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
그때 나는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으로 출장을 떠나버려 남편도 없는 시댁에서 자발적인 죄수가 된 지 석 달째였다. 오래된 주택의 덜컹거리는 창문 틈새로 겨울바람이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바람이 몸을 때리는 건지 마음을 얼려버리는 건지 감각이 점점 무뎌졌다. 모성애 같은 건 이미 오래전에 증발해 버렸다.
두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우는 아이를 달래다 보면 머릿속은 늘 뿌옇게 흐려졌다. ‘수면제를 먹여서 재우면 안 될까?’ 그 금단의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을 헤집었다.
스무 살 무렵 전도연이 나왔던 영화 해피엔드를 보며 친구와 욕을 했었다. “그 여자는 엄마도 아니야. 어떻게 남자를 만나려고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여?” 우리는 오징어 다리를 질겅거리며 그렇게 혀를 찼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 여자가 되려 하고 있었다.
상처 난 가슴에 연고를 바르며 아이를 안았을 때 아이의 얼굴 위로 영화 속 전도연의 표정이 겹쳐졌다. 집안에는 나와 아이, 단 두 사람뿐이었고 다들 출근한 낮의 정적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상상했다.
수면제를 먹여 깊이 잠든 아이를 바닥에 눕혀놓고 나는 소파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숨는다. 아무도 찾지 못하게 영영 나오지 않게.
그때의 나는 진짜 감옥에 갇혀 있지 않았지만 그 어떤 쇠창살보다 견고한 어둠 속에 있었다. 모성의 이름으로 버티려 했지만 그 단어는 오히려 나를 질식시켰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엄마라기보다 단지 살아남으려는 한 사람이었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아줬더라면 그 차가운 바람은 덜 매서웠을지도 모른다. 벌써 십몇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계절이 시작되면 왈칵 눈물을 쏟으며 죄책감을 덜어내고 조금은 후련해지기 위해 애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