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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 홍수와 태풍이...

2025년 8월 25~27일

by 아이리스 H

그날, 밤새 빗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여름나라는 하루에도 비가 여러 번 오고

또 멈추고 하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바람이

아닌 듯 창문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사뭇 달랐다. 잠을 설칠정도였다.


속 커튼과 암막커튼을 다 치고도 빗소리는

무겁게 들렸고 밤새 내린 비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크고 거셌나 보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 ~~

도로가 침수되었고, 새벽비가 주룩주룩

하염없이 내렸다. 설마설마... 했는데


태풍과 홍수로 하노이는 물바다가 되었고

길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내렸다.

예고 없이 찾아온 불청객이라지만 이렇게

자연재해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인간임이 실감 났다.


다들 잘 지내고 있나요?


여름나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어느덧

9년 차가 되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인생

홍수와 태풍으로 3일을 꼼짝 못 하고

쉬어가며 몸과 마음을 충전했다.


비를 참 좋아했는데.., 비가 무서웠다.





아들은 6시 20분쯤~ 출근을 했다.

빗속을 어찌 뚫고 가려는지... 그때였다.

나간 지 10분 만에 문자가 왔다.


"엄마 외출하지 마세요 집콕하세요"

"아, 그래? 너는 괜찮아?"

"도로가 다 침수되었어요"

"고가도로를 탔는데 완전 주차장이에요"


"밤새 빗소리, 바람소리에 선잠을 잤더니

저도 비몽사몽이에요"

"졸려요, 차 안에서 자다 보면 가겠죠~~"

느긋하고 낙천적인 아들은 도로가

침수되고 난리 속에서 쪽잠을 자겠다고 했다.


50분 거리의 회사를 3시간째

고가 도로 위 차 안에서 멈춰 있다고 한다.

내릴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는 곳에서

출근차에 갇혀 있다며 고가밑은

물바다라고 전했다.


다행인 건

차 안에 빵 한 개와 물이 있으니

"걱정 마세요~도착하여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으니

빵도 물도 아껴먹어~" "네 ㅋㅋㅋ"


물길을 가르고 잘 가야 할 텐데....

도로에 보트가...


베란다에서 현실감 있는 도로 현황을

실시간 체크하고 사진을 찍는다.

빗물이 도로를 덮쳤다.

가다가 시동이 꺼진 채 서있는 차들...

오토바이가 빗속에 풍덩 빠졌다.


하노이 웨스트포인에서

옴마야! 이게 뭔 일이냐?

회사는 50분이면 가는 거리였다.

아들이 4시간이 넘도록 반만 갔다며

어이없이 생존신고를 한다. 하노이는

이곳저곳 아수라장이다.


못 간다고 말한들 차를 돌릴 수도 없단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2시간쯤 일하고 서둘러

집에 돌아가라며 3시에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란다.


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오는 길은 다행히 잘 돌아왔다며...




조심조심 마트에 가 보았다.

된장찌개에 넣을 두부를 사러 가는 길

어머나! 야채코너와 두부코너가 텅텅 비었다.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리더니...

참치캔 한 개와 쌈장 하나를 사고

한 개 남은 소중한 쪽파와 상추를 샀다.


아들이 좋아하는 집밥 메뉴는 참치쌈밥!

밥을 하고, 상추를 씻고, 참치캔을 따서

쌈장과 섞고, 마요네즈 한 스푼과

참기름 한 방울, 깨소금 두 스푼을 넣었다.

마늘 조금 쪽파도 조금 넣어 비벼두었다.


두부 듬뿍 넣은 된장찌개대신

꽁꽁 얼었던 어묵을 해동시켜 매콤한

어묵탕도 끓였다.

반토막 남은 귀한 호박전도 부쳤다.


며칠 전 친구에게 선물 받은 맛있는

배추김치도 잘게 자르고 밑반찬 없이

이른 저녁을 먹으며 무탈함을 감사했다.

"한 접시 더 주세요" 한마디에 미소가 번진다.

참치쌈장의 위로

배고플 시간은 아니었지만

출근길 힘들고, 애타고, 놀라고,

긴장했을 그 마음 아니까... 좋아하는

참치쌈밥으로 위로를 건넸다.

내일은 비가 그칠까?


먹구름 가득했던 날


하노이는 맑음이다. 길이 보인다.

홍수와 태풍을 이겨내고 복구 중이다.

잦아진 태풍과 비로 힘들게 버티고 있다.

그럼에도 일을 해야 하고

오고 가는 차들을 보며 희망을 갖는다.


길을 걸을 수 있음이 고맙고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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