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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Sep 10. 2024

(에세이)'달과 6펜스'의 순수와 허영

‘달과 6펜스’ 작품 속 인물들로 바라보는 허영과 순수의 의미

 ‘달과 6펜스’는 영국작가 서머셋 몸의 1919년 출간한 작품으로, 폴 고갱의 삶을 모티브를 삼고 있다. 작품은 찰스 스트릭랜드가 런던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증권 중개인’의 삶과 미술에 대한 열망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로 떠나는 ‘화가’의 삶, 마지막으로 절대적인 예술의 순수성을 쫓아 타이티 섬으로 가버리는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다. 이는 작중 ‘나’라는 화자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담담하게 서술하는 형식을 취했다. 작중 찰스 스트릭랜드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아내를 버린 비정한 남편, 친구의 도움을 배신으로 갚는 비열한 인간 등으로 대부분의 내용에서 그를 곱게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주변 역시 작중 화자와 같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1) 에미미 스트릭랜드로 보는 허영     


 찰스가 런던에서 ‘증권 중개인’을 할 때, 그의 아내 에이미 스트릭랜드는 안정적인 가정을 돌보는 현명한 아내로 묘사되지만, 실상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작가들과 교류하며, 딱딱한 남편에게서 해방하고 싶어 하는 대표적인 허영심에 가득 찬 인물이다. 그럼에도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하는 마음 또한 갖고 있는 입체적인 성향을 보인다. 주변에서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에 크게 신경 쓰며,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났을 때, 그가 여자가 아닌 화가의 삶을 살기위해 떠났음을 알고 울부짖으며, 차라리 여자를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할 정도로 다른 이의 꿈과 열정 그리고 ‘순수’함에 공감하기 보다는 표면적이고, 남에게 설명하기 좋은 속물적인 동기를 찾아 헤매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캐릭터답게 남편의 부재를 곧 털고 일어나 돈을 벌기위해 ‘타이피스트(타자치는 직업)’가 되고, 크게 성공하고, 다시 성공한 삶으로 돌아온다. 나아가, 어느 정도 돈을 벌고 성공한 그녀의 삶 말미에는 자신의 ‘타이피스트’라는 직업을 두고 심심해서 하는 일인 양 과거의 궁핍으로 시작한 일임을 부정하고, 남에게 고결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처자식을 버리고 떠나는 찰스는 그를 알고 있는 주변사람들로부터 크게 질타를 받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을 내팽겨 치고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간다는 것이 지금 관점으로도 쉽사리 받아드려지기는 힘든데, 20세기 초반의 훨씬 보수적인 당대에서는 더욱 그것이 받아드려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허영에 가득 찬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찰스를 감정적인 교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 자신을 안락하게 해줄 ‘도구’로 바라봤다는 점이다.      


 (2) 더크 스트로브와 블란치 스트로브의 허영과 순수     


 찰스가 런던의 삶을 버리고, 화가의 삶을 살기 위해 프랑스로 이주했을 때, ‘더크 스트로브’를 만난다. 더크는 화가지만, 예술의 혼을 불태우기 보다는 돈이 되는 그림을 그렸다. 더크가 찰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줬을 때, 찰스는 그의 영혼없는 그림을 보며 속물적인 사람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더크는 그의 예술성과는 다르게 인간관계에 있을 때에는 그 누구보다 순수했다. 돈이 없는 가난한 화가들에게 선뜻 돈을 빌려주고, 남의 부탁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줬다. 심지어 그의 아내 블란치 스트로브가 더크와 결혼 전, 명망 있는 자제의 가정교사 생황을 하다 그 아이와 관계를 갖고 임심을 하여 쫒겨 났을 때, 더크는 그녀의 아픔을 감싸고 자신의 아내로 기꺼이 맞아주었을 정도였다.     

 

 찰스가 인간관계에 선을 긋고, 염세적인 인물이라면, 더크는 포용하는 순수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아마, 찰스가 프랑스에 이주해서 처음 만난 그나마 순수함이 남아있는 인물이 더크였을 것이다. 더크는 일찍이 자신에게 있는 순수함으로 찰스의 작품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 그가 엄청난 예술가가 될 것을 직감하고는 그를 물신양면으로 도와준다. 하지만, 찰스는 자신의 세계에서의 순수함은 ‘예술’로 규정했기 때문에 그를 무시하며, 필요할 때만 손을 빌리는 그런 존재로 봤다. 더크는 찰스의 그런 태도에 지쳐갔지만, 결국 그의 순수함에 이끌려 그를 내치지 못했다. 더크의 아내인 블란치는 찰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블란치는 자신의 남편의 작품을 보고도 비난하는 그를 곱게 보지 않았으며, 어딘가 사교적이지 않은 그를 처음에는 경멸했다. 그리고 지금의 안락한 삶에 만족하며 어떻게든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흡사 찰스의 아내였던 에이미와 일맥하는 성향을 보여줬다.     


