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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요양원에서는... 1

서로 다른 언어지만 감정이 통하는 대화

by 김유인


내가 일하는 캐나다 요양원에는 정말 다양한 인종, 문화, 종교를 가진 어르신들이 계신다.

우리는 그들의 생활방식을 존중하며 최대한 불편함이 없도록 맞춰 드린다.

당연하게도 이곳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또 하나의 작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걸어오신 길은 달랐어도, 인생의 마지막 길에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어르신들은 연로해 웬만한 자극에도 반응이 없거나 감정 표현이 드물다.

하지만 어떤 어르신들은 예민해 작은 소리나 자극에도 반응하고 표현하기도 한다.

비교적 건강하게 입소하는 분들도 점점 기력이 쇠해진다.

그렇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가끔 복도를 걷다 보면 두 분이 다정하지만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속으로 '저분들이 말이 통할까?' 싶어 귀 기울여 들어보면,

두 분이 서로 다른 나라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한 분은 영어로, 다른 한 분은 중국어로.

그런데도 한 분은 묻고, 다른 한 분은 대답을 하고...

한 분이 이야기하는 동안 다른 한 분은 조용히 자기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리며,

마치 영어와 중국어가 동시통역되는 것처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너무 신기하고 흥미로웠지만, 그분들 대화에 끼어들 수 없었다.

두 분은 아마 세계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새로운 노인 부부가 요양원에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먼저 오시고,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했다가 나중에 오시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걸어 다니고, 식사도 잘했다. 말씀도 재미있게 하고, 빙고 게임을 좋아했다.
얼마 후, 할머니가 병원에서 퇴원하기로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할아버지께서 정말 기뻐하며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내일 아내가 퇴원한다고 말하며 행복해했다.

다음 날 옆 방으로 할머니가 오시고, 할아버지는 그 방을 떠나지 않고 할머니를 살뜰히 챙겨드렸다. 두 분은 2인실이 없어 각자의 방을 썼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거의 할머니 방에서 생활했다.

밤에도 불편한 1인용 침대에서 두 분이 함께 잠을 잤다. 각자 방에서 자라고 권해도 꼭 같이 있었다. 혹시 모를 낙상 사고가 날까 봐 걱정돼 따로 자길 권했지만

할아버지는 단호했고, 할머니도 좋아했다.

할머니의 건강은 점점 안 좋아졌다. 할아버지는 절대 그 방을 떠나지 않고, 손수 할머니를 챙겼다.

식사도 직접 가져가고, 옆에서 떠먹여 드리고, 진통제도 다 챙겼다.
그러다가 할머니께서 끝내 돌아가시게 됐다. 할아버지는 엄청 오열하며 그럴 리 없다고 부정했다.

이곳에서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장례 대행업체에 연락하고, 그들이 시신을 인도하러 온다.

그날도 장례 업체 분들이 시신을 인수하러 왔는데 할아버지께서 엄청 화를 내며

시신을 내드릴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몇십 분을 시신을 쓰다듬으며 오열했고,

자제분들의 설득으로 겨우 시신을 장례 업체 분들에게 보냈다.

그 후 한동안 할아버지는 방을 돌아다니며 문을 열어보고 할머니를 찾았다.

우리에게 와 할머니가 없다고 하며 눈물을 흘려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싫다고 하며 잠만 잤다.

우리의 권유로 겨우 일어나 식사를 하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가족들이 찾아와 모시고 나가 시간을 보내고 오기도 했다.

할아버지께서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기 힘드셨나 보다.


이곳 요양원에서는 보통 어르신들의 식탁 자리를 고정해 드렸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싸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분들은 친해지거나 혹은 사랑이 싹트기도 한다.

싸우는 분들은 식탁 구성원을 바꿔 드리고, 서로 좋아하는 분들은 가족과 상의해

식탁에 함께 앉도록 했다. 어떤 보호자분들은 자기 부모님의 연애 감정에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어떤 부부가 함께 들어왔는데, 할아버지께서 금방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치매로 남편이 돌아갔다는 사실을 금방 잊었고, 아니, 결혼했던 사실 자체를 잊었다.

천생 여자 같은 할머니는 상냥하고 부드러웠다.

곧 다른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좋아하게 됐고, 할머니를 아기처럼 챙겨주었다.
아침에는 먼저 일어나서 할머니 방 앞에서 기다리고, 할머니가 준비되어 나오면

휠체어를 끌고 식탁으로 가서 턱받이를 해주고, 너무 뜨거운 음식이 나오면 알맞게 식혀주고,

커피가 나오면 설탕이나 크림도 챙겨주고 다른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겨주었다.

할머니도 이분을 의지해 아침에 안 일어난다고 짜증을 내다가도,

이 할아버지가 밖에서 기다린다고 하면 일어나곤 했다.

두 분의 그런 행동은 모두 직원들의 적절한 개입 덕분에 순조롭게 이어졌다.



그 외에도 요양원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할아버지 한 분이 자신의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러면 본인 물건이 없어졌다고 화를 냈다. 그래서 실수로 그 방에 들어간 다른 어르신이

그 할아버지에게 폭행당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우리는 가능하면 그 방에 다른 어르신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새로 들어온 어르신이 모르고 들어갔다가 맞았는데,

맞은 분이 다시 한 대 때리는 사고가 있었다.

나는 식당에 있다가 큰 소리가 들려서 뛰어가 보니 두 사람이 엉켜있었고,

우리 직원들은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겨우 두 분을 떼어놓고 보니 맞은 할아버지 얼굴에 상처가 있었다.

그래서 상처를 치료해 주고 각자 상담을 진행했다.


나이가 들어도 감정은 여전히 살아 있고,

이곳 또한 또 다른 사회라 어르신들 간에 갈등이 있고, 우정도 있고, 사랑도 있다.

요양원의 어르신들은 우리의 미래다. 나이가 들었다고 그분들의 감정이나 요구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분들도 젊은 시절이 있었고, 이 사회에 공헌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분들의 존엄성이 끝까지 지켜지기를 바라며, 우리는 끝까지 그들의 곁을 지킨다.


정원이 딸린 요양원 에서 가족들이 모시고 나가 산책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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