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쓰는 밤>, 고수리
정아야,
올여름은 유독 더운 것 같아. 더운 날에는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어도 그렇게 시원하게 느껴지지는 않던데.
평소에 SNS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은 누군가의 사생활이 궁금해질 때가 있어. SNS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사진과 글은 행복해 보여. 아니면 반대로 지독하게 우울해 보이거나. 행복해 보이는 사진이 부러울 때가 있고 지독히 우울해 보이는 글에 내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에서 나름의 위로를 얻기도 해. 사람의 마음은 어쩐지 비슷한 면모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진짜 행복할 수도 있지만 행복을 바라면서 그러는 척하는 걸 수도 있고, 그 정도의 우울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강한 걸지도 모르니까. 내가 인스타그램을 한다면 책, 과자, 커피 사진을 잔뜩 올릴 것 같고, 긴 글은 좋아하지도 않고 잘 읽지도 않는다는 요즘 사람들의 경향과는 어울리지 않게 주저리주저리 말만 길게 늘어놓을지도 모르겠다.
자라면서 쌍둥이에 대해서 관심을 크게 둔 적은 별로 없었어. 우리는 이란성에 성격도 닮은 게 별로 없는 쌍둥이여서 그랬는지도 몰라. 어쩌면 주위에 우리 말고는 다른 쌍둥이를 본 적이 거의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보통 쌍둥이를 궁금해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 어린 시절에는 쌍둥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 요즘에는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시술이 많아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전보다 쌍둥이가 눈에 잘 띄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 길거리를 걷다 보면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종종 보이고 쇼핑몰에 가면 쌍둥이 유모차도 드물지 않게 스쳐 지나가거든. 그렇게 마주치는 아이들을 한 번쯤은 쳐다보게 되는데 이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호기심이 일기도 하고 그 부모는 이 아이들을 어떻게 기르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해져.
내가 좋아하는 어떤 작가님의 아이들이 쌍둥이야. 행사가 있을 때 멀리서 보기만 했고 직접 만나서 인사를 나눈 적도 작업을 함께 해 본 적도 없는 작가님인데, 작년이었나, 우연히 그녀의 신간 산문집을 읽고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졌어. 솔직히 그 신간이 아니었으면 다른 책들도 찾아서 읽었을 것 같지 않아. 세상에는 워낙 많은 책이 있고 나는 소설을 편애하니까 산문의 비중이 많이 적기는 하거든. 그녀는 솔직하고 따뜻한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더라. 나는 소설은 편안해도 산문 쓰는 걸 어려워하는데 솔직하게 모든 걸 내어놓는 걸 쉬이 하지 못해서 그럴 거야. 그래서 그녀의 글이 부럽기도 했고 좋기도 했어. 몇 다리 건넌다면 알고 있는 작가가 있을 거고, 소개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관계를 맺는데 적극적인 사람은 아니잖아. 그냥 좋은 사람 같다는 생각만 혼자서 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게 되었어. 내 관심을 인스타가 어떻게 알았는지 알지도 모르는 사람에 알람이 떴더라고. 그녀의 소박한 일상과 더불어 책 소개, 작업 노트, 강의 안내 등 다른 듯하면서도 하나의 결을 이루는 게시글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어. 사진을 통해서 또 사진과 함께 올라온 글을 통해서 그녀의 맑은 모습도 볼 수 있었어. 책 속의 그녀는 많은 아픔을 겪었지만 이제 일상의 그녀는 모든 걸 이겨내고 행복한 단계로 나아간 상태 같다고 해야 할까. 그녀에 대해서 내가 빠져들게 된 건 동영상 속의 아이들과의 장면 장면이었어. 아직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미취학 남아 쌍둥이들인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물을 대하는 장면이나 볼록거울을 보고 손을 흔들며 웃는 장면이나 씩씩하게 걷고 뛰다가 뒤돌아서 웃는 장면 등이 찍혀 있는 동영상이야. 그 속에서 엄마와 쌍둥이 아들들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어.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주 양육자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지. 하나씩 배우는 단계니까 표정과 행동과 말투를 따라 하게 될 거고, 주 양육자가 어른의 본보기라고 생각하게 될 거야. 처음부터 혼자서 알 수는 없으니까 어디에서든지 배우게 되는 건데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사람에게서 일 게 아무래도 분명하겠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쌍둥이는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우는 게 있어. 쌍둥이를 대하는 어른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한마디가 거의 다 비교에서 비롯된다는 걸 어른들은 잘 몰라. 그런 면에서 엄마와 할머니는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공평했다고 생각해. 이렇게 다른 너와 나를 키우면서도 각자가 쌍둥이로 하나가 아닌 각각의 인격체로 - 물론 아이를 어른처럼 대했다는 게 문제였을 수는 있지만 – 대해주셨으니까. 엄마도 할머니도 무뚝뚝한 편이었고 사랑을 넘치게 표현하는데 익숙하지도 않았지만 우리 둘이 독립할 수 있는 어른이 되도록 길러주셨으니까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해. 물론 더 아이답고 해맑게 자랐으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울 때도 있지만. 아무튼, 작가님과 아이들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만 보게 되기도 했어. 쌍둥이 여자아이였던 너와 나를 떠올리며, 쌍둥이 남자아이들을 바라보며. 나 혼자서 그녀와 가까워진 계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난 그 작가님이 좋아졌거든.
