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바로 맞은편에 작은 빵집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홍자오미엔바오 (대추 빵)을 하나 얼른 급하게 사서는 남호 캠퍼스로 가는 셔틀에 몸을 싣곤 했다.
비닐봉지에 대충 싼 짙은 대추색 카스텔라인데, 한 입 베어 물면 대추 향이 촉촉하게 풍겨온다.
대추 요거트, 대추 아이스크림, 대추 음료, 대추 빵, 심지어는 그냥 생대추도 진짜 말도 안 되게 맛있었다.
한국에서 대추는 수정과 꾸밈용에 불과했는데, 중국에서는 대추 어쩌고는 전부 다 맛있었다.
참 희한했다.
한국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중국에서는 없어서 못 먹는 게 또 있었다.
가지다.
한국에서 가지 조림은 흐느적흐느적거리는 불쾌한 식감에,
주르륵 흐르는 보라색 물을 보면, 있던 식욕도 똑 떨어지는 비호감이었다.
뽀얗게 매끈한 양파도 가지조림 속에서는 보랏빛으로 파랗게 질려 있곤 했는데,
맛은 다를 바 없는 양파일 텐데 가지에게 옮아 비호감이 되었다.
그런데 중국 가지는 남달랐다.
지삼선(땅에서 나는 신선한 3가지 재료인 가지, 감자, 고추를 볶아낸 음식)은 가장 좋아하던 반찬이었다.
들큰하고 짭조름한 캐러멜색 소스와 은근하게 볶아진 가지를 흰 밥에 척 얹어 먹노라면,
이게 바로 중국 밥도둑이다. “지아 치에즈 바”(가지 좀 더 추가해주세요!)
밥반찬 말고 술 반찬으로도 그만인 가지요리도 있다.
촬디엔(양 꼬칫집)에 가면 빼먹지 말고 꼭 시켜야 하는 가지구이 요리.
가지 살을 부채처럼 넓게 펼친 뒤 알싸하고 매콤한 붉은 소스를 발라 석쇠에 구워낸다.
보라색 껍질은 먹지 않고,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가지 속만 결 따라 젓가락으로 쭉 잡아당기면 수타면 마냥 길쭉하게 뜯어진다. 홋 또 또 또 뜨거울 때 쭉 찢어내 부추구이와 돌돌 말아먹으면 맥주가 꼴 꼴 꼴 꼴 들어간다.
중국 요리만큼 중독된 것이 있었으니, 타오바오였다.
타오바오는 우리나라 지마켓, 쿠팡 같은 온라인 구매 플랫폼인데, 정말 말도 안 되게 싸고 없는 게 없다.
게다가 5년 전 중국은 최저 임금이나 노동자 인권 같은 개념은 씨알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노동 집약적인 택배 산업은 불가능도 가능케 하는 빠르고 정확한 배달을 자랑할 수 있었다.
타오바오 앱에서 배송 현황을 조회하면, 중국 전도에 택배 차량이 움직이는 것이 찍히는데,
한 번은 상해에서 출발한 택배가 다음 날 도착한 적도 있었다.
(상해에서 길림은 2,100km로 차로 운전하면 시속 100km로 쉬지 않고 달려도 21시간이 걸린다)
빠른 배송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어마어마하게 싼 가격이었는데, 18위안(3천 원 정도)이면 원피스 한 벌을 살 수 있는 정도였다. 5만 원이면 거의 한 계절 동안 입을 수 있는 옷을 구매할 수 있었는데, 너무 싸서 가끔은 똑같은 옷을 여러 벌 사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타오바오에서 산 옷들은 꽤나 마음에 들었는데, 특히 청바지들이 아주 그냥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국에 소위 ‘마약 바지’가 유행하기 전부터 중국 청바지들은 스판을 마구 먹여 쭉쭉 늘어났다.
게다가 바지 밑위가 넉넉해서 엉덩이가 큰 내 체형에 그만이었다.
하지만 굳게 막힌 단춧 구멍이 아쉬웠다.
외국 브랜드가 아니라면 봉제선으로 구멍이 뚫릴 자리를 마련해 둔 채로 막힌 것이 보통이다. 바지를 배송 받으면 달려가 가위를 가져온 뒤, 구멍 자리를 반으로 접어 가위로 사각사각 잘라 구멍을 내준다. 간신히 구멍이 트이기 시작한 곳에 단추를 끼웠다 뺐다를 반복해서 구멍을 넓혀준다.
청바지 단춧구멍은 다행히 한 개라서 할 만하다.
하지만 가끔 셔츠 구멍이 막혀 있는 걸 발견하곤 하는데, 이런 셔츠들은 복불복으로 어떤 단추 구멍이 막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찾아가면서 뚫어야 하는 데 아주 번거롭기 짝이 없다.
셔츠를 입고 단추를 위에서부터 채워 나가는데 3번째쯤 단추가 구멍이 막혀 있으면,
아이고…. 김빠지는 한숨 소리가 절로 난다.
바지 구명, 셔츠 구멍 뚫으면서 그래도 행복하게 지냈던 3학년이 지나고,
졸업 학년 때는 대대적인 취업난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지냈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분명 신입을 뽑는데 이력서의 경력 사항에는 무엇을 적어야 할까, 알바에 봉사활동까지 억지로 채워 내려가다 얼떨결에 취업하였다. 나의 보기에 그럴싸한 번듯한 첫 직장은 대기업이었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 다 망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빙자한 협박 아래, 하고 싶은 일보다는 누구나 들으면 아는 회사를 택했다. 내 이력서의 첫 단추는 유명 간판으로 반짝일 수 있는 현멍(현명한듯 하나 멍청한)하게 채워졌다.
열심히 회사에 다녔다. 회사 일은 꽤 재미있었다.
하지만 입사 4년 차 선임으로 일하던 내 앞에 일렬로 나란히 줄지어 선 그다음 단추들을 보자니, 꼭 채워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단추를 주르륵 채우고 나면 3년 후에는, 5년 후에는,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이 될 수 있는지가 정해져 있었다.
모든 단추를 순서대로 채워야 옷을 바르게 입는 셔츠처럼,
그 회사 안에서 나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지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특별한 고민 없이 나란히 기다리고 있는 단추를 채워 만들어 낸 내 미래가 과연 나의 것일까?
퇴사 후 계획했던 유학길은 코로나 때문에 중단되었고, 귀국 후 급히 잡은 일자리는 또다른 반짝거리는 간판이었지만 나와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다시 그다음 단추를 어떻게 해볼까 고민하는 지금, 문뜩 단추 구멍을 뚫던 때가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구멍을 뚫으면서까지 다음 단추를 채워 나갈 수 있다.
바르게 채워낼 단추 구멍들과 똑같은 단추들이 기다리고 있는 셔츠처럼 기본은 보장되는 안전한 삶도 가치있다. 하지만 단추 구멍을 뚫어가며 그다음으로 나아가는 게 어쩌면 더 내 스타일인가 보다. 다소 번거롭고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더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한 단추 더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