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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현 Sep 06. 2024

가족벙커에 빠지다

돈이 잠식해버린 효심



“항상 좋은 일로만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런 일로 인사 드리게 돼 유감이다. 일이 너무 커져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이렇게 큰 사건이 터지고 나서는 더 이상 어떤 채무에도 제가 책임질 방법이 없다. 더 이상 책임지지 않겠다고 확실히 말씀 드리려 이 자리에 나왔다.”


그는 “2016년에 은퇴하고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문제점을 많이 알게 됐다. 그때는 국가대표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어서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다. 채무를 한 번 해결하면 또 다른 게 수면 위로 올라오고, 마치 줄을 선 것처럼 채무 문제가 이어졌다. 문제가 점점 커졌고 현재 상황까지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 골프의 전설’ 박세리(47) 박세리희망재단 이사장이 아버지 고소와 관련한 기자회견 도중 끝내 눈물을 흘렸다. 18일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쉐어 삼성코엑스센터에서 열린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씨 사문서 위조 및 위조 사문서 행사 고소 관련 기자회견. 박세리희망재단은 지난해 9월 박세리 이사장 부친 박준철씨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대전 유성경찰서에 고소했고, 경찰이 최근 기소 의견으로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부녀에 드리웠던 어두운 그림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씨는 국제 골프학교를 설립하는 업체에서 참여 제안을 받고 재단법인 도장을 몰래 제작해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새만금 해양레저관광 복합단지는 올해 10월 개장 예정이었지만 박세리 부친의 위조 문서 제출로 사업이 중단됐다. 박 이사장은 ‘부친 고소가 부녀 갈등과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무관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박세리가 가족 벙커에 빠졌다'라는 뉴스 기사를 보고 심장박동 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 일이기도 했으니깐 말이다. 골프에서 벙커는 공이 모래에 묻혀 안 좋은 곳에 떨어졌음을 나타낸다. 기내에서 벙커는 승무원들이 쉬는 곳을 말하는데 대부분 비행기 하단에 위치해 있다. 의미는 다르지만 물리적으로 뭔가 아래쪽이기도 하고, 원하지 않는 곳에 빠진다는 맥락으로 봤을 땐 좋지 않은 것을 뜻한다. 난 차라리 '밑 빠진 곳에 물 붓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러한 가족 구멍을 둔 나머지 사람들은 항상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느낌이다. 나 또한 얼마 전 아버지 계좌에서 빠져나간 수천만 원의 돈을 보면서, 폭격 당한 마음을 부둥켜 안고 출근 한 적이 있었다. 그 처참한 배신감과 실망감은 매번 당할 때마다 너무나 아프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나를 뒤로 잡아끄는 그 느낌에 모든 걸 다 포기 하고 싶은 맘이 강하게 든다. 울면서 아버지께 말했다. "다른 부모처럼 뭐 해주지 않아도 돼. 제발 내 인생 방해만 하지 마"



아버지가 차용증도 없이 타인에게 건넨 돈은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로 내가 3년 동안 안 쓰고 안 먹고 악착같이 모은 돈이었다. 먹색으로 점쳐지던 그 찌질했던 시간들이 서럽게 느껴졌다. 하필이면 그 사실을 VIP 손님을 모시고 미국 비행을 가야만 하는 날에 알아버렸다. 아무리 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여러 번 베이스 덧칠을 한 볼은 반복된 터치에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은 이미 빨개져서 돌이킬 수가 없었다. 집에서 인천공항까지 버스 타면 한 시간 반이 걸린다. 맘껏 울 수 있는 시간은 그뿐이었다. 브리핑을 하고 손님을 대면하기 전까지 난 또 다른 자아를 끄집어내서 웃어야 했으니깐. 다행히 그날은 '사실이 아닐 거야. 돈 돌려받을 수 있을 거야'라는 현실 부정이 감정을 억누르면서 무사히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다. 



몇 년 째 암 투병 중이신 아버지가 그 돈을 치료비로 쓰신 거라 생각하려 한다. 그렇게 애써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래야만 아버지랑 눈이라도 마주칠 용기가 나니깐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현실을 최대한 빨리 받아들이고 개선해나가는 데 집중할 것이다. 흔한 자기계발서에나 볼 수 있는 다짐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지만.. 현재 진행형인 사건을 미화시키는 것만이 내가 당장 힘을 낼 수 있는 방법임을 밝힌다. 가족 벙커를 겪고 있는 모든 분들이 이 한 문장만 기억하고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침몰하고 있는 배를 살리려고 하다간 내 배까지 침몰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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