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의 글귀들 04
나는 그저 이런 생각으로 산다. 가능한 한 남에게 폐나 끼치지 말자. 그런 한도 내에서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 하며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인생을 즐기되, 이왕이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남에게도 좀 잘해주자. 큰 희생까지는 못하겠고 여력이 있다면 말이다. 굳이 남에게 못되게 굴 필요 있나. 고정되고 획일적인 것보다 변화와 다양성이 좋고,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선호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내에서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다양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껴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가고 싶은 것이 최대의 야심이다. 문유석 – 개인주의자 선언
20대의 나는 거절을 못하는 예스맨이었다. 비행기에서 여러 사람들과 협력해서 일하다 보면 서로에게 부탁할 일들이 많이 생긴다. 내 일이 그녀의 일이 되고, 그녀의 일이 내 일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한 쪽 방향에만 유난히 예민한 이들이 있다. 그런 류의 사람들과 일을 할 때면 폐 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일했다. 지금은 일의 수완이 늘어 수월하게 도와주지만 한창 일을 배울 때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수 십 번 내뱉고 내리는 비행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인사를 하는 것보다 받는 게 맘이 편했고, 그 만큼 내 몫의 일을 빨리 소화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이 점이 바로 예스맨의 긍정해석이다.
반면에 위의 저자와 비슷한 야심을 품고 사는 난, ‘큰 희생까지는 못하겠고 여력이 있다면 남에게도 잘해주자’란 말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여기서 콕 집고 넘어가고 싶은 전제가 바로 ‘여력이 있다면’이다. 나는 20대에 그 여력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인 나는 그게 올바른 직장인의 태도인줄 착각했었다. 우연한 계기로 회사에서 내가 도와줬던 분이 본인의 이익을 챙기고자 태세전환을 하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순진했던 한 순간의 선택이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작동시켜 버렸다. 씁쓸하지만 그 후로 ‘예스’라 대답하기 보단 예쁘게 거절하는 법을 익혀 나갔다. 하고 싶지 않고 안되는 것은 그 자리에서 텀을 두지 않고 웃으며 바로 말하는 식이었다. 혹시 고민하는 모습이 상대방에게 괜한 기대심을 갖게 할까 봐 보수적으로 여력을 감안하고 빠르게 거절했다. 그렇게 거절해도 관계가 나빠지지 않았다. 그 순간은 겸연쩍어 어색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옅어져 갔다. 그러니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자. 항상 ‘나’ 다음에 ‘남’이다. 인생에서 이 순위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나만큼 나를 지켜줄 사람은 없다. 이기적으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나를 지키며 살라는 말이다.
개인주의를 선언하는 저자처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되 살아가는 동안 하고 싶은 것들 다양하게 즐기고 만끽하며 나만의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인간으로 조화롭게 어울리며 살아가고 싶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내가 들어갈 수 있는 행복구역 정도는 보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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