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국이 월급도 못 주는 나라가 된 사연
미국 정부가 또 멈춰 섰다. 이번엔 43일이었다. 역사상 가장 긴 기록이다. 하지만 이건 돌발 사고가 아니라 수십 년간 진행된 트렌드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1980년대만 해도 셧다운은 하루 이틀 정도의 짧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1980년 5월 1일 민주당 카터 행정부의 첫 셧다운은 거의 점 하나로 표시될 정도다. 1981년과 1984년, 1986년의 공화당 레이건 행정부 시절 셧다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1990년 10월, 공화당 조지 H.W. 부시 행정부에서 3일짜리 셧다운이 발생했다.
전환점은 1995년이었다. 민주당 빌 클린턴 행정부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가 충돌하면서 11월에 5일, 12월에는 무려 21일간 정부가 멈췄다. 이때부터 셧다운은 '예산 협상 도구'로 자리 잡았다. 2013년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 때는 16일, 2018년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1월에 짧게 한 번, 12월에는 35일간 이어졌다.
그리고 2025년 10월 1일, 공화당 행정부에서 다시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셧다운은 이제 공화당이나 민주당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 행정부에서 4번(1980년 카터, 1995년 11월·12월 클린턴, 2013년 오바마), 공화당 행정부에서 6번(1981년·1984년·1986년 레이건, 1990년 부시, 2018년 1월·12월 트럼프, 2025년 현 행정부) 발생했다.
특히 백악관과 의회가 서로 다른 당이 장악했을 때 가장 긴 셧다운이 발생한다. 1995년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과 공화당 의회, 2013년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의회, 2018-2019년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하원이 그랬다.
일상적인 예산안 통과가 권력 투쟁의 무기로 변질된 것이다.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위해 정부를 인질로 잡는 게임. 그리고 한 번 성공하면 다음번엔 더 쉽게, 더 길게 시도하게 된다.
금융시장은 이제 셧다운에 놀라지도 않는다. 어차피 해결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연방 기관들, 급여를 받지 못해 생계가 막막해진 공무원들, 중단된 공공 서비스들. 셧다운이 반복될수록 정부 조직은 장기적 사고를 포기하고 단기 생존에만 집중하게 된다. 정치적 벼랑 끝 전술이 일상화되면 제대로 된 통치는 불가능해진다.
셧다운은 이제 미국 정치 시스템에 내재화됐다. 문제는 이제 '왜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더 오래 기본적인 정부 운영을 협상 칩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다. 그리고 그 대답이 늦어질수록, 미국의 통치 능력 자체가 약화된다.
정부 셧다운이 정치 무기가 된 미국, 세계 최강국의 민낯은 생각보다 취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