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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된 우아함

과, 10월 휴재공지입니다.

by 이찬란




저녁 시간이 지나도록 배가 고프지 않아 식사를 건너뛸까 하다 냉동실에 남아있는 옥수수가 떠올랐다. 여름에 부모님이 삶아 갖다주신 걸 얼려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먹는 중이다. 갖다주겠다는 반찬은 마다해도 옥수수만은 반갑게 받는다. 좋아하기 때문이다. 살림을 할 때는 직접 손질해 냉동실에 채워놓기도 했는데, 혼자 살게 되면서는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먹지 않게 된 음식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조리 과정 없이 과일처럼 껍질만 벗겨 먹는 초당 옥수수를 사 먹어 보았는데 좋아하는 맛이 아니라 결국 다 못 먹고 버린 기억이 있다. 뉴슈가를 푼 물에 뜨겁게 삶아 단물을 머금은 옥수수 알의 쫄깃함과는 비교되지 않는 맛이었다.


옥수수는 유독 편식이 심했던 어린 시절 맛있게 먹던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다. 조금만 비리고 물컹해도 입안엣걸 다 뱉어내 엄마에게 혼나던 나는 여름이면 방바닥을 뒹굴며 밥 대신 옥수수를 먹었다. 토마토와 옥수수, 그거면 뜨거운 계절이 다 갔다. 커가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점차 늘어나고,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지면서 차츰 먹는 횟수가 줄었지만 그래도 여름이 시작되면 꼭 한 번씩은 찾아 먹곤 했다.

옥수수가 그토록 특별해진 이유를 되짚다 보면 남다른 기억이 하나 더 떠오른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이었다. 집 앞 골목, 오래된 동네 의원 화단 앞에 주황색 포장을 친 수레가 생겼다. 나는 안을 들춰 볼 수 없도록 굵은 줄로 포장의 허리 부분을 꽁꽁 동여맨 채 서 있는 수레의 정체가 궁금해 애가 닳았다. 바스락대는 포장을 손가락으로 눌러보기도 하고 단단히 묶인 매듭을 살짝 당겨보기도 했다.


수레의 주인이 나타난 건 며칠 후였다. 학교를 마치고 골목의 벽들을 손바닥으로 쓸며 걷다가 포장이 돌돌 말려 올라간 수레를 보았다. 바퀴를 고정한 수레 위에는 평평한 판이 놓였고, 김이 오르는 크고 작은 솥 몇 개와 널찍한 직사각형의 철판이 있었다. 마치 한 칸짜리 작은 식당이 차려진 듯했다. 그 한가운데 체구가 작고 늠름한 주인이 서 있었다. 나는 벽들의 먼지를 빨아들여 새카매진 손끝을 말아쥐고 멀찌감치 떨어져 걸으며 그녀를 관찰했다. 아직 손님이 들지 않은 포장 안에서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혼자 무척 바빠 보였다.


