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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저 건축과 갈 거예요.”
미미는 대학에서 건축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미의 성적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의 건축과에 입학하는 건 아주아주 운이 좋다고 하더라도 상당히 희박한 확률이었다. 계획을 잘못 세웠다. 일찌감치 준비해서 수시 원서를 넣었으면 조금이라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담임은 자신의 판단 미스를 어떻게 해서든지 회복하려고 일단 인서울을 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미미야, 이 성적으로는 건축과는 무리라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지? 우선 가능성 있는 다른 과로 입학해서 복수전공이나 전과를 노려보자. 아니면 편입이라는 다른 방법도 있고. 꼭 건축과에 가야만 건축을 공부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대학은 그런 곳이란다.”
“다른 과 가고 싶지 않아요.”
“처음부터 건축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해야 건축도 잘할 수 있는 거야. 다 이과 계열이니까 다른 공부를 먼저 시작하면 더 좋아.”
“건축 먼저 시작하고 다른 공부도 할 거예요.”
“미미야, 지금은 다 좋을 것 같지만, 네 생각보다 건축이 네게 맞지 않을 수도 있어. 건축과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니까.”
“건축과로 쓸래요.”
몇 번의 상담으로도 결론은 건축과를 지원한다는 미미의 말에 담임은 급기야 미래까지 걸며 협박성 발언을 하기에 이른다.
“너, 인서울과 아님의 차이가 얼마나 큰 줄 아니? 내가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잖아. 나 좋으라고 그러는 거 아니잖아. 지금은 모르더라도 인서울 안 하면 분명히 후회할 날이 오고야 말아! 그때 가서는 돌이킬 수가 없어요!”
안다, 다 안다. 인서울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건축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비싼 입학금과 등록금을 내고서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쥐어짜 내야 한다고? 그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 첫 학기 입학만 겨우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로 되어 있는 미미로서는 최대한 돈이 적게 드는 쪽을 선택하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싶었다.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거나 효도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미미의 고집이나 아집 같은 게 더 크기도 했다. 또 서울에서는 약간 떨어져 있지만 건축과로 입학하면서 1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걸 알게 돼서이기도 하다. 장학금이라니,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역시 어리긴 했다. 다 큰 줄 알았지만 19세는 경험이 부족하고 미래에 대해서 조금의 희망이라도 갖기를 원하는 나이다. 나의 미래는 남들과 다를 거라고 근거 없이 예상하는 어쩔 수 없는 10대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삶이라는 게 그다지 희망스럽지 않다는 걸 몇 년이 지나기도 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담임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지방 대학에 들어간 미미는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학교에 찾아가지 않았다. 물론 담임에게 연락을 한 적도 없다. 애정도 없지만 미안함이나 고마운 마음도 전혀 없다. 담임은 그저 원서에 도장을 찍어 준 미미에게 스쳐 가는 인연에 불과했다.
첫 학기 등록금은 대 주겠다고 약속했던 아빠는 입학금만 주려고 했다. 장학금에는 입학금이 포함되지 않고 등록금만 포함되어 있었던 거다. 하지만 엄마는 첫 학기를 도와주기로 했으니 신입생이 내야 할 입학금과 등록금 모두를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 입학에 들어가는 목돈의 부담을 줄이고자 조금씩 모으고 있던 적금이 만기가 되었으니 그 돈을 주면 된다는 게 엄마의 의견이었다. 아빠는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가는 애가 뭔 경제관념이 있겠냐고 하시며 그 돈을 그렇게 한꺼번에 줄 바에야 예치를 시켜서 나중에 돈이 필요할 때 그 통장을 주는 게 더 낫다고 지지 않고 반박하셨다. 물론 미미가 없는 곳에서 두 분이 끊임없이 언쟁하셨던 모양이다. 미미는 이 얘기를 나중에 엄마한테 들었다. 경제관념도 돈이 있어야 생긴다는 게 엄마의 또 다른 주장. 돈이 있어야 어떻게 쓰고 저축하는지를 알 수 있으니 딱 등록금 그 금액만큼만 주자고 했지만, 아빠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 딸 손에 목돈을 쥐어 줄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리셨고 결국에는 두 분이 타협안으로 200만 원이 들어있는 통장을 주기로 하셨다. 따로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는 미미에게 입학금이니 등록금이니 하며 오가는 백 단위의 금액은 상상이 되지 않는 뜬구름 같은 돈이었다. 부모님의 전쟁은 부모님의 몫이었고 그랬거나 어쨌거나 상관없이 미미는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친구 어머니께서 일하시는 마트에서 친구들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미미의 아르바이트 인생이 시작되었다.
