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치투자

펀드매니저에게 양보하라

by 하연민

주식 투자는 철학과 전략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가치투자’는 거의 모든 투자 대가들이 주된 투자비법으로 꺼내 드는 카드다. 벤저민 그레이엄, 워렌 버핏 같은 구루들이 이미 몸소 검증한 방법 앞에 감히 ‘이견이 있다’고 말하려니, 온몸이 움츠러든다. 그래도 말해 보련다.


가치투자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내재가치 대비 저평가된 주식을 싸게 사서, 적정 가치에 도달할 때까지 보유한다.'


핵심 키워드는 세 가지다: 내재가치, 저평가, 적정가치.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재가치’가 가장 중요하다. 내재가치를 계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절대가치 평가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돈을 모두 더해 보는 것(DCF, Discounted Cash Flow)으로 계산해 볼 수도 있고, 혹은 당장 회사 문을 닫는다고 가정해, 빚잔치까지 다하고 남는 자산가치(청산가치)를 따져볼 수도 있다. 즉, 시장과 비교하지 않고, 기업 ‘그 자체’가 가진 본질적인 가치를 구해보는 것이다.


둘째, 상대가치 평가

역시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주되게는 동일 업종의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싸거나 비싼지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경제방송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 등이 대표적이다. 그럼 PER로 간단히 이해해 보자. 예를 들어 A와 B 기업이 모두 연간 100억 원을 벌지만, A는 500억 원의 가치로, B는 1,000억 원의 가치로 거래되고 있다면, A는 버는 돈보다 5배(PER 5배), B는 버는 돈보다 10배(PER 10배)로 시장에서 평가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A가 더 '저렴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내재가치'를 산정할 수 있다면, 그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은 ‘저평가’된 것이고, 경제상황과 업황을 반영해 예측한 목표가가 곧 ‘적정가치’가 된다. 예를 들어 9,500원의 '내재가치'가 있는 주식이 5,000원에 거래되는 '저평가'상태에 있다면, 그것을 사서, '적정가치'로 예측되는 10,000원에 팔면, 우리는 100% 수익률을 낼 수 있다.


환상적인 일이다. 이 글을 더 읽고 있을 이유가 없다. 가치투자를 이해했으니, 이제 시장으로 나가 가치주를 찾기만 하면 우리는 모두 금세 부자가 될 수 있다.


“누가 그걸 몰라요? 그런데 우리가 무슨 수로 그 복잡한 내재가치를 구해서 가치주를 찾는단 말이에요?"


독자들의 불평을 이해할 수 있지만, 위 질문은 틀렸다. 내재가치를 구하는 것은 기술적인 것으로, 조금만 배우면 어렵지 않을뿐더러, 가치주로 분류되는 주식들 역시 약간의 수고를 들여 검색해 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의외로 가치주를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실상 가치주는 꽤 오랜 기간 가치주로 시장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제는 내재가치의 계산도, 가치주를 찾는 어려움도 아니다. 가치투자에 대한 진정한 고민은 다른 데에 있다. 도대체 가치주, 그 숨은, 아니 숨어있지 않은 진주들은 왜 저평가되어 있으며, 또 언제 적정가치에 도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가치주는 대체로 성장이 제한되어 있거나,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왜 이 주식이 저평가되어 있는가?'에 대한 분명한 해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치투자자들은 종종 그 질문에 침묵하거나, 다양한 합리화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언제나 옳은 시장(Market is always right)'은 그런 논리에 관심 없이, 오랜 기간 그들을 '저평가'상태로 남겨 둔다. 자칫 가치투자자들은 일종의 인디언 기우제 투자자가 되고 만다.


그레이엄이 가치투자를 제창했던 시절과 지금은 다르다. 그 당시엔 ‘내재가치’라는 개념 자체가 신선했다. 그것은 차라리 정보의 불균형을 활용한 투자법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그 개념을 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가치투자라면, 이미 가격에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여전히 저평가 상태라면, 그것은 성장의 한계, 산업의 쇠퇴, 시장 신뢰 부족 등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는 때문일 수 있다.


가치투자의 위험은 단지 수익률이 낮거나 주가가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진짜 위험은, '언젠가는 제 가치를 회복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의도하지 않은 장기투자의 덫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주가는 장기적으로 오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결국 '장기적'으로 늙고 죽는다.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면, 이 같은 투자법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진정한 투자는 미래의 변화를 먼저 알아채고, 현재에서 먼저 그곳에 도달해 있는 것, 즉 '선취'하는 것이다. 선취매가 투자의 본질이다.


물론 자신의 '선취'가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 그 실패한 선취는 다음의 선취에 배움이 되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통찰력을 키워가는 동력이 된다. 반면에 적정가치를 기다리다 실패하는 것은 아무런 배움 없이, 투자의 가장 큰 기회비용인 시간을 잃게 된다.


가치투자는 언뜻 위대한 투자법으로 보이지만, 개인 투자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그것은 가치투자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에게나 유용한 일이다. 가치주가 운 좋게 적정가치를 찾든, 그렇지 않든 펀드수수료는 매일매일 일할로 계산되어 수취된다. 멋진 정장을 차려입은 펀드매니저에게 가치투자를 하는 일은, 잘 되면 훌륭한 가치투자매니저로 성공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좋은 커리어로 삼고 나중에 성장주펀드 매니저로 나아가면 되는 일이다. 그러니 가치주 투자는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미래를 읽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상방이 제한된 적정가치를 찾는 투자를 하기보다는, 한계를 모르고 힘차게 뻗어나갈 위대한 기업을 찾는 것이 훨씬 더 가슴 뛰는 일일 것이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2화손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