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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함께 한 자동차들

삶을 함께 달린 이야기

by 김유인

6년 전 어느 날, 운전 중 차에 이상이 생겨 서비스 센터를 찾았다.
9년을 함께한 차였지만, 캐나다에서 산 첫 차였고, 작지만 우리와 많은 추억을 함께한 고마운 차였다.

처음 이민 와서 6년 동안은 차 없이 살았다.
한국에서도 서른 살 이후로는 차를 몰고 다녔기에, 처음엔 참 힘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볼 때면,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버스와 스카이트레인을 갈아타야 했다.
더운 여름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버스를 기다렸고, 만원인 스카이트레인 안에서는 꿋꿋이 버텨야 했다.

그래도 차 없이 스탠리 파크, 노스밴쿠버, 화이트 락 같은 예쁜 바다나 산을 찾아다녔다.
Fish & Chips, 로컬 아이스크림, 이민자 나라답게 각국의 다양한 음식들을 먹으러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민 초기의 삶은, 인생 중반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모두가 인생의 열매를 키우는 시기, 나는 다시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과 함께 언어를 배우고, 일자리를 찾고, 친구를 사귀고, 살 집을 구해야 했다.

아직 변변한 직업을 구하기 전이라 차 없이 살 수밖에 없었다.
최저임금 직업을 전전하다가 간병인 코스를 알게 되었고, 8개월 동안 공부해 간병인이 되었다.
처음엔 영어로 소통하는 것도 어렵고, 생소한 분야라 일 자체가 낯설고 힘들었다.
필리핀, 인도 출신의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아, 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외딴섬처럼 외로웠다.

그래도 일을 시작하니 안정적인 수입이 생겼고, 2010년 마침내 첫 차를 구입했다.
작은 차였지만, 더는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됐고, 출퇴근은 물론
예전엔 대중교통으로 다니던 곳들을 차로 편하게 다닐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영역이 넓어지니, 시애틀 튤립 축제도 보러 갈 수 있었고,
국경을 넘어 캐나다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도 살 수 있었다.
무엇보다 Costco 회원카드를 만들어 마음껏 장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제일 좋았다.
Boxing Day에 55인치 TV를 억지로 차에 실어오기도 했고, 이사할 때는 여러 번 짐을 옮기며
작지만 든든한 나의 발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동고동락하던 나의 차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그날도 며칠 전부터 나던 브레이크 소리 때문에 서비스 센터를 찾았고,
견적을 보니 수리비가 차값보다 비쌌다.
잠시 고민 끝에, 우리는 새 차를 사기로 결정하고 그 자리에서 트레이드를 했다.

새 차는 예전부터 생각했던 하이브리드 모델로, 색상은 'Ocean Blue'.
햇빛 아래서는 맑은 바다색이고, 그늘에서는 짙은 남색으로 변하는 매력적인 색이다.
9년 만에 새 차를 사보니, 예전 차는 고인돌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최신 기술이 가득했다.
블루투스로 휴대폰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내비게이션은 터치스크린으로 조작되며,
좌석도 자동 조절이 가능한 완전 최신식이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9년이나 함께했던 차와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짐을 새 차로 옮기며 마음은 들떠 있었다.
새 차를 몰고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서자, 입구에 모여 있던 이웃들이 칭찬을 쏟아냈다.
“차 너무 예쁘다!”, “색깔이 정말 좋다!”, “어느 회사 거예요?”

이곳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파트 매니저는 자꾸 내 차에 관심을 보였고, 자기도 같은 모델을 사고 싶다고 했다.
몇 년 후, 매니저는 정말로 같은 브랜드의 하위 모델을 타고 나타났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그 모델은 인도산이었다.
“그건 한국에서 안 만들고 인도에서 만들어요.”라고 말하자, 그는 크게 실망했다.

몇 달 뒤, 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매니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본넷 열어봤더니 엔진에 ‘Made in Korea’라고 쓰여 있었어요!”
나는 “정말 다행이네요.”라고 답했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그렇지, 엔진은 당연히 한국에서 간 거겠지.'
KOREA라는 이름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진 것을 보며, 괜히 뿌듯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여섯 해가 지난 내 차를
엔진오일 교환과 점검을 위해 다시 서비스 센터에 맡겼다.
기다리는 동안 새 차들을 구경했고, 시운전도 해보며 또 한 번 설렘을 느꼈다.
6년 전처럼 다시 가슴이 뛰었다. 가격도 알아보고, 혜택도 물어보고...

하지만 경제적인 사정과 아직도 잘 달리는 내 차를 배신할 수 없었다.

이제 은퇴를 준비해야 할 시기. 이렇게 큰 지출은 사치였다.

점검이 끝난 차는 아직도 10년은 거뜬히 탈 수 있다고 나한테 말을 했다.

흥분을 가리 앉히고 조용히 차를 몰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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