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간소한 물건과 단순한 삶을 위하여.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간소하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이 인생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 지난 몇 년간 수행하듯 정리를 해왔다. 물건을 비워내고 먼지를 닦고 관계에 거리를 두면서 조금씩 인생을 단정하게 다듬어갔다. 공교롭게도, 정리를 꾸준히 실천할 수 있도록 인생의 굵직한 사건들도 연이어 터져주었다.
암, 코로나, 이사, 이별, 그리고 비움. 최근 내 삶을 반추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대개가 그렇듯, 인생이 다른 국면으로 넘어 갈 때는 딱 그 만큼의 숙제가 생긴다는 말이 떠오른다. 주어진 미션을 통과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임처럼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를 느끼며 자조적인 웃음이 지어졌다. 그 당시엔 삶의 우선순위도 모르겠고, 주어진 인생미션이 버거워 도망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을 정리 하면서 버텨냈다.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았을 때의 슬픔은 옅어진 지 오래고, 코로나 팬데믹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겨졌다. 그 사이 번잡스러웠던 인간관계는 비대면이라는 명목 하에 저절로 정리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감정은 시간의 도움을 받았고 관계는 상황이 받쳐줬지만 물건은 그렇지 않았다. 물건 정리는 전적으로 내 의지와 실행력을 요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아빠의 암수술을 앞두고 벌어졌다. 바로 집주인이 몇 천만원이나 보증금을 올려 달라고 한 것이다. 그 애절하고 슬펐던 시기에 그런 일까지 겪으니 앞이 막막했다. 몸은 병원에서 아빠를 간호하고 있지만 머리에는 온통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내쫓기듯이 이사를 단행했다. 앞으로 얼마가 들어갈 지 모르는 치료비를 대비해 현금을 가지고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돈이 적게 들어가는 집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지하철 역과 가까운 풀 옵션 오피스텔에서 30년이 넘은 낡고 좁은 집으로 가게 되었다.
이삿짐을 풀면서 깨달았다. 준비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현실이란 불행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부모님이 편찮으신 것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을 당면했을 때 일상을 유지하며 대응하는 몫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때 당시 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고, 안 좋은 방향으로 떠밀리듯이 당하며 사는 느낌이었다. 좁고 오래된 집은 퇴보한 나의 현실을 실감나게 해주기 충분했다. 부엌 찬장에 다 넣지 못하는 그릇들을 바닥에 쌓아 두면서, 비싸게 주고 산 액자를 벽에 걸지 못하면서, 치장하기 위해 산 옷과 신발들을 겹겹이 구겨 넣으면서 그렇게 스스로를 맹렬히 자책했다.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숱한 내 선택의 결과물들이었다. 쓰이지 못하고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은 그렇게 그대로 인생의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먼저 결정함으로써 끝도 없는 욕망으로부터 멀어지고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고 한다. 난 그들의 지혜를 본받아 어떤 물건을 살지가 아니라 어떤 물건을 비울지를 먼저 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박스 두개를 준비해 비울 것들을 천천히 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박스에는 기부업체에 보낼 것들을 담았고, 나머지 한 박스에는 버리기 아까운 애매한 물건들을 넣어두었다. 초반에는 비우는 것보다 두 번째 박스에 넣는 것들이 훨씬 많았다. 왜냐하면 사고 늘리는 것에 익숙해진 난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버려야 하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사 당일보다 더 어지럽혀진 방을 보자 가슴 한 켠이 답답했다. 수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들은 이루지 못한 지난 목표들을 떠올리게 했다. 심지어 후회와 과오로 점철된 옛 기억들까지 떠올리게 하면서 말이다.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당장 물건을 정리해야만 했다. 몸을 움직이면서 감정과 잡념을 떨쳐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손발을 놀렸다. 그제서야 쌓아 두었던 것들이 조금씩 분류되어져 나갔다.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자 나만의 정리기준이 조금씩 생겨났다. ‘지난 한달 동안 이 물건을 몇 번 사용했지?’ 한 번도 없다면 비움 박스로 가야 하는 물건이었다. 한 달을 기준으로 해당 물건의 쓰임 여부를 따져 보고 분류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리고 버리기 아까운 애매한 물건들은 사용 빈도수 보단 가격에 의미를 부여해서 결정했다. 너무 비싸고 어렵게 사들인 물건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 보되, 그 물건이 차지하는 공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비우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물건을 그냥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중고거래를 통해 되팔았다. 소정의 판매금액은 계속 정리를 해 나갈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어주었고, 파는 과정의 번거로움은 내가 쉽게 물건을 사들이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방지턱 역할을 해주었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면서 인생의 짐꾸러미들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배운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어떤 물건을 사들이는 것보다 뺄 지를 결정할 때 삶의 가치관이 명확해 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유여부를 결정하면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자문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간소한 물건을 가지고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이라는 내 삶의 가치관을 정립하기 위해 수많은 물건을 비우고 불필요한 만남을 갖지 않으며 일상을 정돈해갔다. 그 결과, 물건이 빠진 빈 공간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 주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성장했으며 충만한 느낌과 함께 자존감까지 높아져갔다.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고도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건 ‘삶의 정리’가 가져다 준 커다란 이로움이라 생각한다.
이런 나의 변화는 예전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의지 하나 하나가 똘똘 뭉쳐져서 만들어진 것이라 본다.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 작업을 통해 누리는 공간 뿐만 아니라 삶까지 다이어트가 저절로 되었다. 이렇듯 주기적으로 삶의 때를 벗기는 작업을 해주자 인생이 온전하게 흘러가는 감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선 그러한 나의 과정을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버무려 담았다. 물건을 비우고 제자리에 놓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 보기에는 쉬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하루 날 잡고 끝내는 대청소가 아닌 인생 전반에 걸쳐 삶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걷어 내기엔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함께 수행하는 동반자이자 친구가 된다는 마음으로 나의 정리 노하우를 써내려 갔다. 누군가에게 나의 지난 이야기가 위로가 되어 습관을 바꾸고 삶을 정리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이 이것만은 놓치지 않길 바란다. 삶을 잘 영위하는 데는 아주 소수의 물건만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삶이란 모름지기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