그날 이후 그 작은 노점의 단골이 되었다. 메뉴는 삶은 옥수수와 다슬기, 번데기, 그리고 호떡이었다. 그중 옥수수는 여름에만 팔았다. 주인아줌마가 은색 양은솥의 뚜껑을 열면 왈칵 쏟아져 나오는 김 아래 비닐로 덮인 옥수수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보통은 두세 개 묶음으로 팔았지만 나는 한 개씩만 사 먹었다. 어떤 날은 옥수수를, 또 다른 날은 다슬기나 번데기를 샀다. 오십 원이나 백 원을 내면 아줌마는 반들반들한 광고지로 작게 접은 고깔에 그것들을 수북하게 담아주었다. 그걸 받아 들고 수레 옆에 서서 오래오래 먹었다. 아줌마가 넓은 철판 위에서 능수능란한 솜씨로 호떡 굽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손님이 많아지면 귀찮을 법도 한데 그녀는 걸리적거리는 어린아이를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호떡을 굽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밥솥 같은 그릇에 가득 담긴 무른 반죽을 길게 늘여 달걀 크기만큼 동그랗게 떼어내고, 손가락으로 눌러 안을 오목하게 만들어준 후, 설탕과 잘게 다진 땅콩 가루를 한 숟가락 넣고 다시 주머니처럼 여민다. 반죽이 치즈처럼 늘어나며 자꾸 붙기 때문에 아줌마는 중간중간 손에 기름을 묻혔다. 동그란 반죽을 철판 위에 내려놓을 때는 손바닥에 마지막까지 붙어있던 반죽이 물방울 모양으로 잠깐 늘어졌다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면 아줌마가 손잡이 달린 누르개로 철판 위의 기름을 재빨리 떠서 반죽 위에 뿌리고 지그시 눌렀다. 너무 세게 누르면 반죽이 찢어져 설탕이 흘러나오므로 적당한 세기로 힘을 주어 여러 번 돌려가며 모양을 만들었다. 나는 누르개로 호떡 끝을 들어 휙, 뒤집는 순간을 매번 숨죽이며 지켜봤다. 유능한 곡예사가 공중제비 돌 듯 기름을 머금은 호떡이 가볍게 한 바퀴 돌아 다시 안착하는 순간은 경이로웠다. 아줌마는 철판에 줄지어 놓인 호떡들을 주저함 없이 연달아 뒤집었다. 그 광경을 다슬기를 하나씩 빨아 먹으며, 혹은 이쑤시개로 번데기를 찍어 꼭꼭 씹으며 다리가 아플 때까지 구경했다. 그 오차 없이 유려한 손동작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궁금해하면서 곰보 자국으로 뒤덮인, 호떡처럼 둥그스름한 아줌마의 얼굴을 몰래몰래 훔쳐봤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곰보 아줌마라고 불렀다. 엄마도 내게 옥수수 심부름을 시킬 때면 곰보 아줌마한테 가서 받아오라고 말하곤 했다. 투박한 외모에, 수두 자국으로 가득한 얼굴 때문인지 그녀를 둘러싼 소문은 우울한 것들뿐이었다. 간간이 미용실이나 슈퍼에서 알콜 중독에 걸린 남편에게 매일 맞는다거나, 혹은 그 남편이 암에 걸렸다거나,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이야기가 오가는 걸 주워들었다. 그런 날은 왠지 두려운 마음으로 아줌마를 보게 되었다. 자신에 대한 소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늘 반쯤 웃는 얼굴로 아주 능숙하게 호떡을 구워냈다. 홀린 듯 그 광경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 순간 소문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기름 바른 손바닥에 붙은 반죽처럼, 그녀로부터 말끔히 떨어져 나가 노릇하고 달콤한 꿀을 품은 무언가로 변하는 듯했다. 나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다슬기를 쪽쪽 빨아 먹으며 수레 앞을 지켰다.


몇 년이 지나 수레는 처음처럼 포장을 뒤집어쓴 모양으로 골목에 남겨졌다. 곰보 아줌마에 관한 소문은 누군가에 의해 수레가 철거된 후에도 한동안 동네를 떠돌았다. 나는 오며 가며 포장에 싸인 수레를, 수레가 사라진 자리를 눈여겨보곤 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매끄러운 손놀림과 한결같은 표정을 떠올렸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그때 내가 그녀에게서 느꼈던 경이로움의 정체를 짐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오래 견디고 반복해 온 사람이 가지는 숙련된 우아함 같은 게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들러붙는 불안과 의심과 좌절 같은 것들을 모두 같은 방식으로, 미끄러트리듯 우아하게 자신으로부터 떼어내는...


포장 안에 있는 동안 아줌마는 사계절 내내 호떡을 구웠다. 더운 여름에도 호떡은 잘 팔렸지만 정작 내가 그걸 사 먹은 기억이 없다. 뉴슈가의 들큼함을 품은 연기를 피워내는 옥수수 솥 옆에 서서 호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경만 했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옥수수를 보면 곰보 아줌마가 떠오르는 건. 혹은 그녀의 숙련된 우아함이 부러운 날 옥수수가 생각나는 건.

글을 쓸 때면 늘 미리 들러붙는 막막함과 좌절을 그녀처럼 부드럽게 미끄러트릴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며 냉동실에서 얼린 옥수수를 하나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적당히 따끈해진 옥수수를 물고 이로 하나씩 뜯어 먹어가며 꾸역꾸역 글을 쓴다.

※ 언제나 어설픈 글을 기꺼이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는 이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브런치에 연재했던 소설 <나의 벤 존슨>을 출간하게 될 예정입니다. 감사하게도 브런치팀이 투고를 진행해 주셨고, 시원북스와 출간계약을 마쳤습니다.

연말 출간을 위해 10월 말까지 1차 원고를 완성해야 해서 마음이 조금 급해졌습니다. 한 번에 한 가지 밖에 못 하는 저는 그래서 10월 한 달간 휴재를 하기로 했습니다. 도저히 두 개를 병행할 엄두가... 잠시 기다려주시면 좀 더 나아진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러고 싶어요. ㅜㅜ

이제 기다리던 가을입니다. 모두 아름다운 계절을 흠뻑 맞이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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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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