“미미, 이과라며? 그럼 미미는 캐셔로 가고, 나머지는 매대 정리 파트로 가면 되겠네.”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이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미는 캐셔가 되었다. 캐셔는 마트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구매하는 상품을 계산하는 업무를 한다. 동네 마트였지만 작은 슈퍼는 아니었고 계산대가 서너 개는 있었던 걸 보면 어느 정도는 규모가 된다고 볼 수 있었다. 이과와 계산대 업무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계산대에서는 바코드를 잘 찍으면 됐고, 숫자를 잘 입력하면 됐다. 화면을 잘 쳐다보고 제대로 된 버튼을 누르면 됐다. 카드나 돈을 잘 받아서 영수증이나 거스름돈까지 잘 건네주면 거의 마무리 단계이고, 필요하다면 마트 고객 카드 포인트까지 잘 적립해 주면 되었다. 동네 마트다 보니 현금으로 계산하는 어르신도 많아서 동전이 늘 있었다. 문제는 ‘잘’이라는 단어에 있다. ‘잘’ 하기가 왜 이렇게 어렵던지. 미미는 손이 빠르지도 않았고 천천히 누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잘 못 눌러서 처음부터 다시 하기 일쑤였다. 최대의 난관은 결산이었다. 직원들은 오픈 출근이나 마감 출근, 두 파트로 나뉘어 교대근무를 했는데, 캐셔는 출근 시간과 상관없이 본인이 일한 시간 동안의 첫 금액에서부터 마지막 금액까지 수입과 지출을 포함해서 마감하며 남은 금액을 일치시켜야 했다. 몇 번을 세고 세고 또 세어도 돈은 늘 비었고, 맞지 않는 날이 잦았다. 제대로 했는데 왜 이렇게 돈이 맞지 않는 건지. 억울하고 우울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큰 금액이 비는 날은 없었지만 조금씩 소소히 비는 금액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비는 돈은 미미 자신이 받아야 할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막아야 했고, 한 달이 지나 월급으로 받는 시급제 아르바이트 비용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친구들은 마트 안에서 진열 일을 했다. 몸을 계속 움직이고 무거운 상품들도 날라야 해서 몸이 쑤시고 아프기는 했지만, 미미처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한 달이 지나면 딱 일한 만큼의 금액을 받을 수 있어 같은 시간을 일하고 친구들보다 적게 받는 미미는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억울했다. 남의 돈을 만지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동안 풍족하지는 않아도 크게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게 생활했던 게 엄마와 아빠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자, 자신이 조금 크긴 했구나, 뿌듯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집에 가서는 힘들다고 징징거렸지만 첫 달에 받은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식구들에게 치킨과 피자를 쏘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세 달을 꼬박 일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마트가 편의점이나 다른 카페 아르바이트보다는 시급이 높은 편이어서 어느 정도는 대학 생활 초기 용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시는 캐셔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첫 알바 미션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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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술 마시는 게 처음이라서요.”
“아, 그렇구나. 그래그래, 그럼 술 마시지 말고 안주 많이 먹어. 뭐 다른 거 시켜줄까? 다른 거, 음료수라도 마실래?”
