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난 소울메이트
오다가다 만난 이들과의 수박 겉핥기식 인맥에 넌덜머리 난지 오래였다. 나를 위아래로 스캔하며 뭘 입었나 뭘 들었나 저 반지는 진짜일까? 궁금해하는 눈빛도 초월했다. 자기보다 초라해 보이면 무시하는 인성은 덤. 가지가지하던 이들에게 소중한 내 삶의 일분일초도 허용하지 않았다. 눈눈이이 똑같이 무시했다. 그러다 보니 십 년이나 터 잡은 곳에서 마음 터놓을 이도 편하게 만나 커피 한잔 마실 사람도 하나 없는 외톨이였다.
재작년 학군지로 이사와 "사모님은 외로워"라는 짧은 이야기를 썼는데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앞동에 사는 진짜 사모님을 사귀게 된 것. 나보다 어리고 예쁘고 게다가 넓고 좋은 집에 사는 그녀에게 놀랍게도 전혀 질투가 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같이 산책을 하는 날, 나의 사모님은 루이뷔통 바람막이를 입고 나왔는데 참 예뻤다. 나는 그녀에게 옷이 너무 예쁘고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다. 두 번째 보는 날엔 구찌 구두를 신고 나온 그녀, 나는 역시나 너무 예쁘고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다. 사탕발림이 아니라 사모님은 순수 자연미인으로 이목구비 마저 오목조목 예뻤다. 나는 경외심을 담아 그녀를 진정으로 추앙했는데 그래서였나, 사모님의 애착인형이자 키링이 되어 그녀에게 달랑달랑 매달리게 되었다. 내가 왜 그랬나 생각해 보니 그녀는 가식 없고 솔직했으며 따뜻했다. 필리핀 가정부에게 베푸는 그녀의 마음이 참 예뻤다. 매체에서 갑질이나 사치나 부리는 부잣집 사모님 이미지 속에 갇혔던 난 스스로 얼마나 편협했나 반성했다. 그리고 내 글 속 상상으로 만든 뻔한 캐릭터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저녁시간이면 손수 만든 요리를 한 접시 보내며 입맛에 맞을까 모르겠다고 조심스러워하던 그녀. 조건 없는 베풂이 이토록 따숩다니!
추석엔 귀한 송이버섯 한 상자를 수줍게 전하더니 내 생일엔 구찌 화장품 세트와 스테이크까지 통 크게 쏘는 그녀를 보며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튕겼던 지난날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맛집원정대를 꾸려 일주일에 한 번씩 데이트를 다녔다. 사모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핫한 맛집을 방문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로 깔깔거린 적이 언제였나. 학창 시절 마음 맞는 친구랑 노는 기분이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족발이나 떡볶이를 시켜 먹고 학원 정보도 나누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요즘이다.
사십 넘어 소울메이트를 만나다니, 우리 집 거실뷰를 싹 다 가리는 앞동 사모님을 이토록 좋아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