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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추천 ' 은중과 상연 '

우리가 서로를 잃어가는 방식에 대하여

by 책방별곡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고 난 뒤,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감정이 서서히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단순한 직선이 아니라 때로는 매듭지고, 때로는 비틀리고, 아주 가끔은 풀릴 듯 말 듯 흔들린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1992년 여름, 은중과 상연은 초등학교에서 처음 만난다. 같은 시간을 지나고 같은 장면을 겪으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지나고 보면 소중하고 애틋하지만 그 시절에는 어리숙해서 깨닫지 못하는 감정들이 있다. 두사람도 그랬다. 둘은 친구였고, 라이벌이었고, 서로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까웠던 만큼 더 예민하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마음을 숨기는 방식도, 표현하는 방식도 달랐고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속도는 점점 어긋났다.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라 하기 어려운, 관계의 피로가 조금씩 스며드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인생에서 멀어지는 선택을 하며 긴 공백을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상연은 오래된 상처를 품은 채 은중에게 연락한다. “마지막 여정에 함께해 줄 수 있겠느냐”는 말..그 한 문장을 듣는 순간에 서사 전체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의 삶을 마주한다는 것, 폐허 같은 시간을 다시 불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드라마는 보여준다.

〈은중과 상연〉이 특별한 이유는 감정을 쉽게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누군가를 좋아하고 또 미워하는 일은 전혀 다른 감정이라는 은중의 대사는 오래도록 마음에 머문다.

“싫어하는 건 생각이 안 나서 좋은 거고,
미워하는 건 생각나서 힘든 거야.”

우리가 평생 떠올리며 사는 얼굴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 얼굴마다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는 미해결의 감정이 있다. 이 드라마는 그 감정을 억지로 긍정하거나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조용히 드러내며 시청자에게 스스로의 과거를 바라보게 만든다.

영상은 단정하고 서늘한 톤을 유지한다. 감정이 크게 흔들리는 장면조차 고요한 수면처럼 담아낸다. 폭발적인 사건 대신 인물의 표정과 눈빛, 말의 여백이 이야기를 채운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이 조금씩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감정이 내 감정과 맞닿는 순간들이 묘하게 따끔했다.

가깝던 사람이 멀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그토록 누군가에게 서운하고, 왜 끝내 그 사람을 잊지 못하는가. 그리고 오래된 감정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드라마가 끝나고 문득 떠오르는 이름이 있어서 잠시 숨을 골랐다. 내가 잃어버린 관계들, 혹은 내가 먼저 포기했던 어떤 마음들이 은중과 상연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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