주말을 지나고 나면 작가님 인스타에는 종종 캠핑 사진이 올라오곤 해. 산으로 계곡으로 강으로, 장소는 시시때때로 바뀌었고 네 식구는 모두가 신이 나는 표정이야.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캠핑에 진심이던 네가 떠올라서 나는 자꾸만 먹먹해지기도 하고.
정아 넌, 캠핑 장비를 다 갖추고 있었어. 작은 텐트, 천막, 매트, 테이블, 의자, 버너, 랜턴, 침낭과 요리를 할 수 있는 작은 조리 도구가 들어있는 캠핑 키친툴 가방까지. 언제든지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차 트렁크 한구석에 꼭 필요한 도구들은 늘 준비되어 있었지. 산을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하니까 캠핑에도 진심이 될 수 있었을 거야. 일 박을 하지 않더라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캠핑장에 들어가 자기만의 공간을 만든 다음에 자연 속에서 편안함의 시간을 보내며 행복해하던 우리 정아. 종종 억지로라도 나를 데리고 갔지만, 나는 게을러서 그렇게 일찌감치 너를 따라나서는 걸 참 귀찮아했었어. 그곳에서 특별히 뭘 하지는 않았어. 의자에 편안히 푸욱 기대앉아서 나무를 바라보고 커피를 마시는 걸 넌 젤 좋아했고, 나는 의자나 푹신한 – 물론 아무리 푹신해도 내 방 소파나 침대보다는 불편했지만 – 침낭 위에 누워서 책을 읽는 걸 좋아했지. 날이 더우면 더워서 가고 싶지 않았고 싸늘해지면 추워서 가고 싶지 않았는데 각 계절의 운치에 좀 익숙해지라면서 너는 지치지 않고 나에게 캠핑을 시도했어. 막상 가서 자연 속에 있으면 시간이 멈추고 사위가 고요해져 조금 더 머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혼자서는 도저히 캠핑 갈 엄두는 나지 않아. 앞으로도 나는 캠핑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살아갈 확률이 높겠지. 시끌벅적한 캠핑장이 아니라 고요하고 각자의 공간을 갖춘 곳으로 다녀서 그런지 주위의 영향은 별로 받지 않았을 거야. 하루라도 자고 오게 되면 씻는 것도 그렇고 잠자리도 그렇고 불편하다면서 구시렁거리기도 많이 했다 나. 하늘의 별이 쏟아질 듯 많은 날도 있었고 밤늦도록 구름이 한가득 사라지지 않고 하늘을 메우고 있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날도 있었어.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따뜻한 침낭을 어깨에 덮고 보송보송한 담요를 무릎에 올리고 얼굴과 손에는 약간 추위를 느끼면서 따뜻하고 달달한 커피를 마시는 그 순간은 정말 좋았어. 너와 함께였기에 편안하고 더 따뜻했을 거야. 나 혼자 있는 장면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가 않다.
