들을 독파하고, 느린맘카페를 하루에도 수십번 드나들면서 희망과 절망을 오가면서 살았다.


치료는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아이는 그 시절에 비하면 정말 용됐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사람이 되기는 했다. 애랑 평생 제대로된 대화 한 번 못할 줄 알았으나, 그 사이 신기하게 말도 터지고 의사소통도 가능해지고 또래랑 대화 한 마디 못할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결이 맞는 친구를 스스로 사귈 능력도 생겼다. 그 때의 유일한 소원은 공부고 뭐고 그저 남들처럼 건강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기였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나를 보고 밝게 인사하는 학생만 봐도 눈물이 터져나와서 죽을 것 같았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학교에 나와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정상발달의 아이들이 다 신기해보이고 나와는 전혀 관련없는 저 세상처럼 느껴져서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의 시간들을 통해 아이는 많이 성장했고, 나 또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게 된 것 같기는 하다. 물론 이런 식의 성장은 별로 원치 않지만.


갑자기 아이가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했다. 친구들이 에버랜드에 갔다왔는데 엄청 재밌었다고 했다며 서울에 있는 큰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다. 남편과 나는 이참에 그 '롯데월드'에 한 번 가볼까 싶었다. 용기를 내서 예약을 하고 힘들게 매직패스도 구했다.


몇 년만에 간 롯데월드에서 아이는 너무나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엄마인 내 손길이 필요없을 정도였다. 엄마는 어차피 무서운 놀이기구 잘 못타고 어지러워하니까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으라며 아빠랑 둘이 손 잡고 롯데월드를 누비고 다녔다. 과연 내 손은 거의 가지 않았고 의젖하게 아빠랑 이것저것 타고 다니며 얼마나 재밌었는지 나에게 후기만 일러주고는 했다. 감회가 새로웠다. 너무나 신기했다.


아이에게 여러 번 말했다. 여기서 너가 어렸을 때 그렇게 생떼를 부려서 엄마,아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나냐고. 너 몸통을 붙잡고 어쩔 수 없이 쫓기듯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우리에게 이 곳은 트라우마라고 솔직히 다 말해주었다. 그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아이는 번듯하게 줄도 잘 서고 규칙도 준수한다.


남편도 나도 이제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6년이 걸렸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간의 우리의 노력이, 그 시간들이, 그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의 생을 향한 의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인생을 롤러코스터라고 하나보다. 아찔하게 추락할 때가 있으면 어느 때에는 자기도 모르게 상승 곡선을 타는 때도 있나보다. 어느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참고 견뎌내는게 가장 중요한 능력 아닐까. 여기까지 온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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