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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by 강지영

- 선생님, 지금이 여름인가요? 가을인가요?

- 글쎄, 아침엔 가을인 것 같고, 한낮엔 여름인 것 같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네. 그래서 나는 기준을 세웠어.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면 여름이고, 매미 울음소리가 안 들리기 시작하면 가을이라고 말이야.

- 아, 그러고 보니까,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 그렇지? 여름 방학 때는 해가 져도 매미 소리가 들린 적이 있는데, 요즘엔 한낮에도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아.

- 그럼, 지금은 가을이네요.


3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쯤인가에 아이들과 나눈 대화이다. 여름엔 출근하자마자 에어컨을 틀었는데, 요즘엔 11시 30분쯤 지나서 차츰 더워지기 시작하면 에어컨을 튼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하교하면 끈다. 아이들이 하교한 텅 빈 교실에 혼자 앉아 있으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교실을 꽉 채웠을 때는 가을바람마저 느낄 틈이 없다. 수업하랴, 딴짓하는 아이 주의 주랴, 아픈 아이 보건실 보내랴, 무릎에 난 딱지를 긁어서 상처 난 아이에게 연고 바르고 반창고 붙여주랴, 가끔은 싸우는 아이 말리랴, 온몸의 신경이 풀가동된다.


-선생님, 배고파요. 밥은 언제 먹어요?

-배고파? 12시 10분에 먹어야 하니까, 조금 더 기다려.


어떤 아이는 1교시가 끝나고 배가 고프다고 언제 밥 먹냐고 묻는다. 하도 기가 막혀서 곧바로 대답을 안 해주면 졸졸 따라다니면서 묻는다. 초등 2학년 아이들 중 몇몇은 정확하게 시계 볼 줄을 모른다. 그러니 배는 고프지, 시계는 볼 줄 모르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 밥을 먹는지 답답할 것이다.


어느 날엔가는 아침 식사를 하고 온 사람을 조사해 보았다. 우리 반 26명 중에 밥과 반찬을 먹고 등교한 사람이 5명도 안되었다. 우유 또는 주스에 빵 또는 시리얼을 곁들여 먹고 온 사람도 10명이 안되었다. 그 외에는 우유 한 잔 또는 아무것도 먹고 오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 막 성장하는 나이에 아침 식사를 이렇게 부실하게 해서야 어떡하나.


-선생님은요?

이런 학생이 꼭 있다.

-나? 나는 삶은 달걀 두 개, 사과 한 개. 그리고 연두부. 또 감자나 고구마.

-그렇게나 많이요?

-그럼 많이 먹어야 힘이 나지. 그래야 학교에 와서 너희들을 잘 가르치기도 하고.

-아, 아...(끄덕끄덕)


중요한 것은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온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1교시가 끝난 9시 40분, 10시도 안 되었는데 배가 고파서 언제 밥 먹냐고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 분명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온 아이들이다. 아침 식사가 부실한 아이일수록 수업에 잘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주 짜증내고 자주 화내고 자주 싸운다. 왜 안 그렇겠는가.


우리 학교 등교시간은 8시 40분이다. 9시까지 아침독서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을 거의 지키지 못하는 학생이 한 명 있다. 그날도 그랬다.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를 불러 세웠다. 아침에 뭐라도 먹고 왔냐고 했더니 늦잠을 자서 그냥 왔다고 한다. 위아래 입술이 말라 있음이 보인다. 침 흘린 자국도 남아 있다. 세안도 안 하고 온 거다. 이불속에서 나와 옷만 갈아입고 학교에 온 듯하다. 가서 물이라도 마시고 오라고 했다. 그러니 어떻게 공부가 되겠는가.


예전에 우리네 어머니들은 이렇지 않았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밥하고 반찬 해서 아침밥 먹이고 도시락까지 준비해서 학교에 보냈다. 그리고 일터로 가셨다. 내 또래 사람들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하여 배탈이 나거나 특별한 문제가 있지 않는 한, 아침밥은 꼭 먹었고, 도시락도 꼭 꼭 싸서 학교 다녔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젊은 엄마들이 다이어트한다고 식사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장기의 아이들은 성인과 같은 다이어트가 필요하지 않다. 특별히 비만인 아이는 식이요법을 해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일반적인 식사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등교하면 좋을 것 같다. 특히 탄수화물을 줄인다고 밥보다는 빵이나 시리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한다고 하는데, 밥이 더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 반찬을 먹음으로써 고른 영양소를 섭취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되겠다.

KakaoTalk_20231026_041409533.jpg 가을 들판(초등2학년 협동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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