 얼마간의 순수함이 있는 더크, 안락한 삶을 유지하고 싶었던 세속적인 블란치는 후술할 계기로 인해 모든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찰스는 늘 같은 시간이면 자신의 집과 가까운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체스 내기를 즐겼다. 더크는 가끔 그 곳에 가서 찰스와 이야기하곤 했는데, 며칠 동안 그가 보이지 않자 확인해보니 그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크는 그가 현재 기거하는 더럽고 낡은 단칸방에서 쓸쓸히 죽어가는 찰스를 바라보고는 순수한 연민의 감정으로 자신의 아내를 설득하여, 본인 집에 머무르게 한다. 하지만 모든 비극은 세속적인 블란치가 순수한 찰스와 함께 생활하며 시작된다. 찰스가 머무르는 동안 블란치는 그를 간호하며 그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고 결국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블란치는 끝까지 그 감정을 숨겼지만, 더크와 찰스가 작품 활동과 관련하여 마찰이 생겨 더크가 그를 보고 집에서 나가달라고 요청했을 때, 블란치는 떠나는 찰스를 따라 가겠다며 더크에게 통보를 한다. 그와 중에 더크는 떠나는 블란치가 더럽고 낡은 단칸방에 살 것을 염려하여, 자신으 집을 내어주고는 자신이 떠난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더크는 자신의 순수함 때문에 괴로웠고, 블란치는 순수함이 무엇인지 찰스로부터 알게 되었고, 찰스는 블란치 라는 좋은 그림 도구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더크는 언젠가 블란치가 자신에게 돌아와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그녀 주변을 배회했고, 찰스는 블란치의 누드화를 그리며 그녀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생각했고, 블란치는 찰스에게 부흥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찰스는 이내 블란치의 누드화를 다 그린 뒤, 흥미를 잃고 그녀를 떠났고, 블란치는 음독자살한다. 블란치의 자살소식에 더크는 망연자실하며 울부짖지만 그녀는 그렇게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된다. 이 후, 더크는 고향으로 떠난다.      


 더크는 순수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단지 예술에서는 그러지 못했을 뿐이었다. 더크가 찰스를 처음만나고 그의 작품에 감명을 받았던 것은 그도 찰스와 같은 순수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속적인 마음도 갖고 있던 터라 찰스와의 관계는 더크 자신으로 하여금 매일 같은 전쟁터였을 것이다. 결국 더크의 어줍지 않은 순수함은 이도저도 안된 채 쓸쓸히 그를 퇴장시킨다. 더크가 좀 더 예술에 진심이었다면, 덜 세속적이고 예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봤더라면 앞선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블란치도 마찬가지다. 세속적인 삶을 살다가 순수한 사람을 만나 혼란스러운 과도기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블란치가 너무 급하지 않았더라면, 천천히 찰스를 알아가며, 그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세속적인 삶에서 순수한 삶으로 변모했다면, 그녀도 순수함을 받아드린 뒤, 찰스가 아닌 더크 곁에서 살았을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찰스로 인해 더크와 블란채는 결국 파국의 결말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3) 아타의 순수함     


 찰스가 프랑스에서의 삶을 뒤로한 채, 타이티로 떠난다. 타이티는 그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담겨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타라는 원주민 여자를 만나 살게 된다. 작중 원주민은 순수함 그 자체이다. 세속에 때묻지 않은 존재들로 그려진다. 아타는 찰스와 나이차이가 꽤 났음에도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었다. 에이미처럼 그를 도구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블란치처럼 경멸하다가 그의 강렬함에 끌리지도 않았다. 아타는 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편하게 대했다. 아타의 순수함은 찰스의 순수함을 성숙하게 만들어주었다. 아타를 만나고선 찰스도 아이 같은 순수함을 찾아가고 있었다. 가장 깨끗한 물이, 또 다른 깨끗한 물을 만난 것처럼 그 둘의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심지어 아타는 찰스가 문둥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음에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죽거든 자신의 그림을 모두 태워달라는 말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정리해주었다. 찰스는 아타에게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작중에는 그런 표현은 나오지 않음).      


 작중 화자가 찰스의 타이티 생활에 대해서는 찰스의 주변인물들에게 듣고 서술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찰스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는 불명확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찰스는 아타의 순수함이 그의 예술적 잠재증력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4) 작중 화자의 순수함     


 작중 화자인 ‘나’는 극중 찰스의 순수함을 가장 이롭게 받아드리는 사람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일대기를 통과하며 처음에 그의 순수한 열정에 호기심을 느끼다가, 그의 행보에 분노하지만, 결국 그를 인정하고 받아드리게 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화자였기에 그의 일대기를 담담하게 풀어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작품 속 ‘나’라는 인물은 찰스를 가장 가까이 지켜본 인물이지만, 그에 대한 평가를 시시각각 내리지는 않는다. 대체적으로 찰스가 하는 행동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풀이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밖에서 바라봤을 때의 찰스는 분명 동정심이 갈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렇기에 화자인 ‘나가’ 그를 담담하게 썼다는 것은 그의 마지막 삶을 존중해주기 위함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달과 6펜스’는 폴 고갱의 삶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풀이하며, 허영과 순수함에 대한 역설을 은연중에 녹였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찰스라는 인물의 행보에 모두들 분노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그를 비난하기 바빴지만, 오히려 그를 비난한 에이미는 자신의 안위를 누구보다 생각하고, 남들의 시선만 생각하는 허영에 찬 인물이고, 더크와 블란체는 허영심과 순수함의 갈림길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순수함에 패배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에 그를 죽을 때까지 보살피는 원주민 아타는 인간 그대로의 찰스의 순수함을 받아드렸기에 불행하지 않았다. 찰스는 누구보다 순수했으나, 그가 머물던 런던과 프랑스의 사회는 오히려 허영과 속세가 그들에게는 순수였다. 작가는 찰스로 하여금 현대를 허영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순수라는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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