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호러

by 이지속

지금 살고 있는 낡아빠진 아파트의 전세 기한이 다가온다. 나는 대구 사람이 아니라 전혀 몰랐는데 이 아파트 터가 센 걸로 유명해, 망해서 나가거나 잘돼서 나가거나 둘 중 하나란다. 그래서 그런가. 이곳에서 잠만 자면 가위를 눌렸다.

누군가 내 얼굴에 흰 천을 씌우고 목을 졸랐다. 천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살기 가득한 눈빛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발버둥을 치다 겨우 가위에서 깨어났는데 실제 같아 한참이고 마른기침을 했다. 목을 졸리면 이런 기분이구나. 무서워서 밤잠을 설쳤다. 병히는 내가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자신은 한 번도 가위에 눌린 적이 없다고 내 고통을 몰라줬다.

한날은 자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왠 시커먼 남자가 누워있는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가위에 눌리는데 남자의 눈을 보니 동공 안에 또 동공이, 그 안에 다시 동공이 겹겹이 있었다. 태어나 본 적 없는 눈이었다. 그 눈빛에 압도되어 꼼짝 못 하다 겨우 가위에서 풀려났다.

이런 비슷한 가위눌림이 반복됐다. 본 귀신을 또 보고 또 봤다. 고심하다 국산팥 한 봉지를 사서 침대머리맡에 두고 잤는데 보름 동안은 편히 잤다. 그래, 귀신이 어딨 나. 팥 한 봉지로 퇴치될 가위에 괜히 고생했단 생각이 들쯤 가위눌림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더는 무서운 귀신을 보진 않았는데 누군가 내 몸을 만지는 것이 아닌가. 잠결에 남편인가 했지만 아님을 알아차렸다. 귓가에 재즈 음악이 크게 들리더니 가위에 눌렸고 나는 발버둥 치며 겨우 가위에서 벗어났다. 남편에게 말하니, 자신이 부족했냐 별 이상한 꿈을 다 꾼다며 혀를 끌끌 찼다. 저 인간을 죽여 살려.

진이 초등입학 후 최소 4년은 더 살자 했는데 살 수가 없었다. 그나마 소파에서 자면 푹 잘 수 있어 계속 소파생활 중이다. 물론 이 집에서 원이가 사립초도 붙고 국제학교도 붙었지만 나는 너무 무섭다. 병히에게 이사를 가자고 계속 얘기해 내년 초 전세계약보다 두 달 이르게 이사를 나간다. 다행히 학군지 인기 좋은 아파트라 금방 나갔다. 집을 계약한 아줌마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의 자식은 잘 되리라 믿는다.

귀신 덕에 내 집 마련이 당겨졌다. 때마침 신축 주상복합 아파트 분양 시기와 딱 맞아떨어졌다. 30층 이상에서 처음 살아보는데 기대가 된다. 귀신도 30층은 올라오기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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