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국물과 따끈한 수건의 위로
위로란 무엇일까?
어쩌면 힘든 여정을 끝낸 마라톤 선수에게 물 한 컵을 건네며 수고했다는 아낌없는 격려와 함께 진심으로 안아 주는 그 순간 일지도 모른다.
승부와 관계없이 힘든 시간을 위로하고, 그 끝마침을 축하해 주며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그 순간 말이다.
나는 일을 하면서 매일 노인들의 등을 따뜻한 수건으로 문질러 드린다. 그때 어르신들은 기분 좋은 탄성과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를 연발한다. 나에겐 큰일이 아니지만, 움직임이 힘든 노인에게는 그 작은 행동이 크고 고마운 위로가 되는 것이다
그날은 유독되는 일이 없었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만나러 나갔는데, 그날따라 핸드폰도 집에 놓고 나와서 연락이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와서 길에서 비를 맞고 서 있었다.
마침 만나기로 한 장소가 친구 차에 타기 좋도록 도로변이었다. 친구가 금방 나타날 거라고 굳게 믿은 나는 우산도 안 산 채 길에 서 있었다. 믿었던 친구는 오지 않았고, 비는 계속 내려서 완전히 젖어 더 이상 우산을 살 필요조차 없었다.
우울한 일은 겹친다고 그날은 일하던 곳이 문을 닫는다는 통보를 받은 날이었다. 더 이상 비를 피할 수 없어 그냥 집으로 돌아왔을 때, 찬 비에 흠뻑 젖은 몸으로 아파트 문을 닫으며 소리를 치고 눈물을 쏟았다.
집에 오는 내내 비에 젖은 초라한 동양여자 모습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에도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던 내 몰골이 더 서러웠다. 깜짝 놀라 쳐다보는 남편을 향해 서러운 눈물을 쏟았다.
뒤늦게 집에 도착해서 찾은 핸드폰엔 친구에게서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고, 오늘 급한 일이 생겨 못 온다는 음성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남편은 온통 젖어있는 나에게 마른 수건을 건네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는 섣부른 조언이나 가벼운 위로 대신, 일단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을 권했다.
내가 목욕하는 동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국이 있는 늦은 저녁을 준비해 주었다.
그렇게 뜨거운 목욕과 따뜻한 저녁으로 차가워진 몸과 마음을 데웠고, 곧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내가 일하던 곳의 분위기가 안 좋아 친구에게 다른 일자리를 부탁할 겸 만나기로 했었는데, 그 모든 것이 무산되자 그날의 내 신세가 더 처량 했었다.
몸이 편안해졌을 때, 그는 비로소 나에게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 배려와 조언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익숙했던 길을 떠나 새로운 준비를 하고 알아보았다. 만약 그날 그 친구를 만났다면 나는 지금과는 다른 길에 있었을 거다. 그전까지 하던 익숙한 일을 하고 있겠지만 영원히 만족스럽진 않았을 거다.
진정한 위로란 상대방을 배려해서 그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말없이 읽어내는 마음일 것이다.
섣부른 조언이나 가벼운 위로는 상대방을 더 다치게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남편의 따뜻한 국처럼 , 노인에게 닿는 수건처럼, 진심이 담긴 작은 행동이나 부드러운 웃음이 이야말로 닫힌 마음을 열리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으로 우리는 삶을 지탱하고 나아간다.
어쩌면 브런치에서 만나는 익명의 독자들의 따뜻한 조언과 공감 역시, 내가 가는 또 다른 길을 걸어갈 힘이 되어줄 진정한 위로의 형태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