어느 여름날에는 가까운 계곡으로 캠핑을 간 적도 있었어. 여름인데 어디로 휴가도 가지 못했으니 계곡물에 발이나 담그자는 네 말에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 근데 그날이 너무 더운 날이었던 거야. 덥기만 하면 괜찮았을 텐데 습하기까지 해서 불쾌지수가 너무너무너무 올라갔던 그런 날이었어. 계곡에 도착해서 우리는 우리 공간을 만드는 데만 해도 땀을 너무 많이 흘렸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어도 시원해지지 않았고 그 땀은 마르지 않았어. 오히려 더 솟아났고 닦아내고 또 닦아내도 공기 중에 진득하게 덮여있는 습기에 온 피부가 끈적이기까지 했지. 발이라도 시원하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계곡물에 발을 담가도 깊은 곳으로 더 몸을 담그지 않는 한 가까이의 물은 이미 햇볕에 따뜻해져 있었고. 우리 둘 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표정은 굳어져 갔고 입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나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나 있어서 입을 열면 당장 싸울 것 같았거든. 그나마 큰 아이스박스 두 개에 얼음도 충분히 담아 오고 시원한 커피와 과일과 화채 등 이것저것 먹거리를 잔뜩 담아와서 다행이었어. 휴가처럼 가는 거니까 만들어 먹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쉽게 먹고 놀다 오자며 자연과는 어울리지 않게 햄버거와 너겟을 사 왔기에 망정이지 음식을 만들었어야 했다면 분명히 나는 화를 내고 말았을 거야. 너도 나에게 지지는 않았겠지. 보통은 네 인내심 덕분에 나 혼자서 짜증 내는 일은 많아도 우리가 싸우는 건 많지 않았는데 이날은 정말 아슬아슬했어. 우리는 아이스커피와 햄버거를 우적우적 먹으면서 조금씩 기분이 풀렸어. 얼음팩을 수건에 싸서 목뒤에도 문지르고 팔뚝에도 문지르면서 조금 더 풀렸고. 역시 배가 부르고 몸의 열기가 좀 빠져나가야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게 돼. 그러다 네가 갑자기 성큼성큼 물속으로 들어가더라. 점점 더 깊게. 발만 담글 생각이어서 래시가드도 제대로 챙겨 오지 않았었는데 허리까지 물이 오도록 깊숙이 몸을 담그더니 너무 시원하다고 당장 들어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수건도 있고 여벌 옷도 있기는 했지만 얼마나 망설여지던지. 결국에는 들어갔는데 계곡물이라 그런지 그 깊은 곳은 정말 시원했어. 계곡물이 마냥 깨끗해 보이지만은 않았지만 너무 더웠고 땀도 많이 흘렸으니까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할머니들처럼 물속을 슬슬 걸어 다니고 장난친다고 서로에게 물을 튕기면서 오랜만에 애들처럼 깔깔거리고 놀았네 우리.
올해는 너무 더워서 그런지 자꾸 짜증이 나고 집중도 잘 안되고 그래. 몇 해 전에 너무 더웠던 여름을 보내고 그다음 해 여름은 견딜 자신이 없는 거야.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데 코로나가 터졌고 카페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수도 없었어. 큰맘 먹고 중고지만 창문형 에어컨을 구입했어. 설치도 어렵지 않고 생각보다 괜찮다는 얘기를 들었거든. 물건을 소개해 준 지인이 설치까지 다 해주고 갔고 여름 동안 종종 잘 사용했어. 그런데 올해는 제대로 작동이 안 되네. 아무리 희망 온도를 낮추고 터보풍으로 냉방을 가동해도 실내 온도가 떨어지지도 않고 선풍기보다 뜨뜻미지근한 바람만 나와. 비도 많이 내려서 습한데 에어컨을 틀어놓아도 전혀 도움이 안 되니까 에어컨을 끄고 다시 창문을 열고 선풍기랑 에어 서큘레이터만 풀로 가동하고 있어. 샤워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하는지 몰라. 마지막으로 네가 살았던 집은 넓기도 했고 큰 에어컨이 있어서 쾌적했었는데. 삶의 질은 평범하고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거로부터 결정되곤 해. 에어컨이나 사람 같이.
정말로 삶의 질이 좋지 않은 요즘이다. 너랑 함께 시원한 곳으로 캠핑 가고 싶어.
미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