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과 아침에 동네 한 바퀴.
국수거리에서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짐을 풀자마자, 나는 홀로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낯선 마을의 풍경도 궁금했고, 하루에 채워야 할 걸음수도 많이 부족했다.(매일 2만 보 웃도는 걸음을 걷기에 발끝은 밖을 향하는 것 같다)
마을 어귀에서 들려오는 물까치의 울음소리가 낯설면서도 반갑다.
담장을 넘어 기울어진 감나무에는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달려 탐스럽기 그지없다.
유난히 감나무가 많은 마을인지, 물까치들이 감을 쪼아 먹다가 불쑥 나타난 이방인을 보곤
‘낯선 자가 왔다’는 듯 때에 때 거리며 서로 신호를 주고받다가 이내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린다.
“미안하다. 맛난 저녁식사를 방해했구나. 어서 와 다시 먹으렴.”
감나무 아래 잠시 멈춰 서 감상하던 마음을 접고, 나는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듯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지붕 위에는 늙은 호박 둘이서 다정히 기대어 앉아 포근함을 선사한다. 어스름한 노을빛이 스며드는 저녁 마을은 '연화마을’이라 적힌 표지석을 통해 단아한 이름을 건넨다.( 마을의 형세가 연꽃과 같다 하여 연화촌이라 불렸다고 네이버가 말해주네요.)
달빛이 살짝 번지는 저녁길을 거닐며, 이 마을은 어떤 이야기를 품었을까 두리번거리는데
곳곳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가 오히려 미안할 만큼 마을은 고요하기만 하다.
오늘 산책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내일 아침 다시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기로 한다.
이른 아침, 살며시 눈을 뜨자마자 다시 가을 속으로 들어섰다.
싱그러운 바람이 스치는 가을 아침,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새소리만 가득한 이 고요함은 마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하다.
엷은 안개가 걸린 마을을 지나, 대나무 숲이 보이는 옆 마을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대나무의 고장답게 대숲은 신비로울 만큼 깊게 펼쳐져 있어 자연스레 발길이 머문다.
밤에 보았던 감나무들이 아침 햇살 아래서는 더욱 또렷한 색으로 다가온다.
작고 낮은 감나무 한 그루는 가지가 휘어질 듯 열매를 품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경숙 언니가 감나무를 좋아하시지.”
생각이 스치자마자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 가며 사진을 담는다.
가을은 역시 결실의 계절, 잘 익은 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넉넉해진다.
늘 푸른 대나무 숲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비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숲이라 여겼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가운데 난 길이
마치 대나무로 만든 터널처럼 깊숙이 이어져 있다.
곱게 가꾼 정원이 딸린 집도 보이지만,
어젯밤처럼 사람의 그림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마 밤엔 너무 어두웠고, 지금은 너무 이른 탓이겠지.
덕분에 낯선 이의 발걸음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을을 온전히 누빈다.
안개가 걷혀 가는 둑방 위로 올라서자 ‘영산강 자전거 종주길’이라는 표지가 눈에 든다.
아, 그래서 안개가 짙었구나.
갈대가 빽빽하게 자란 탓에 강물은 보이지 않지만,
허공을 훠이 훠이 날아가는 백로를 보니
저 새는 분명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중일 것이다.
고요한 아침을 혼자 걷고 있다는 느낌 속에서
노란 산국과 쑥부쟁이와 인사하고, 잘 익은 모과 향을 스치듯 올려다보며 걷는다.
함께 여행을 하면서도 홀로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좋은 벗들이 있어 무한 감사하며
가을을 온전히 내 안에 들여온 시간이, 한없이 흐뭇하기만 하다.
*이제부터 댓글창을 닫으려고요. 언제나 무한 사랑을 주시는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댓글창을 통해 더욱 소통해 주시는 마음 너무나도 잘 알지만 모두 바쁘신데 읽어주시는 것만도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모든 작가님들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사랑합니다~♡
*photo by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