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 이춘재에 대해서 세상이 시끌벅적하였다. 드디어 범인이 잡혔는데도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한 희대의 살인마가 잡히고 나서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 수가 없다니 모두가 격분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렇듯 살인죄를 비롯하여 모든 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존재한다.
상간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은 부정행위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이내, 부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제기할 수가 있다.
남편이 외도를 저지른 건 첫 아이를 임신했던 2011년이었으며, 내가 알게 된 건 그로부터 5년 뒤인 2016년이었다. 부정행위가 있던 날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아 소송이 가능했다. 사실 처음 그 여자에게 연락할 때만 하더라도 소송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피해자라고만 주장했다. 자신을 상간녀 취급하는 것이 불쾌하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또다시 연락할 시에는 나의 직장과 아이들이 있는 유치원까지 찾아오겠다며 역으로 날 협박했다. 반성에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그 여자의 대응은 나를 화나게 했다.
그 여자는 남편과 헤어지고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최근에 원하던 9급 공무원이 되었고, 결혼을 약속한 애인까지 있었다. 잃을 게 많다고 생각하였는지 적반하장으로 일관하는 그 여자 때문에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일었다. 일하는 직장에 찾아가 깽판을 부릴까, 사람을 써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산속에 묻어버릴까. 온갖 나쁜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나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는데 남의 것을 죄의식 없이 빼앗아 놓고는 자신은 자신의 것을 모조리 지키려 반인륜적 태도를 보이는 그 여자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그 여자에겐 최악이며 나에겐 최선의 복수를 할 수 있을까를 매일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직장에서, 친구들 앞에서, 애인 앞에서, 부모 앞에서 최대한 망신을 준 다음 사람을 시켜 산속 깊은 곳에 묻어버리고 싶었지만 나에겐 어린 두 딸이 있었다. 이제 곧 아빠 없이 자랄(그때에는 남편과의 이혼을 준비 중에 있었다.) 아이들에게 엄마마저 잃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였으니까...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했다. 그런 여자 때문에 앞으로의 내 인생도 송두리째 지옥으로 처박아둘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럴 가치도 없는 여자였다.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고 준비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상간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난 널 법적으로 응징해주겠어.’
그 여자가 불륜을 저지른 2011년에는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이었다. 그때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 여자는 감옥생활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공무원 생활은 꿈도 못 꾸었을 테지. 불륜은 영혼을 죽이는 살인죄와 맞먹으므로 ‘무기징역’ 혹은 ‘종신형’을 내리고 싶었지만, 이 나라의 법은 그들에게는 너무 관대했다. 그 당시에는 손해배상 청구금으로 받을 수 있는 배상액이 고작해야 최대 1500만 원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그나마 3000만 원까지 받은 판례도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죗값에 비해서는 너무도 형편없는 금액이다. 배우자의 외도로 상처를 입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 고통은 겪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다. 그런데 고작 1500만 원이라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나와 같은 일을 겪은 배우자(아내, 남편)들을 위해 손해배상금이 1억, 2억으로 오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동원하여 노력할 것이다.
“증거가 너무 미흡한데, 어쩌죠? 소송 진행하시겠어요?”
“잘해봐야 500만 원 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여러 법률사무소에 상담을 받은 결과는 모두 동일했다. 너무 오래전 일이며 남편의 진술 말고는 그 어떤 직접적 증거가 없으며 현재 진행형이 아닌 관계로 최대 500만 원뿐이 못 받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보수적인 곳은 승소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까지 했다. 변호사 선임비만 대략 300만 원선. 그 돈과 소송에 걸리는 시간적 노력에 비해 결과가 아쉬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가, 처벌이 소송뿐이었기에. 그 여자가 알게 하고 싶었다. 당신은 나와 같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일 뿐이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당신이 한 짓은 이 나라 법으로도 정한 죄이며, 나를 협박할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사과할 일이란 것을 말이다.
