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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ssoms Oct 12. 2024

우리가 알지 못하는 치매가족이야기

천천히 스며든 치매

10년 하고도 몇 년 전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온 ‘치매’라는 단어

익숙하지 않았고 나에게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치매는 단지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고 내 주변에서 일어날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다가왔다.

우리 엄마는 아빠와 같은 공간에서 일을 했다. 항상 일이 많고, 그날그날 끝내야 하는 일들이 많았기에 엄마는 아빠보다 먼저 퇴근해서 집에 와 저녁을 준비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는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집에 있는 음식재료를 또 사 오는 경우가 있었다.

고등어 한 마리, 무, 두부, 콩나물  어제 사 왔는데도 오늘 또 사 오고 내일 또 사 왔다. 처음에는 깜박했나 보다 했다. 가족들 모두 ”집에 있는데 또 사 왔어? “라는 반응이었고 엄마의 그런 모습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20대 후반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돈을 벌기 시작했기에 돈을 쓰는 재미와 친구들 만나서 놀기 바빴다.

어느 추석 무렵,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원래 명절에는 많은 며느리들이 명절이라는 이름하에 느껴지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였다.) 엄마가 아빠와 입씨름 끝에 열받아서 마트에 믹스커피를 사러 가겠다고 했다. 

그때 난 엄마한테 탄산음료와 몇 가지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잠시 후 엄마는 믹스커피도 아닌, 탄산도 아닌, 전혀 다른 물건들을 사 왔다. 엄마가 들고 있던 봉지를 열고

하나하나 꺼내면서 엄마한테 “엄마 믹스커피 사러 간다면서, 내 탄산은? 왜 엉뚱한 걸 사 왔어? “ 라며 짜증 섞인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그때 엄마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내가 언제 믹스커피 사러 간다 했어!” 라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화를 냈다. 엄마의 이런 일들은 반복되었고 당시 내가 알고 있던 지인분(병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치매인 거 같다는 이야기와 함께 병원과 교수님의 이름 하나를 알려주었다.

지인분이 알려준 병원의 경우 거리도 멀고, 소개해준 교수님의 경우 1년 치 예약이 다 차있고 언제 자리가 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집과 거리도 가깝고 뇌질환 진료도 본다 해서 진료예약을 잡고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런 증상이 있기 1년 전쯤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엄마가 우울증상도 있고 그걸로 기억을 깜박깜박하는 거라고 치매라고 진단하기는 조금 어렵다는 이야기와 함께 무언가 특별하게 치료하는 방법도 없었다.

기억력에 도움이 되기 위해 수첩에 기록하는 것을 하라는 정도..

그렇게 1년 정도 병원을 다니다가 병원을 옮겨보자는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지인이 알려준 병원에 예약을 하고 진료를 보기 시작했다.

엄마의 병명은 초로기치매 라고 했다.

엄마처럼 이른 나이에 인지기능 장애가 오는 것을 말하며 알츠하이머의 일종이라 했다.

엄마는 아빠와 일을 함께 하지만 엄마의 깜박깜박하는 일들 때문에 아빠는 점차 엄마에게 화내는 일들이 많아졌다고,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들이 아주 많고 바빠서 힘들다고, 그래도 일을 안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진료받을 때 의사 선생님께 이야기했다.

병원에서는 약 처방과 함께 스트레스를 덜 받고 운동을 하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치매가족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때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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