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여동생의 카톡이 왔다.
-친구가 그러는데 나 혹시 이 병 아니냐고 그러네. 자기 시누이도 진단받았다고
카톡에 ‘루푸스병’의 증상과 치료 방법에 대한 첨부파일이 따라 올라왔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계속 손가락이랑 손목이 퉁퉁 붓고 아파서…….”
야식집을 운영하는 동생은 무거운 식기를 들고 나르고 하느라 손을 많이 사용한다. 나는 그 점을 지적하며 많이 쓰니까 아픈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병원에는 가보았냐고도 물었다. 동생은 아픈 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며 혹시나 싶어 류마티스 검사도 했는데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통화를 하며 인터넷을 검색했다.
“같은 부위가 계속 아파, 아니면 돌아가면서 아파?”
“같은 부위. 손가락 마디마디랑 손목.”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조금 화가 난 상태로 ‘손가락 저림, 손목 팔꿈치 통증은 척골신경 포착 증후군’이라는 기사를 찾아내 보냈다.
“루푸스는 엄청 큰 병인데. 이런 거 아닐까?”
“모르겠어. 뭘 해도 안 나으니까 제대로 검사받아 볼까 싶기도 하고……. 그러려면 서울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진단을 받으면 그것대로 또 일이 많아지고.”
동생은 어렸을 때도 자주 아팠다. 허약해서라기보다 오히려 몸 쓰는데 거침이 없어서였다. 친구들과 높은 곳에서 뛰다 넘어지고, 까지고, 부러지고……. 무엇 때문인지 팔이 빠져 민간요법으로 급하게 끼워 맞췄던 기억도 난다. 그럴 때마다 아프다고 새파랗게 질려 울면서도 돌아서면 또 다쳐서 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쌀쌀맞은 언니였던 나는 그런 동생을 위로하기는커녕 그녀의 극성맞음을 타박하며 놀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놀다가 다치는 나이는 지났기 때문이다.
동생의 극성맞음은 어른이 되어가며 놀이에서 일로 방향을 틀었다. 회사에선 맡은 일보다 더 많은 일을 서슴없이 하고, 저녁에는 야식집을 운영하고, 아이 둘에 이혼한 전남편과 간간이 시부모님 치다꺼리까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지칠 만큼의 일을 해냈다. 쉴 새 없이 일하던 동생은 몇 달 전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러더니 아픈 곳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아프기야 계속 아팠을 것이다. 다만 그전까지 통증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을 뿐. 이제 한숨 돌리고 나니 제 몸의 고장 난 곳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속이 상하고 화가 났다. 아프기 전에 제 몸을 먼저 돌봤어야지, 오지랖 넓게 여기저기 기운을 다 퍼주고, 나보다도 어린 게 다 늙은 사람처럼……. 맘 같아선 어릴 적처럼 다다다 쏟아붓고 싶었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동생에게 필요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아파서 어떡하느냐, 급한 대로 찜질이라도 해보자, 반신욕도 좋더라, 하면서 병원에 가기 전 집에서 할 수 있는 응급처방을 아는 대로 다 꺼내놓았다. 어지간히 아프고 걱정이 됐던지 동생은 고분고분 대답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이번엔 언니가 허리를 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여느 때처럼 가볍게 출근한 나는 허리가 기역자로 꺾인 채 쩔쩔매는 언니를 보곤 깜짝 놀랐다.
“엊저녁에 청소하다 먼지 때문에 재채기를 세게 했거든…….”
이유를 설명하면서 언니는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웃음을 터트렸고 그러다가 또 허리를 부여잡았다. 나도 웃다가 한숨을 쉬다가 이마를 짚었다. 그날 하루 종일 허리를 못 펴고 의자에서 일어날 때마다 장우산을 짚는 언니는 짓궂은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이들을 향해 “야! 니네 우리 언니 놀리지 마라!” 하면서 놀리는 녀석은 숙제를 옴팡지게 내주겠다고 공갈 협박을 했다.
그 상태로 한동안 허리를 못 펴던 언니는 또 얼마 후엔 발가락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왔고, 곧이어 새끼발가락 골절로 깁스를 했다. 심지어 새끼발가락은 한참 전부터 아팠는데 참고 지내다가 병원에 가보니 심하게 골절된 상태였다고 한다.
“골절이면 뼈가 부러졌다는 거 아니야?”
“맞아. 의사가 세 조각으로 부러졌다고 그러더라고.”
기가 막혔다. 아, 자매들이여! 도대체 그대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여동생이 겁 없이 일을 하는 편이라면 언니는 거기에 무던함까지 더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그럴 수 있었던 건 타고난 체력과 우월한 신체 조건 덕분이었다. 반면 날 때부터 골골했던 나는 자라는 동안 녹용에 흑염소에, 지네와 웅담까지 안 먹어본 게 없다. 부모님은 아직도 몸에 좋은 것이 있으면 내 입에 먼저 넣어주고 본다. 언니와 여동생도 힘이 들어가는 일에선 나를 제쳐놓는다. 그렇게 부모와 자매들로부터 약하고 까탈스러운 아이로 돌봄을 받으며 자란 덕에 나는 내 몸을 챙기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되었다. 하루 힘들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는 쉬는 나와 달리 언니와 여동생은 쉬는 법을 모른다.
나의 힘듦은 휴식으로 이어지지만, 두 사람의 힘듦은 치료로 귀결된다.
“그러게 왜 그렇게 무리를 하는 거야. 쉬엄쉬엄 해.”라고 말하면 그들은 답한다.
“쉴 수가 없어.”
“일을 벌이기 전에 쉴 틈을 미리 생각해야지.”
“아니, 그러니까 틈이 없다니까.”
우리의 대화는 무한 굴레처럼 반복된다.
나는 그들이 아픈 것이 답답하고, 속상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두 사람이 가졌어야 할 틈 중 일부는 나에게 할애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청소와 심부름 같은 것들로부터 시작해 어린 남동생을 돌보는 일, 서로의 아이를 맡아주는 일, 부모님을 챙기는 일까지. 내가 언제든 못해 또는 하기 싫어, 라고 말하면 그들 중 하나가 나선다. 어쩌면 나의 수많은 ‘못 해’ 이전에 그들이 미리 해치운 일들이 몇 배나 더 많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확실히, 그리고 여전히……. 그것 역시 나와 자매들 사이에서 벗기 힘든 무한 굴레처럼 반복되는 중이다.
가끔은 하찮은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한에서 직접 도울 일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큰 소용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한다. 열성적인 공감과 응원, 그리고 그동안 나를 돌보며 쌓아온 각종 꿀팁을 전수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 몸을 고장 나지 않게 적당히 사용하는 법이나 게으름 부리는 법, 안 해도 되는 일은 미루는 스킬, 그보다 먼저 안 해도 될 일을 구분하는 법 같은…….
오늘도 우리들의 단톡창엔 두 부상자의 사진이 올라왔다.
-난 터널 증후군. 좀 전에 병원 다녀옴.
-ㅋㅋ 난 발가락 골절
-둘 다 막상막하네
-신경 주사 맞으니 살 것 같음
-안 죽었으니 감사땡큐
-여인들이여 몸은 쓰는 만큼 망가진다네. 제발~~고정하시오!!!
언니와 여동생이 건강하길 바란다. 남을 돌보기 이전에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무리하지 않기를, 젊음이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님을. 그러므로 이제는 나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함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에게 내 몸 사용 설명서라도 만들어주고 싶다.
진짜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