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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적인 게 죄는 아니잖아!

by 유이언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떠오르는 표현이 있다.


'마음이 스산한 사람'

그리고

'내향적인 사람'


물론 이렇게 대답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우울을 머금고 사는 내향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사람들은 내게 선입견을 가질 것이고 밥벌이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직업은 대중과 카메라 앞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말하는 진행자이다. 내향인의 직업이라기엔 외향성이 많이 요구되는 일이자 안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 직업을 갖게 된 데에는 적성과 재능이 부합했던 점도 있지만 사실 내향인이기에 더 잘 맞았던 점도 있다. 직접 사람을 대면하는 것 대신 카메라 건너편에 보이지 않는 대중을 상대하는 것이 훨씬 속 편하다. 직장 생활처럼 같은 사람들과 주기적으로 만나며 관계를 맺는 일보다 대중 앞에서 몇 시간 이야기하고 냅다 집으로 곧장 도망칠 수 있는 이 일이 성미에 더 잘 맞는다.


어떻게 하면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얼굴과 이름을 더 잘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동시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더 적게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를 세상에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마음속에 비밀의 방이 많아진다. 직업상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지만 정작 나의 이야기는 나에게서 시작해 내 안에서 끝나는 독백일 때가 많다.


관객 없는 무대에서 언제나 홀로 1인극을 하는 것과 같은 나에게 세상은 대극장 한가운데에서 뮤지컬 주연을 맡으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물론이고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살 때도 늘 그랬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나를 드러내라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더욱 외향적인 내가 되어야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들 한다. 프리랜서는 1인 기획사이자 영업직이니 억지로 약속이라도 만들어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비춰야 인맥이 넓어지고 이 사람들과 술이라도 한 잔 마셔줘야 일을 딴다고도 한다. 머리로야 나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상상만 해도 그저 냅다 도망치고 싶을 만큼 많이 부대낀다.


그래도 어떻게든 먹고살려고 매일 조금씩 연습하며 살아왔다. 내향적인 나를 뒤로 하고 좀 더 밖을 향해 나아가는 내가 되기 위해서. 이제는 필요에 따라 얼굴에 경련이 나게 가짜 웃음도 지을 줄도 알고, 상황에 따라 농을 던질 줄도 아는 사회인이 되었지만 외향인 코스프레를 하며 사는 것은 여전히 버겁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일생 외향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더욱 지독한 내향인이 되었고, 외향인이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강요가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압박해 왔다는 것을.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나온 명대사가 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향인인 게 죄는 아니잖아"


안으로 파고드는 타고난 천성을 뒤로하고 늘 밖을 향하길 강요받았던 내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모든 내향인이 백 퍼센트 공감할 수 있지는 않더라도 나의 이야기의 어느 한 귀퉁이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외향인들에게는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내향인의 심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부터 나는 기억의 열차를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한다. 여러분은 이 열차의 뒷자리에 앉아 내가 스쳐 지나쳐온 내향적인 순간들을 함께 넌지시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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