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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세계

by 현수진


자수를 하다 보면 내가 얼마나 손재주가 없는지 깨닫게 된다. 같은 도안 위에 같은 색의 자수 실로 같은 스티치를 놓는데도 결과물은 완전히 다르다. 실을 잘 다루고, 야무지게 수를 놓는 사람에 비하면 나는 어딘가 엉성하고, 늘 몇 퍼센트 부족한 결과물을 만들곤 한다. 매번 실이 엉키고, 최근 배운 기법도 금방 까먹는 통에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며 겨우 진도를 따라가기 바쁘다. 그래도 나는 프랑스 자수를 하는 시간이 싫지 않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몰랐던 세계를 배우는 순간들이 즐겁다. 수업이 끝나면 늘 진이 빠지고 허기가 몰려오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만으로 기쁘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어렵고 낯설어서 다 그만두고 싶다가도 아주 조금 용기를 내보는 것. 어려운 스티치를 깔끔하게 해내거나, 원하던 모양으로 마무리될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곤 했다.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세계와 조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난 몇 개월,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글을 쓰며 생각했다. 작가가 되는 건 보통 일이 아니구나. 퇴고를 할 때마다 두꺼운 벽에 머리를 쿵쿵 세게 박는 기분이었다. 진짜 내 이름을 건 책이 나오면 어쩌나 두렵기도 했다. ‘자신 없다’가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책은 나오지 않았고, 순식간에 길을 잃었다. 스스로를 다독일 에너지조차 남아 있지 않아서 그대로 멈췄다. 잘 됐다 싶었다. 이번 기회에 글쓰기 말고 완전히 다른 걸 해보자. 그렇게 시작한 것이 프랑스 자수와 펜 드로잉이었다. 드로잉 선생님은 친절했고, 수업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종이 위에 글자가 아닌 기다란 선을 그을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펜이 지나간 자리에 형태가 생기는 것을 목격하는 건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선을 그으면 그을수록 알게 되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과 그려보고 싶은 호기심은 다른 것이구나. 잘하고 있다고 늘 격려를 받는 나와, 선이 너무 깔끔하다,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받는 사람들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자수를 하며 바늘에 손을 찔리고, 펜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선을 그으며 완벽히 깨닫게 되었다. 내게 어떤 재능이 있다면, 그건 글쓰기뿐이라는 것도. 흐린 눈을 한 채, 삐뚤빼뚤한 스티치나 누가 봐도 엉망인 펜 선을 보며 만족하는 건 어쩐지 불편했다. 나는 낯선 세계를 떠나 원래 나의 세계로 돌아오기로 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상을 다시 선택했다.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프랑스 자수를 할 줄 아는 나. 펜 드로잉을 할 줄 아는 나. 내가 무엇을 잘하고 잘 해낼 수 있는지 알고 있는 나. 나는 지금의 내 쪽이 훨씬 마음에 든다.


글을 쓸 때마다 늘 기대와 실망,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갔다.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쏟아내고 나면 더 이상 쓸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이 남아있지 않았다. 글 쓰는 삶을 제대로 꾸려나갈 방법도 몰랐고, 대안도 없었다. 그저 글쓰기를 멈추거나 어떻게든 이어가거나, 선택지는 둘 뿐이었다. 사실 나는 글쓰기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다만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실패한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다. 절망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런 애매한 재능을 가진 나를 직면하는 시간을 통과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래도 계속 쓰고 싶냐고. 쓸 자신이 있느냐고.


그런 시기에 완전히 새로운 것을 해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세 달 동안, 자수를 하고 펜으로 그림을 그리며 낯선 세계를 만나러 가는 오전이 즐거웠다. 그저 무언가를 완성하기만 하면 되는, 완벽한 몰입의 시간이었다. 호기심을 세상 곳곳에 남겨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시시각각 일어나는 세상의 수많은 이해충돌과 현상들, 유행하는 음악과 새로운 시각의 영화,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책, 오래된 그림과 사진, 아름다운 공간, 나와 다른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의 대화.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점점 알게 되어서일까. 다양한 호기심을 주머니에 넣어두고, 앞으로도 계속 낯선 세계를 만나보려 한다. 그중 이야기가 될만한 것들은 소중히 모아둘 것이다. 쓰다 만 글, 대충 적어둔 메모, 짧은 단어 몇 개, 서툰 그림, 흔들린 사진, 하다 만 프랑스 자수 도안, 완성하지 못한 드로잉 스케치북. 나는 노트북의 빈 문서를 열고 이것저것 뒤엉킨 주머니를 열심히 뒤적이겠지. 그중 하나를 꺼내 열심히 글자로 바꾼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만든다. 이제는 안다. 글쓰기는 내게 있어 작은 희망을 찾는 과정, 기어코 세상 밖으로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시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세계를 지키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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