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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 글 쓴다고 말하지 말 걸

by 유이언

브런치는 나에게 있어 폭로의 장이다. 산전수전 공중전 개고생을 했던 과거와 지리멸렬한 현재를 가감 없이 써놓는 일종의 해우소 같은 곳이랄까. 유이언이라는 필명 뒤에서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를 그간 마음껏 쏟아내 왔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의 신상을 철저히 필명 뒤에 숨겨 놓는 이유는 과거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털어놓을 만큼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으며 민낯의 이야기를 꺼내놓은 게 통쾌한 동시에 여전히 창피하고 겸연쩍어서다.


내가 브런치에서 글을 쓴다고 공표하고 다니지 않지만 어쩌다 보니 내 기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브런치 작가 유이언이라는 것을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다.


예상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의 과거사에 깊이 공감하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내가 이렇게 까지 고된 시간을 겪었는지 몰랐다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이를 계기로 나와 더 인간적으로 더 친밀해진 관계도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사적인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약점으로 작용했다. 우리 가족의 쫄딱 망한 과정과 현재를 알게 되고 나니 전과 달리 묘하게 나를 얕보고 악용하려는 인간들이 생겼고 유야무야 서로 침묵의 손절을 치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쫄딱 망한 집 첫째 아들이라는 사실을 평생 숨겨오며 살아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나의 우려는 그저 기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불편한 점은, 내 지인들이 때때로 내 글을 보기 때문에 예전처럼 속 시원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 중에는 내 지인과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있는데 이것을 하고 싶은 대로 글로 써놨다간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키보드를 두들기다가도 이내 인터넷 창을 꺼버린다.


현실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 글을 본다는 것은 때로는 마치 CCTV로 일상을 감시당하는 것 같다. 예전처럼 꼴리는 대로 글을 쓰지 못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내게 있어 글을 쓰는 것은 가장 나다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솔직한 작업인데 이 과정을 지켜보는 원치 않는 방청객이 생긴 것 같다. 현실에서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사는 것도 피곤해 죽겠는데 이제는 글을 쓰기 전에도 스스로 검열해야 할 것들이 더 생긴 기분이다.


브런치에 글 쓴다고 말하지 말 걸

브런치 멤버십 서비스가 시작된다고 하니 이제 진짜 내밀한 이야기는 거기에다가 할까 싶다. 내 지인 중에서 내 글을 돈까지 주고 구독할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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