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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언니와 옥수수빵

그리운 유년시절의 추억

by 김유인

이른 점심을 차려준 엄마는 외출 준비를 하고 아이는 그런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다.
엄마는 바쁘게 상을 치우고, 경대 앞에 앉아 화장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자 아이는 엄마 옆에 드러누워 계속 칭얼거렸다.

"10원 만~~ 10원 만~~"

엄마는 아이를 쳐다볼 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이제 엄마 옷자락을 잡으며 애원했다.
엄마는 화장하던 손을 멈추고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가게에 가서 사탕 사가지고 바로 집에 와 있어. 그림책 보고 있으면 언니 금방 올 거야.

언니랑 집에 있으면 엄마 금방 갔다 올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엄마는 아이의 손에 10원을 쥐어주었다.
10원을 손에 꼭 쥔 아이는 활짝 웃으며 가게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엄마가 뒤에 "넘어질라!" 하고 아무리 소리쳐도 아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가게에 도착한 아이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어제는 왕사탕 먹었는데, 오늘은 번데기 먹을까?

아니면 별사탕은 개수가 많으니까 나중에 언니 오면 나눠 먹을 수도 있는데...'
하지만 오늘은 번데기냄새가 유독 맛있게 풍겨왔다.

"아저씨, 번데기 주세요!"

가게 주인은 신문지를 반으로 접어 고깔 모양을 만든 뒤 그 안에 번데기를 가득 담아주었다.

아이는 10원을 건네고 따끈한 번데기를 받아 들고 신나게 집으로 뛰어왔다.

집 근처에 다 와서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번데기는 흙바닥에 모두 쏟아져 버렸고, 무릎도 다쳐서 피가 났다.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지나가던 옆집 아주머니가 일으켜 세워 주셨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엄마는 이미 나가셨고, 이제 남은 10원도 없었다.

한참을 울던 아이는 이내 집에 아무도 없는 걸 깨닫고 울음을 뚝 그쳤다.

우두커니 빈집에 앉아 있다가 집을 돌아다녔다.
아이는 얼마 전 아버지께서 새로 사주신 동화책을 천천히 꺼냈다. 그때 벽에 걸린 괘종시계가
'땡땡' 소리를 내며 집안에 울려 퍼졌다.

소리에 놀라 집안을 두리번거렸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 있으면 언니가 온다고 했는데... 언니는 아마 옥수수빵을 가지고 올 거야.'

아이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그림책을 펼쳐 들었다.
그림책에는 콩쥐와 팥쥐가 나와 있었다. 언니가 읽어준 대목을 기억하며 혼잣말을 했다.

" 콩쥐야, 엄마랑 팥쥐는 원님 생일잔치 갔다 올 테니까, 이 독에 물 가득 담아 놓고 여기 있는 볍씨 다 빻아 놔."
언니가 읽어준 걸 그대로 따라 읽고 있는 아이는 아직 한글을 읽지 못했었다.
'언니가 뭐라 했더라?' 아이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림 속에는 참새들이 볍씨 위로 날아다니고, 두꺼비는 깨진 독 속에 있었다.
아이는 상상으로 그림책을 보며 읽어봤다.

"참새야, 너희 여기 있으면 안 돼. 쌀 다 빻아야 한단 말이야. 그리고 두꺼비 너희도 독에 들어가면 안 돼, 독에 물 채워야 해. 엄마 오시면 나 혼난단 말이야."
그러다가 아이는 그림책을 펼친 채, 참새와 두꺼비가 혼나는 상상을 하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조용히 시간이 흘렀다.
방문이 열리고, 언니가 들어왔다.
자고 있는 동생을 보고 편안하게 눕혀주려다가 무릎이 다친 걸 발견했다
동생을 깨워 상처에 빨간약을 발라주며 왜 넘어졌는지 물어봤다.

동생은 언니에게 옥수수빵을 달라고 했다. 학교에서 주는 옥수수 빵을, 언니는 늘 동생과
나눠 먹으려고 집에 가져왔었다. 언니는 동생에게 빵을 주며 말했다.

"앞으로 가게 갈 때 조심해."

그날 무릎이 조금 아팠지만, 언니의 손은 다정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주던 언니의 손길과 옥수수빵의
기억은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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