‘천벌엔 시차는 있어도 오차는 없다’란 말이 있다. 그 사건이 있은 뒤로 난 이 말을 참 좋아하게 되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그 죗값을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받은 고통에 비하면 이 소송은 그에 반할 것도 아니었지만, 결혼을 앞둔 공무원인 그 여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은 그 여자도 두 발 뻗고 자기 힘들 것이다. 지난날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었으면 했다. 설사 소송에서 승소하지 못하더라도 그렇게만 된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속이 후련해졌다. 거짓말 같게도 그간 없던 입 맛도 어느 정도 돌아왔다. 잠도 잘 자었다. 소송을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삶에 대한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랬다. 이미 오래전 일을 가지고 긁어 부스럼 아니냐고... 하지만, 혹시 지금도 소송을 망설이고 있는 분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시라고...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고 말이다.
아마 손해배상 청구소송뿐만 아니라 다른 민, 형사 소송을 진행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변호사는 생각보다 친절하지가 않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해주는 것은 아니다. 나도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돈 주고 변호사를 쓰는데 소송에 필요한 증거부터 모든 것들을 내가 다 준비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어떠한 사건이든 당사자 외에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변호사는 그 외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법적으로 정리하고 보완해주는 사람들인 것이다.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면 모든 사건의 인과관계를 시간별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 대한 증거가 있다면 뭐든 좋다. 그리고 최대한 여러 변호사와 상담을 진행해보고 관련 소송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분과 계약을 하라고 하고 싶다. 선임비를 주고 나서 후회하면 너무 늦으니 말이다.
여러 변호사와 상담하면서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성공보수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잘해봐야 500만 원이라 판단해서였을 것이다. 이도 중요하다. 내가 소송하여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 청구금이 최대 얼마까지 가능한가를 여러 변호사와 상담을 통해 가늠해보고 성공보수 여부를 정확하게 따져야 한다. 힘들게 배상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선임비와 성공보수로 주고 나서 남은 게 없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고 했다. 남편 증언 말고는 증거 하나 없던 내가 소송을 준비하면서 거짓말 같게도 우연치 않던 곳에서 속속들이 증거가 발견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찾아내었다. 오래전 사용한 메신저에 저장된 대화창을 통해서, 그가 사용했던 예전 휴대전화 속에서 하나둘씩 증거를 찾아내었다. 변호사가 말하는 행위가 담긴 사진처럼 직접적 증거는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없던 내겐 이마저도 단비와 같았다. 그의 외도 사실을 알고 나서 내가 겪은 정신적 고통과 자살행위 등 그 모든 것이 증거가 되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그 사건으로 인하여 내가 얼마나 많은 정신적, 육체적,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았는지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준비가 끝났고 짧지 않은 준비 기간 끝에 난 소송을 진행할 수가 있었다.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직장으로 소장을 받은 그 여자에게서 그날 밤 바로 연락이 온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것이니 소송만은 취하해 달란 것이었다. 이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게 되어 잘릴 까 봐, 부모님이나 결혼을 앞둔 애인이 알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난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소송을 준비하며 이미 예상했던 시나리오였다. 난 그 어떠한 이유로도 소송을 취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증거 불충분으로 승소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 뒤로 뒤늦은 후회를 하며 남편과의 육체적 불륜 사실을 토로한 그 여자의 메시지까지도 추가 증거자료로 사용했다. 그 자료는 아주 요긴하게 잘 사용되었다. 남편이 유부남인 걸 알고 있었다는 점,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었다. 상간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 그것이었다. 유부남인 줄 알고 만났는지의 여부 말이다.
소송을 취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 여자는 그 날 이후로 고장 난 기관차처럼 폭주를 했다. 매일 밤 장문의 메시지와 전화로 나를 괴롭혀왔다. 하루는 울며불며 반성을 하다가 또 하루는 남편도 나도 아이들도 가만두지 않겠다며 협박을 했다. 얼마 전까지의 내 모습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멘털이 나간 것이다.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지만 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 나라에선 당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주었지만, 당신은 그 죗값을 죽을 때까지 평생 받게 될 것이다. 반드시 내가 그렇게 할 것이므로...’
7개월의 짧지 않은 소송 끝에 난 1500만 원 그 당시엔 거의 최고 금액인 배상금을 받게 되었다. 500만 원 남짓이 될 거라 예상했던 변호사들의 말과는 달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