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픽사베이)
11일 아침, 한 학생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선생님, 이거요."
"응?"
"오늘이 빼빼로 데이잖아요. 그래서 선생님께 드리려고요."
"오호, 고마워. 근데 오늘 이걸 꼭 먹어야 해?"
"네, 이걸 안 먹으면 큰일이 일어나요."
"그래? 무슨 큰 일?"
"안 먹으면 죽는대요."
"뭐라고? 그럼 꼭 먹어야겠구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은 죽음이 맞긴 하다.
나중에 나누어 먹기로 하고 그 학생은 자리로 갔다. 1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에 우리 반 전체 학생과 한 개씩 나누어 먹었다. 과자가 늘 그렇듯이 한 개로는 부족하다. 아쉬워서 내 곁을 맴돌고 떠날 생각을 안 한다.
"누가 빼빼로데이를 만들었을까?"
내 물음에 학생들은 내가 원하는 답을 하지 못한다.
"빼빼로 과자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이 팔려고 만든 게 아닐까?"
나는 확실하지도 않은 말을 하고 말았다. 빼빼로 데이에 빼빼로 과자를 먹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그 학생의 말에 대한 응대라고나 할까. 내가 가끔 뒤끝이 있을 때가 있다.(웃음) 교실에서는 가끔 이렇게 검증되지 않은 말을 진실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서로를 믿고 애정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추석에 송편 먹고, 설날에 떡국 먹고, 생일에 미역국 먹듯이, 요즘 아이들은 11월 11일에 당당하게 빼빼로 과자를 먹는다.
이벤트라든가 하는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나였는데, 이제는 아이들의 기분을 망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찬물은 끼얹지 말고 같이 즐기려고 한다. 즐긴다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하고 빼빼로 과자를 나눠 먹는 정도로. 나이 들면서 고집이나 편견은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이번에는 확실한 사실을 말했다. 11월 11일은 '보행자의 날'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보행자의 날은 2010년에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라는 것이고, 걷기의 중요성과 걷는 이의 안전을 소중하게 여기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달력에도 쓰여있다고 하면서 확인까지 시켜 주었다. 그러면서 인간의 직립보행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이처럼 위대한 인간이니 뛰지 말고, 걷자고. 선생님 몰래 승강기 타는 것도 참자고, 계단쯤은 가뿐히 걸어 다니는 튼튼한 사람이 되자고 말했다.
보행의 날을 설명하면서, 실내생활지도까지 하는 게 초등교사다. 교사는 기회만 있으면 가르치려들고 틈만 나면 '잔소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초등교사를 '잘다'라고 말한다. '하는 일이 작고 소소하다'라고 폄하하는 사람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초등교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그 잘다는 말을 부정하려고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인정하고 넘어간다. 그래서 더 '작아지지' 않으려고 힘쓰는 중이다.
그 오래전, 딸아이가 돌 무렵이었을 때, 주저앉을 듯 말 듯하면서 혼자 걷는 모습이 생각난다. 그 감격에 빠졌을 때를 회상한다. 삼십 년이 넘었는데도 울컥하였다. 교실에 앉아서 내 얘기를 듣고 있는 이 아이들의 부모 또한 그러했으리라.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하고, 혼자 앉고, 기어 다니고, 그러다가 일어나고, 또 그러다가 손을 잡고 걷고, 그러고는 혼자 걸어가고. 그렇게 걸어서 학교까지 오고. 인간의 성장 과정을 생각하면 감격스럽지 않은 시점은 없다. 귀한 아이들이다. 이 귀한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나는 무한한 책임이 있다. 잘해야 한다.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 마음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 마음을 다잡고 하루하루 교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