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개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을 통해 고단한 삶을 보상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분기별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부터 짧게는 주말마다 캠핑을 다니는 사람까지. 사람들은 집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위안을 받나 보다. 주변을 보면 여행이 취미인 사람이 생각보다 많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최근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질문도 종종 받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여행이 싫다. 내향인에게는 문 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일이라는 말에 절절히 공감한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집이라는 안전기지를 벗어난 바깥세상은 그저 낯설고 불안해 나도 모르는 사이 승모근이 뻐근해질 때까지 어깨를 움츠리며 다닌다. 그런 내가 시간과 돈을 들여 스스로를 새로운 환경에 던져버리는 여행이라는 것이 잘 맞을 리가.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좋은 곳에 가면 기분도 환기되고 위안을 얻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이러한 기쁨은 오로지 1박 2일 이하일 경우 한정이다. 몇 년 전에 동생과 유럽 몇 개국을 같이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나는 거의 이틀 꼴로 다른 나라를 넘나들며 스트레스를 받아 급성 변비가 와 여행 내내 화장실에 가지 못할 정도였다. 내성적인 성격도 성격이지만 예민하기는 또 어찌나 예민한지 옆에 있는 사람도 피곤하고 당사자인 나도 피곤하다.
MBTI로 보면 나는 완벽한 J인 나이지만 여행 계획은 짜는 것은 생각하는 것부터가 스트레스이다. 어쩌다 여행을 하게 되면 호텔과 티켓만 대충 끊어놓고 무작정 현지에서 여행을 했을 정도로 나는 여행 계획을 짜는 것도 싫어하고 누군가 짜놓은 일정 대로 움직이는 것도 싫다. 여행을 계획을 짜고, 일정을 잡고, 숙박 및 이동수단에 대한 준비를 하는 모든 과정이 그저 버겁다. 짐을 싸는 것은 또 얼마나 신경 쓸게 많고 귀찮은지 짐을 싸다 여행을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다. 해외에 가야 하는 경우라면 공항에서 대기를 하고 입출국 수속을 하는 것부터 기진맥진해 버린다. 에너지가 바닥을 친 채로 여행지에 어찌어찌 도착해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역시
'아 집에 가고 싶다' 뿐이다.
나의 경우는 혼자 가는 여행보다 누구와 함께 가는 여행이 나았다. 혼자 가는 여행은 왠지 모르게 처량하고 서글펐다. 작년 말에 결혼식 참석 때문에 일본에 가야 했던 일이 있었는데 이때 혼자 2박 3일을 강제로 일본에서 지내며 나는 바닥을 치는 우울에 다시는 홀로 여행을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일본은 과거에 가본 적이 있었고 일본어도 꽤 잘 알아듣는 편인데도 생판 모르는 나라에 던져진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참 나도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남들은 삶의 낙이라고 할 수 있는 여행이 내게는 돈을 주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라니 이런 나를 공감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기질이 스스로도 별나 보일 때가 많고 살아가면서 불편할 때도 많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