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대로 되란 식으로 하루를 흥청망청 보내는 요즘이다. 가만히 소파에 누워 있거나 지루해지면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뇌를 맡긴 채 휴대전화를 몇 시간이고 들여다본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그대로 잠이 든다.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소파에 누워 의미 없이 휴대전화를 본다. 그러다 문득, 시간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어느새 아이 하교 시간이다. 아직 제대로 밥을 먹지도, 씻지도 않았음을 깨닫고 급하게 욕실로 뛰어간다. ‘대체 오늘 하루 뭐 한 거지’하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하루. 이런 건 달콤한 휴식도, 아슬한 일탈도 아니다. 무작정 달리다가 걸려 넘어진 일종의 후유증이었다. 어떻게든 루틴을 지키려 애쓰던 나의 열정이 이런 후유증을 불러일으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 몇 달간 정말 열심히 살았다. 부지런히 운동을 하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틈날 때마다 글을 썼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를 정리하고 깔끔하게 냉장고도 비웠다. 1년 넘게 방치되어 있던 입에 맞지 않는 시어머님의 김치도 드디어 버렸다. 화장실 청소도 미루지 않았고, 분리수거도 꼬박꼬박 했다. 세탁기 청소를 하고, 베란다 정리를 했으며 매일 장을 보고 집밥을 했다. 아이 공부를 지켜보며 화내지 않았고, 많은 교육서를 읽으며 내용을 정리했다. 말 그대로 하루가 순식간에 흘렀고, 일주일이 금방 지났다. 가족을 돌보고 집을 정돈하는 건 나의 의무였고, 글쓰기는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둘 다 해내기 위해서는 시간의 틈마저 할 일로 꽉 채워야 했다. 그래야 전업주부인 내가 글을 써도 될까 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의무를 다했으니 그나마 죄책감이 덜했던 것이다. 그러나 루틴을 지키려는 애씀이 나를 옥죄고 있다는 걸 알 리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쉬거나 산책하며 초록을 눈에 담아야 했었는데. 피곤하면 하루쯤 운동을 쉬거나 집안일을 쉬엄쉬엄해야 했었는데. 무작정 열심이던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내 삶은 늘 그랬다. 계획을 세워도 금방 틀어지고 무너지는 건, 혼자 의욕에 넘쳐 무리한 탓이었다. 활화산처럼 화르르 타오르고 난 뒤 이내 지쳐버린다. 너무 열심히 살다 보니 오히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진다. 포기 1순위는 언제나 글쓰기였다. 내게 재능이 있을까. 이 길이 정말 맞나. 끝까지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주제에 하지 못할 이유만 먼저 찾곤 했다. 어디든 도망칠 준비는 늘 되어 있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내 삶에 어떤 패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열정이 솟는다. 절제하지 못하고 무리하기 시작한다. 에너지를 마구 쏟은 뒤 제풀에 지쳐 쓰러진다. 완전한 방전된 뒤 자책하기 시작한다.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며 포기한다. 노트북을 닫고 다시는 열지 않는다. 집안일이고 뭐고 만사 귀찮아진다. 책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또다시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다. 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못한다. 아직 오지 않은 아이의 미래라던가, 캄캄한 내 글쓰기에 대한 불안을 긁어모은다. 나란 인간에게 정말 이골이 난다.
글 쓰는 삶을 위한 루틴이 이런 식은 아닐 것이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기분이 오락가락하지 않도록 자신을 다독이며 매일 글을 쓰는 것. 이게 글 쓰는 삶의 핵심일 것이다. 나는 그저 좋다는 건 죄다 내 삶에 갖다 붙이고 있었다. 우선순위 따위 없는 일상. 내 삶은 그냥 되는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이쯤에서 제대로 된 정돈이 필요했다.
되도록 단순한 하루를 만들고 절대 무리하지 않기. 딱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고 재빠르게 정리한 뒤 제일 먼저 노트북을 연다. 가장 잘하고 싶은 것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다. 뭐든 좋으니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쓴다. 점심을 챙겨 먹고 가볍게 운동한 뒤 할 수 있을 만큼만 집안일을 한다. 에너지를 한꺼번에 쏟지 않는다. 가능한 선을 지키는 하루. 오늘의 루틴이 아닌, ‘오늘의 절제’를 지키는 일에 집중한다. 의욕만 앞선 채 되려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더 이상 되고 싶지 않다. 내 삶에 글쓰기가 천천히, 잘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어깨와 손목에 힘을 빼고, 느슨한 마음으로 쓰는 글이 오히려 나를 글 쓰는 삶으로 자꾸만 밀어 넣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