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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Mar 26. 2024

우울증은 절대 안 걸리겠어요

보이는 것과는 달라요

티가 안 난다. 

우울증은 티가 나지 않는다. 

감기에 걸리면 콧물을 흘리고 피부병에 걸리면 두드러기가 생기지만, 우울증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도 모르게 발현되었다 사라진다. 그래서 모르는 척하면 아무도 모른다는 장점이 있고, 그러다 보면 자기 속만 곪아터진다는 단점이 있다. 


"너 우울증이라고 하고, 너희 엄마 너한테 자주 가보라고 이야기할게."

'-라고 안 해도 돼. 그게 사실이야.'


"어머님은 우울증은 절대 안 걸리겠어요." 

'재발했는데요.' 


최근에 들은 이야기다. 그래. 아무도 모르게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 다시 재발했다. 핑계를 대자면,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고 원인을 따지자면 역시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해야겠다. (우울증 환자의 특성상 자신을 탓하고 싶지만,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므로 절대 내 탓을 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나의 천재적인(?) 연기력 탓인지 대부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오히려 주변인들은 나를 굉장히 사회적이고 밝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체로 나는 이런 간극 속에 길을 잃는다. 사람을 만나면 온갖 애를 쓰다가 집에 오면 원래의 나로 돌아가 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무엇도 가짜인 나는 없다. 나는 본래 나 자신의 모습을 모방하고 있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처방해 드리는 약은 의존성이 없는 겁니다. 알아서 잘 조절하시고요. 거기서 지내는 건 좀 어떠신가요?"

"힘들어요." 

"네, 아무래도 익숙한 환경이 아니라서 더 그렇지요. 원래 드시던 대로 열흘 치 드리겠습니다." 


그럼에도 역시 솔직해지는 시간은 의사와 함께하는 순간이다. 남편 앞에서도 울지 못 하는 나란 인간은 시작의 순간도 재발의 미련함도 유일하게 이 장소에서만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담담하고 차분하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입 밖에 내면서도 웃고 만다. 울어서 우울도 씻겨져 내려간다면 내내 울고 싶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무리 눈물샘을 쥐어짜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한번 걸려봤다고 재발의 순간을 재빠르게 눈치챈 까닭에 가벼운 약으로 우울증을 견디는 것이 가능했다. 민감한 성격은 역설적이게도 이런 때 힘을 발휘한다.  


"우울증은 절대 안 걸리겠어요." 

얼굴을 확인할 있는 거울이 있었다면, 나는 말을 듣는 순간 내 표정확인했을 것이다. 


'흠. 내 정체는 들키지 않았겠지?'

내 인생은 첩보영화라기엔 너무나 순조롭고 단순할 뿐인데, 이런 데서 괜히 심장이 쫄깃하다.  


'휴우. 오늘도 들통나지 않았군.' 


그저 쉬는 것이 좋아 쉬고 있을 뿐이라고 주변을 속이며, 언제까지 보이지 않는 못된 질병을 숨기고 살 수는 없다. 이제 그만 이 친구를 보내주자. 나는 이제 철떡거리는 거머리 같은 너를 떼어내려고 한다. 


보이는 것이 보이는 그대로인 나로 되돌아가자. 

'절대' 다시는 오지 마,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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