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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의 첫 광고

모디르프의 편지#11 - 우리가 퍼뜨린 거짓말 (1)

by 빙산HZ
약속을 싫어하는 우리들이 설마 약속을 지켜 매주 화요일 너희들에게 연락을 할꺼라고 믿고 있었나? 기다리는 이들은 없었겠지만 약속을 지키는 걸 워낙 싫어해서 말이야.

그래,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어떤 것을 이야기할 때 ‘역사’와 ‘시초’라는 것은 늘 중요하니, 여기서 부터 시작해보자고.


광고의 역사.


이런 제목은 어떨까?


광고는 어찌보면 인간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기도 하지.

어떤 이들은 인류 최초의 광고가 도망친 노예를 찾는 광고, 또 다른 이들은 '매춘 광고'라고 하지.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역사에 기록된 것보다 훨씬 더 전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우리 대장이 너희 인류의 조상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광고’라는 것이 시작되었으니.

어쩌면 분류학이라는 인류의 첫 학문 다음에 발생한 두번째의 학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 때 가장 먼저 광고한 제품은 너희들 중 몇몇은 사과로 오인하는 그 열매이지.

정원의 주인이 따 먹지 말라고 했던 그 열매 말이다.



너희들은 ‘선악과’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지만,

풀어서 설명하면 ‘선과 악을 구별하는 지식의 나무’의 열매이지.


아직도 머리 속에 어렸을 때 본 그 그림- 뱀이 앞발에 과일 하나를 들고 있는 장면을 가지고 있다면,

어른이 되어서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거겠지.


너희들 중 누군가는 그걸 인간이 ‘지식의 나무’를 먹지 말라고 한 정원의 주인이 불합리한 거고 인간의 발전을 막으려고 했던 거라고 믿고 있지.


그 역시 우리의 전략이다. 너희들은 이제 스스로 ‘선과 악’을 정의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으니 말이야.


또 누군가는 왜 그런 것을 첫 인간들이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두었냐고 항의를 하지.

그게 바로 자유의지와 선택권이라는 것과 연관된다.


왜 그런 걸 잘 보이는 곳에 두었냐고?

그거야 그걸 볼 때마다 너희 인간이 피조물이고 그 ‘약속’을 제정한 존재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아닐까?


물론, 우리 역시 그 정원의 주인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고 있다고 할 수 없지.

너희들 중 누군가가 한 해석을 보고 읊은 것 뿐이다.



왜 거짓말이라고 부르지 않냐고?

거짓을 거짓이라고 부르면 그 역시 진실.

우리는 진실을 썩 좋아하지 않으니 ‘광고’라는 이름을 좋아하지.

그렇게 아주 처음부터 우리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제품도 진실을 전하는 것만으로 팔리지 않으니 ‘광고’라는 이름을 붙여 설명해왔다.


우리는 ‘지식’과 ‘철학’이란 이름으로 여러 ‘거짓’을 희망어린 메시지로 너희들에게 광고해왔다.

정원의 주인을 아는 이들, 그렇지 않은 이들 구분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믿고 적용하는 것이기도 하지.

그래, 오늘부터 한동안 친절하게 이것들을 알려주는 걸로 하지.




첫번째ㅡ 1. You can be whatever you want to be


‘너는 무엇이든 네가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어’라니.


너희들 중 최악의 인간에게도 최소한의 선이란 것이 숨어있고,

너희들 중 가장 뛰어난 인간에도 최소한의 악이란 것이 있긴하지.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건 정원의 주인에게도 불가능한 건데 말이야.


선, 정의의 기준이자 정원의 주인은 ‘악’이 될 수 없다.

스스로를 ‘진실’(the truth)라고 칭한 정원의 주인의 아들은 ‘거짓’이 될 수 없지.

이건 정의(definition)와 논리(logic) 상의 존재하는 것으로 능력의 한계나 제한의 개념과 다른 것이지.

‘전능all-mighty’라는 개념에 반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건 논리학에서 말하는 LAW OF NON-CONTRADICTION, 비모순율(非矛盾律)이라는 어려운 단어로 표현하지.

신은 동그란 네모나 세모난 네모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 바늘 하나에 천사가 몇 명이나 설 수 있을까-와 비슷한 류의 질문은 무의미하다. 물론 논리학을 배우지 않는 이들이 많아진 요즘 세상에 모르는 이들이 많겠지만.


그럼 you can become whatever you want to become 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바이오엔지니어링이란 분야를 발전시킨다해도

역사를 다시 쓸 수는 없으니 말이야.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미 남자로 태어난 이가 여자가 될 수 없지.

그건 아직 수정란일 때 결정되는 거라고.

화장이나 수술로 외형을 바꾼다고 해도 세포 하나 하나에 각인되어있는 성에 대한 정보가 있단 말이지.

아무튼 우리는 이 희망적으로 들리는 말로 절망으로 이어지는 착각을 심는 기회로 삼았지.

그걸 믿고 싶은 이들을 위해 성별에 ‘재정의’라는 전략을 써왔고.


인간이 수영을 좋아하고 잘하게 되서 빠른 ‘수영선수’가 될 수 있지만,

돌고래가 되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고 연습한다고 돌고래가 될 수 없다.


인간에겐 뛰어넘을 수 있는 ‘고난’과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오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가 없다고 믿는 게 희망이 될 지 고문이 될지, 계속적인 자기 파괴 시도가 될 지는 얼마나 빨리 현실을 깨닫는 가에 따라 달라지지.

만약 평생 잘못된 방향에 답이 있다고 믿고 계속 달린다면 그 삶은 결국 원하는 삶과 멀어지겠고 말이야.


Nothing can be what it is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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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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