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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원짜리 조문(弔問)

by 유이언

출장을 같이 다녀온 타 부서 직원의 장인이 돌아가셨다.


[부고] 해외사업부 김 OO 부장 빙부상


'10년을 투병하셨다더니 결국 가셨네. 그런데 나도 조문을 가야 하나'


함께 출장을 다녀온 사람들이 모여있는 단체 채팅방에 알림이 떴다. 날을 맞춰 같이 장례식에 가자는 것이다. 남의 부고를 모른 척 하기엔 어쩐지 매정하고 나 홀로 찾아가기엔 멋쩍은 상황이었는데 잘됐다. 퇴근 후 황금 같은 저녁 시간을 써야 하는 것이 아까워 조의금만 보내고 안부 연락이나 할까도 했지만 남들 가는 김에 그냥 따라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조의금은 5만 원을 내야 할까 10만 원을 내야 할까.

출장 가서 친해지긴 했지만 알고 지낸 지 1달도 되지 않은 사이에다 우리 팀도 아니잖아. 고민 끝에 옆 부서 동료에게 물어 요즘 조의금 평균 단가를 파악하곤 고민에 돌입했다.


[브런치은행]
[사고예방]
출금 50,000원


이체 완료 카톡이 울렸다. 가족을 잃고 비통한 사람 앞에서 단 돈 5만 원에 스스로 인류애를 에누리해 버렸다. 절친도 아니구먼 찾아가는 게 어디냐며 혼자 멋지게 정신 승리까지 마쳤다.


13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장례식장은 처음 온 것 같다. 그 긴 시간 동안 내 주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겠지만 한동안 세상과 단절하고 사느라 몰랐고, 모른 체했다. 내 친지의 부고가 아니라 그런지 장례식장은 어딘가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였다. 남의 비극을 내 일이 아니라 다행으로 여길 수 있는 처지로 가서 그럴지도 모른다.


장례식장 로비 스크린에는 호실 별로 죽은 자들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얼굴이 띄워져 있다. 이십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 어느 망자의 앳된 얼굴은 그중에서도 단연 이질적이었다. 가는 데 순서는 없다지만 저 여자는 왜 그리 빨리 갔을까. 아팠을까, 스스로 죽었을까. 흙탕물처럼 소란해진 마음을 외면하고 장례식장을 향해 계단을 내려갔다.


상주의 얼굴이 보인다. 어느 때도 본 적 없는 새카맣고 초췌한 얼굴에 누적된 피로와 슬픔이 보인다. 오랜만에 장례식장에 오니 향을 피워야 하는지, 헌화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눈알만 굴리다 남들이 절 할 때 묵념만 했다.


빈소를 나오며 문득 지난 출장 때 상주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언 씨 젊을 때 돈 있을 때 부모님 납골당 사놔요. 이것도 부동산이랑 똑같아. 서울 경기권 납골당은 수요가 많아서 점점 비싸진다니까"


서울 경기권 납골당도 위치와 시설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납골당 내에서도 납골함의 위치가 사람들 시선에 가까우냐 발 밑에 가까우냐에 따라 몇 천만 원씩 차이가 난다고 한다. 내가 돈이 없으면 우리 부모는 죽어서도 납골당 오가는 사람들 발 밑만 봐야 하는 처지가 되는 건가. 혈혈단신 내 앞가림하기도 빠듯한데 어느덧 나도 부모의 죽음과 그다음까지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장례식장에선 육개장과 수육 고기를 준다. 밍숭 맹숭하게 끓인 육개장에 식은 밥을 말았다. 배는 썩 고프지 않지만 같은 자리에 앉은 서먹한 이들과 어거지로 대화를 이어가는 대신 목구멍에 밥을 구겨 넣는 게 훨씬 마음 편하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걸까 계속 무언가를 먹는다. 정적이 이어져 내가 말할 차례가 올까 봐 주둥이에 쉴 새 없이 뭔가를 구겨 넣었다.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반은 듣고 반은 흘려버리면서도 두 눈은 경련이 나게 가짜 미소를 지어댔다. 우는 애를 두고 나온 것도 아닌데 절실하게 집에 가고 싶었다.


얼추 집에 갈 시간이 되어 다들 자리를 일어서려는 데 나보다 열 살이 많은 한 아저씨 부장이 어떻게든 더 있다 가자고 한다. 장례식장에 사람이 좀 차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미 엉덩이를 뗀 여럿을 주저앉혔다. 한참이 지났는데 이제는 예전에 같이 일했던 팀 사람들 인사를 하고 가자는 얘기로 또다시 발목을 붙잡았다. 이실직고하길 집에 일찍 들어가면 딸내미들 놀아줘야 하니 육아 탈출을 하기 위해서 모두의 귀가를 늦추는 거라고 했다.


아저씨는 문상객들의 체류 시간을 늘리며 주절주절 오만 잡스러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최근에 서울에 집에 샀는데 임대아파트랑 소셜믹스가 되어 있는 곳이라 민도(民度)가 떨어진다, 앞에 앉아있는 팀장을 보고는 서울 XX동 대장주 아파트 사는 거 보고 사람 달리 봤다는 둥 아무도 관심 없는 객쩍은 소리만 해댔다


저씨가 목표한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다섯 명 모두 장례식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역까지 데려다준다는 아저씨의 제안에 손사래를 치고 도망쳐 나왔다. 사람 외로운 사람인가.


편치 않은 사람들과 편한 척 밥을 먹는 동안 온몸이 흥건히 젖어있던 것이 그제야 느껴졌다. 칼바람을 맞으니 온몸이 시렸다. 어설픈 어른의 축축한 저녁이 그렇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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