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의 글귀들 01
우리는 힘을 주고 태어나, 힘을 빼며 죽는다. 그리고 삶 대부분을 힘을 주거나 빼며 살아간다. 중요한 건 언제 힘을 주고, 언제 빼느냐 하는 것이다. 수영을 배울 때 긴장한 채 버둥거릴수록 물을 먹고 수면 아래로 더 가라앉는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은 온몸에 힘을 풀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력’을 이용해 스스로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백영옥 – 나로 사는 힘 2화
나는 단번에 진급했다. 그리고나서 3개월을 심리치료를 받았다. 위에 글처럼 힘 빼는 법을 몰라 완전히 크게 넘어져 버린 것이다. 우리 항공사의 부서 인원 수는 6천명이 훌쩍 넘어 웬만한 중소기업 직원 수보다 많다. 그만큼 한 해에 각 직급 별로 경쟁해야 하는 인원수도 많다는 말이다. 우연히 0.078의 숫자로 당락이 결정되는 표를 본 후로 나는 3년 동안 한 번도 힘을 빼지 못하고 비행을 다녔다. 한 번의 실수로 진급에 떨어질 수 있음을 알고 매번 긴장하며 출근하였다. 출근 전에 잠 못 이루는 것은 둘째 치고, 날씨나 손님들의 불만과 같은 통제권 밖의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만 갔다. 더불어 불규칙적인 생활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도 점점 늘어갔다.
더 이상 못 참겠다 싶은 순간, 감사하게도 진급 발표가 났다. 며칠은 그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느라 좋았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그 뒤로 허무감과 함께 긴장이 전부 풀려 버렸다. 그동안 꾸역꾸역 정신력으로 버텼던 몸도 아프기 시작했다. 몸이 아파서 정신력이 약해졌는지 선배님들이 하는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눈물이 났다. 손님들이 불만 하거나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건 참을만 했다. 그런 건 월급 안에 포함 된거라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직장 동료는 달랐다. 일찍 진급한 나를 시기 질투해서 이간질하고, 일로서 꼬투리 잡기 위해 서비스 매뉴얼을 매번 찾아보는 선배님을 감당하기엔 힘에 부쳤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에게 비빔밥 드리면서 “스테이크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마음이 힘들어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를 나타내는 표면적 신호였던 것이다. 그 해 겨울 나는 심리치료를 목적으로 3개월 내내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억지로 웃어야 하고,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시간들이 일상에서 빠지자 불안한 감정들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때 전문의 선생님이 나에게 자주 물어본 말이 있다. “잠은 잘 잤어요? 밥은 제때 제때 먹었어요?” 그만큼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는 두개의 축이 ‘잠’과 ‘밥’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3년 넘게 수면패턴과 끼니를 규칙적으로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리 진급’이라는 목표로 잔뜩 힘을 준 채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았던 나는 서서히 나를 돌보는 애정의 시간을 가졌다. 위에 글 에서처럼 처음으로 온 몸에 힘을 빼고 부력으로 떠오르기를 간절히 기다렸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1년에 한달은 정기적으로 비행을 하지 않는다. 그때는 승무원 명찰을 떼고 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십년 넘게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비행을 다닐 수 있었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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