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확인한 한국인의 정체성
당신은 영어 이름이 있나요?
나는 한국 이름 그대로 사용합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직장이나 학교에서 영어 이름을 많이 쓴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국에 사는 영어권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영어 이름을 평가하는 영상을 봤다. 아마도 한국인들이 촌스럽지 않은 영어 이름을 고르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나도 캐나다 이민 첫해에는 영어 이름으로 바꿀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처음 영어 학교에 다닐 때, 내 주위의 한국과 중국 친구들은 대부분 영어 이름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래서 나도 어떤 이름을 써야 할까 고민했었다. Jennifer, Mona, 그리고 내 한국 이름을 변형한 Winnie. 하지만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이름 위에 다른 이름을 덧씌우고 싶지 않았다.
내 이름은 아버지께서 직접 지어주셨고, 뒷글자는 자매들이 함께 쓰는 돌림자였다. 내 이름에 담긴 의미와 정체성이 소중했기에, 나는 내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게다가 내 이름은 현지 사람들도 발음하기 쉽고, 기억하기도 좋았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Career College를 다닐 때 우리 반에는 필리핀 친구들이 많았다. 첫 시간 자기소개를 하고 나니 곧 내 이름을 가지고 재미있는 변형을 해서 불렀다.
같은 반 필리핀 동료들이 단체로 "You in, You out." 하며 불러줬다. 그들의 유쾌한 배려 덕분에 나는 웃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어디를 가든 처음 내 이름을 소개할 때 필리핀 친구들이 알려준 에피소드를
설명하곤 했다. 그러면 대부분 박수를 치며 웃고 좋아하며 나를 기억해 줬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몹쓸 기억력 때문에 상대방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다.
내가 일하는 곳은 직원의 40%가 인도인인데, 그들 역시 모두 자기 고유의 인도 이름을 쓴다. 발음도 어렵고, 비슷한 이름도 많아서 처음 한동안은 기억하기가 어려웠다. 몰래 이름표를 보거나, 매일 나오는 스케줄에 적힌 이름을 보며 기억하려 노력했다.
아프리카나 아랍계 친구들의 이름은 더 발음하기 힘들다. 며칠 전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는데,
접수한 순서대로 환자 이름을 부르는 직원들이 세계 각국의 이름을 부르느라 애먹는 것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그러니 내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지만 어르신들의 이름까지 외워야 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다. 이곳은 이름이 한국처럼 짧지도 않고 길다. 그래서 Jim이니 Tom이니 짧게 부르는 이름이 일반적이다. 성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성이 같으면 거의 가족이라고 볼 정도다. 보통 어르신들이 80~90명 있어도 부부를 제외하면 성이 다 다르다. 게다가 여기서는 이름 대신 성만으로도 부르기 때문에 기억하기 더욱 힘들다. 그에 비하면 한국 이름은 얼마나 간단하고 부르기 쉬운가. 보통 두세 음절이면 충분하다.
물론 내가 한국 이름을 그대로 써서 불편할 때도 있다. 내 이름이 잘 인식되지 않아 어떤 서류에는 한 글자만 기록되기도 한다. 고치려 해도 입력이 되지 않아 다른 공식 신분증을 하나 더 내밀며 확인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아랍이나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부르기 어려운 이름도 영어 이름 안 쓰고 잘 사용한다.
한국 사람들도 이제는 영어 이름 대신, 예쁜 우리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으면 좋겠다. 발음하기 힘들어서 부르기 어렵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발음을 배우는 건 그들의 몫이니까. 버락 오바마도 아프리카 이름이지만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이름이 되지 않았는가.
특히 캐나다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나는 자랑스럽게 내 이름을 쓰고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너무나 잘 기억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오늘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동료가 내 이름을 부르며 지나간다. 나는 웃으며, 이름 빼고 다른 말로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