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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과 천국을 왕복한 새벽의 5분

지각하지도 않은 새벽 6시에 영어가 꼬였다.

by 김유인

어느 새벽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다가 시계를 봤는데 6시였다.
순간 잠이 번쩍 깼다.
6시 30분까지 가야 하는데, 늦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다.

요양원 가는 길에 다리가 있는데, 1년째 공사 중이라 6시만 되어도 벌써 정체가 시작된다.
평소에는 5시 40분에 출발하여 6시 전에 회사에 도착한다.

조용히 30분 정도 나만의 시간을 가진 뒤 일을 시작하는데, 오늘은 완전히 늦은 셈이었다.

일단 정신 차리고 재빨리 생각을 했다.
늦는 건 싫으니까, 회사에 아프다고 전화하기로 했다.

우리 회사는 아플 경우 자동응답 시스템으로 전화를 걸어야 한다.
전화하면 안내 음성에 따라 회사 번호, 내 직원 번호,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개인적으로 아픈지 일하다 다쳤는지 등 다양하고

까다로운 항목을 입력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보통은 회사번호하고 직원 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늘 월급 명세표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날은 어쩜 그렇게 선명하게 기억이 났는지!
지체 없이 번호를 눌러 나갔다.
보통은 한두 번 실수해서 끊었다가 다시 시작하는데 다행히 일사천리로 절차를 입력했다.

가능하면 빨리 연락을 해야 회사에서도 대체인력을 찾을 수 있다.
순서대로 번호를 누르면서 '어젯밤에 왜 알람을 안 켰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아뿔싸 '나 오늘 오후 근무구나. 그래서 알람을 안 켜고 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근무는 2시 30분부터 시작해서 아침에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었는데...
그런데 착각을 한 거다.
하지만 이미 자동응답 절차를 너무 많이 진행을 했다.

전화를 끊었다.

바로 스케줄러에게 전화를 했다.
이 상황을 설명하려니 영어가 꼬였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나의 실수를 설명했다.

평소에도 친절해서 '혹시 분노 조절 수업을 받았나?' 싶을 정도로 친절한 스케줄러는
걱정 말라며 오후에 일하러 올 것인지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짧은 5분 정도의 사건이었지만 아찔했다.
그리고 웃음이 났다.
덕분에 편안한 오전을 보내며 예정대로 오후에 출근을 했다.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이민후에는 약속 시간이나 회사 지각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원래 ADHD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실수를 많이 하지만,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실수 때문에 진땀 나고 그걸 또 설명하는 상황이 싫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민자로 타국에 사는 삶이 이 5분짜리 소동에 잘 드러난다.
겉으로는 잘 살고 있지만 스스로를 괜찮은지 계속 점검해야 하는 삶.


늘 다른 인종들 사이에 섬처럼 홀로 서서, 그들끼리 꽁꽁 뭉친 모습을 바라보며
'절대 실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늘 아침의 소동을 만든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 연차가 오래돼서 서로를 보듬어 주고 그들도 나를 그들의 울타리에 넣어주고 있으니...
결국 중요한 것은 지각 여부가 아니라,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이 낯선 땅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니까.



#이민 생활. # 직장인. # 지각. # 영어 울렁증

# 강박 관념 #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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