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소재는 어디에도 있다
점심시간, 모두가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울 때 후배가 던진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미님은 인스타 스토리를 정말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녀와 내가 서로의 인스타를 팔로우한 지 이제 막 1개월이 되는 참이었다. 내가 당황한 이유는 갑자기 나의 사생활 얘기가 나와서도, 그녀의 말의 진의가 의심스러워서도 아니었다. '인스타를 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비치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SNS 세계에 제대로 발을 담근 적이 없었다. 어렸을 적 남들 다 하는 싸이월드, 세이클럽은 물론, 크고 나서도 트위터, 인스타, 블로그 그 어느 것도 손대지 않았다.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무엇보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인데 할 말이 없으면.. 말 다 한 것 아니겠나.
그러다 오랜 일본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어쩌면 오랜 기간 SNS를 하지 않았던 건 내 안의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과 이어지는 것을 거부한 탓이 아니었을까. 진짜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무서웠던 건 아니었을까. 실제로 나는 현실 세계에서도 내 얘기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지금 이렇게 브런치, 블로그, 인스타, 거기다 뉴스레터까지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는 건 나라는 개인에게 있어서 큰 변화고, 발전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수렵 채집사회가 농경사회로 변했던 것만큼의 묵직한 지각변동. 그 정도로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행위였는데 그녀에게는 단지 '인스타 스토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비치는 것이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애초에 나는 왜 인스타 스토리를 그렇게 자주 업로드했던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스토리에 주로 업로드하는 것은 보통 루틴에 관련된 것들이다. 아침 운동, 식단, 그리고 독서 생활 같은 것들. 그 루틴 속에서 느낀 것, 배운 것을 나누면서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고 싶었다. 혼자 간직하면 똥 되는 거, 나누면 얼마나 좋은가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그건 내 마음이고 내 의도일 뿐이다. 그게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면? 단지 인스타를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떠드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듯이, SNS 또한 서로가 잘 얘기하고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해야 했던 것 아닐까.
문득 인스타의 피드 글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았다. 일기 형태의 글이 많았다. 길었다. 정말 길었다. 릴스가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을 잠식한 시대에 맞지 않는 형태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피드의 사진이 뒤죽박죽이었다. 어떤 건 사진에 글을 넣은 형태였다가, 자연이었다가, 사람이었다가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다. 인스타를 잘하는 사람들의 계정이 자신만의 단 한 가지를 보여주는 '깔끔한 대형 마트 진열대'라고 한다면 내 계정은 여러 색깔과 형태의 탱탱볼이 마구 뒤섞여 진열된 '정신없는 문방구 진열대' 같았다.
흔히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퍼스널 브랜딩을 해야 한다, 똑같은 색을 써야 한다, 하나의 주제를 전달해야 한다 이것저것 말은 많지만 본질적인 부분은 커뮤니케이션에 있었나 보다. 어떻게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진정성 있게, 잘 전달할 수 있는지.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녹아나야 하고, 그게 잘 녹아났을 때 더 이상 단순히 '인스타 스토리를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 줄어들지 않을까?
후배의 단순한 한 마디를 통해 어쩐지 SNS의 본질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런 걸 보면 배움의 소재란 일상 여기저기에 깔려있는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