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3화
아픈 가족을 둔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큰 돌 하나씩 얹고서, 좁디좁은 평균대를 아슬아슬하게 건너며 산다. 그래서 행여 좋은 일이 생겨 크게 웃기라도 하면 눈물부터 난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나의 불안도 점점 깊어졌다. 서른 중반에 결혼도 못하고, 이렇다 할 부수입조차 마련해놓지 못한 내 인생을, 비로소 돌이켜보게 된 것이다. 성찰할 수 있는 타이밍은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찾아왔다.
서울에서 지내는 걸 답답해하셨던 아빠를 따라, 나도 어쩔 수 없이 시골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그 흔한 별다방도 하나 없고 마을버스를 타야 시내에 나갈 수 있는 아주 외진 곳이었다. 의지대로 살아지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환경적인 소외감은 내가 처음 맘먹었던 효녀의 의지를 흐트러 놓았다. 비유하자면, 잘 건너오던 평균대에서 추락한 느낌이랄까? SNS를 통해 지인들의 부러운 일상을 볼 때마다, 내가 그간 누려왔던 것들로부터 아주 멀리 귀양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찹찹한 기분에 하루에도 열두 번 눈물이 났다.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와도 싸움이 잦았다. 사소한 일인데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말조차 예쁘게 나가지 않았고, 거기에다 자격지심까지 더해져 걸핏하면 짜증을 냈다. 연애를 하든 보호자를 하든 내가 똑바로 중심 잡고 살지 않으면 한순간에 관계들이 무너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우리가 건너고 있는 다리 밑의 물소리가 마음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지만, 난 애써 마음을 고쳐먹어도 여전히 행복하진 않았다. 그래서 아빠께 용기 내어 말했다.
“아빠, 저 서울 가고 싶어요”
그래서 결국 떨어진 평균대 위로 다시 올라왔다. 그새 하늘길이 다시 열려 나는 매달 비행을 할 수 있었고, 항암치료를 시작한 아빠도 2주마다 서울에 올라오신다. 예전엔 가족들을 위해 내 시간을 모두 할애했다면 이젠 그러지 않는다. 하루를 패밀리데이로 보내면 나머지 하루는 꼭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쓴다. 누굴 원망할 것도 상황을 욕할 것도 없는, 그저 내 안의 물소리를 다스리며 조금씩 내려놓고 있는 현실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아직까지도 크게 웃으면 눈물이 나지만 그래도 반성문 같은 해방 일지를 이렇게 쓰며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조용히 입 밖으로 내뱉어본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202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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