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과 존재 사이

나는 PTSD인가, 장애인가, 인간인가

by 민진성 mola mola

진단이라는 이름의 낙인

나는 DSM-5 기준으로 PTSD 진단 항목 A부터 H까지 모두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정신의학적 체계가 설정한 외상의 정의와 그로 인한 반응, 회피, 해리, 각성, 부정적 인지 및 사회적 기능의 훼손까지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상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장애인'이 아니다. 법적으로 장애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병역법상 정신적 사유로 복무 감면이 인정되려면 기능 저하가 얼마나 심한지를 따져야 한다. 치료를 받고 있어도, 진단명이 있어도, 삶의 질이 무너져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럼 나는 뭐란 말인가?



‘정상’이라는 허상과 ‘장애’라는 경계

우리 사회는 질병과 장애, 기능 저하와 사회적 고립 사이에 선을 긋는다. 마치 그렇게 구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듯이. 하지만 정신질환은 항상 그 경계 위에 있다. 특히 PTSD는 더욱 그렇다. PTSD는 단지 슬프거나 불안하거나 힘든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왜곡이 아니라 기억의 재현이다. 그것은 반응이 아니라 신경계의 구조 자체의 손상이다. 누군가에게는 단지 예민함으로 보일 수 있는 것도, 실제로는 생존을 위한 긴박한 반사다. 그런데도 "너는 법적으로 장애인이 아니야"라는 말 한마디에 이 경험은 애매한 고통으로 밀려난다.



제도는 설명하지 못하는 고통

우리가 사는 세상은 표준화된 증거를 요구한다. 병원 진단서, 처방전, 통계적 진단, 기능 평가표. 그런데 PTSD는 표준화하기 어려운 내면의 전장이다. 그리고 그 전장은 개인마다 다르다. 나는 매일같이 전투에 임하고 있다. 새벽이 무서워 잠을 미루고, 특정 단어 하나에 심장이 요동친다. 외상 기억이 아니라 외상 반응의 패턴이 내 일상을 장악하고 있다. 내가 사회적 기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해도, 그것은 장애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버티는 중이라는 뜻이다.



나는 무엇으로 불려야 하는가

나는 피해자일 수도 있고, 생존자일 수도 있고, 진단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존재다. 살아 있는 한 사람. 외상을 겪고도 살아 있는 사람. 그 생존의 맥락을 부정하고 진단서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제도는 인간을 다시 외상화할 뿐이다. PTSD는 단지 질병의 이름이 아니라, 존엄에 대한 질문이다. 누가 고통을 정의할 수 있는가? 누가 고통을 인정해줄 수 있는가? 그리고 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나’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가? 나는 지금도 묻는다. 나는 장애인가? 그리고 이 사회는 나의 생존을 존중하는 구조인가? 그 질문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202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