공대에서는 신입생 환영회 때 술을 많이 마신다느니, 선배들이 억지로 술을 먹인다느니, 하는 대학가의 뜬소문을 무성하게 듣고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환영회 자리에 참석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선배들의 과도한 친절에 약간은 김이 빠지기도 했다. 공대 특성상 여학생 수는 적었고, 하루 종일 공부하고 밤새 작업하느라 연애할 시간이 없는 건축과 남학생들은 누구라도 여자를 귀하게 대하게 되었던 거다. 맛없는 술, 재미없는 대화, 불편한 관심에 지쳐 미미는 기숙사를 핑계로 자리에서 벗어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다들 거나하게 취해 횡설수설하고 있는데, 한 선배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군대에 다녀온 복학생이라고 했다. 엉망진창인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선배들과 반갑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그 테이블에 있는 신입생들에게는 술을 권했다. 취한 사람이 많았지만 다른 한 명의 멀쩡한 정신인 미미는 그 선배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구석에 있던 미미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여자가 세 명 들어왔다더니 여기에 모여 있었네. 건축과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우선 한잔씩 받아.”
“제가 술을 잘 못 마셔서요.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그래? 그러면 술 마시는 거부터 배워야겠네. 그냥 한 번에 쭉 삼키면 돼. 안주 여기.”
하늘 같은 복학생 대선배의 술잔을 뿌리치지 못하고 미미는 넙죽 받아 마셨다. 몇 잔 마시지 않았지만 어질어질했고 기숙사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다음날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미슥거려서 아침은 건너뛰고 침대에 누워 1교시 수업이 뭐였나, 생각하고 있었다. 교양수업이면 한번 빠지면 안 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전날 미미에게 술을 먹인 그 복학생 선배였다.
“어제 몇 잔 안 마셨는데 많이 취한 것 같더라. 괜찮니?”
“아니요, 머리가 빙빙 돌고 계속 토할 것 같아요.”
“나와, 해장해야지!”
해장은 기름기 있는 걸로 해야 한다며 선배는 미미를 학교 앞 치킨집에 데리고 갔다.
“이모, 얘 내 동생. 앞으로 잘해 줘요.”
“어머, 동생이 후배로 들어왔어? 둘이 똑 닮았네. 반가워요, 오빠가 여기 단골이야, 학생도 자주 보면 좋겠네.”
“이모, 우리 후라이드로 한 마리 주고, 무 많이 주세요. 양념 소스도 두 개 다 담아주고! 아, 계란찜, 계란찜도.”
“알겠어, 술 마실 거면 알아서 가져가.”
미미는 속으로, 이 선배 뭐지, 당황했지만 기름 냄새 때문에 속이 더 울렁거려 다른 생각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선배의 장담에 마지못해 욱여넣은 치킨과 무와 계란찜은 울렁거리던 속을 마음처럼 진정시켜 주었다. 이때부터 미미는 선배를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선배는 미미를 친동생처럼 어디든 데리고 다녔다. 선배들끼리 술자리에 데리고 가서 술 대신 안주만 먹게 했고, 교수님 일을 도와주는 자리에도 데리고 가서 자기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선배는 미미와 3살 터울이 나는 친오빠와 나이가 같았다. 친오빠와 그다지 가까이 지내지는 않았지만 집에 위아래로 남자 형제들이 있는 미미에게 선배의 거리낌 없는 행동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에 형제들에게 받아보지 못한 도움을 받는 기분에 마음이 편안하기도 했다. 친절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삶에 스며들어 곧 익숙해진다. 후배들을 잘 챙겨주던 선배는 의외로 외동이었고, 어릴 때 여동생을 바랐다고 한다. 복학 후 건축과 전 학생이 모이는 첫 모임이었던 신입생 환영회 날 구석에 있는 미미를 보았고,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권하니까 술을 넙죽 받아 마시고 취해 건축과에 오게 된 얘기를 하며 열변을 토해내는 모습에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거다. 미미는 선배 덕분에 학교생활에 적응이 수월했다. 아르바이트를 슬슬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선배 친구가 하던 조교 일도 무난히 넘겨받을 수 있었다.
조교는 마트 일에 비해 몸이 훨씬 덜 고됐고 학교 안, 학과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거다 보니 이동 시간이나 차비가 따로 들지 않아서 좋았다. 여름에는 시원했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신입생 조교에게는 선배 조교들의 뒤처리와 교수님들의 잡심부름이 주를 이루었지만 첫 알바에서 몸과 마음이 단련되어서인지 이 정도쯤은 버틸 수 있었다. 근무 시간도 길지 않았고 수업도 다 들을 수 있었고 저녁에는 종종 주어지는 일이 없어 공부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