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는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 태수 씨, 안녕하세요? 여기 실종전담센터인데요.
실종전담센터의 미진이 맑은 목소리로 태수에게 말을 걸었다. 태수는 설렘반, 걱정반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한 채, 미진의 음성에 겨우 대답했다.
"네, 저 이태수입니다. 혹시 제 어머니를 찾았나요?"
- 네, 태수 씨가 이야기해 주신 과거 사연을 종합하여 비슷한 분이 계셔서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미진의 단어하나하나에 태수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태수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주방으로 달려가 물을 한잔 마신 뒤,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 그쪽으로 가면 뵐 수 있나요?"
- 내일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이 분이 지방에 사시는데 연로하셔서 내일 그쪽 가족들이랑 같이 상경하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그렇군요. 그럼 내일 몇 시쯤 방문하면 될까요?"
- 오후 3시쯤, 센터로 나오 실 수 있나요?
"네, 3시까지 센터로 나가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수는 손을 떨며 통화를 마쳤다. 태수가 자신의 엄마를 찾기 시작한 지 꼬박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지금 까지 4명의 엄마 후보들을 만나봤다. 하지만 모두 아니었다. 그럼에도 센터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이번에는 꼭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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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어느 시장 어귀에서 태수의 엄마는 태수에게 꽈배기가 한가득 담긴 봉지를 그에게 쥐어주며, 그의 앞에서 흐느꼈다. 7살인 태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울고 있는 엄마를 보며, '이 맛있는 꽈배기를 내가 혼자 다 먹을 것 같아서 우는 건가?'라고 생각하고는 가장 큰 꽈배기를 골라 엄마에게 쥐어주었다. 하지만 엄마의 눈물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이내 엄마는 결심이라도 한 듯 눈물을 닦으며 태수에게 '엄마가 곧 올 테니 여기서 잠시 꽈배기를 먹으며 기다려라'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어린 태수는 엄마를 믿었다. 하지만 날이 저물고, 달이 차오를 때 까지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자신이 쥐어준 꽈배기를 들고 멀찍이 떠나는 엄마의 뒷모습이 그에게는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어린 태수는 그제야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의 집이 가난했고, 자기 밑으로 동생들이 많았으며, 결정적으로 자신이 한쪽 다리도 절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린 태수도 엄마가 자신을 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새끼를 살리기 위해 몸이 아픈 새끼를 버리는 어미의 마음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태수는 눈물을 흘리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오직 엄마가 자신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버려지는 그날 그는 결심했다. 나중에 꼭 성공해서 다시 엄마 앞에 당당하게 서서, '나는 이렇게 잘 컸으니, 엄마는 이제 나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꼭 말해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태수는 구걸을 하며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다, 운 좋게 자식이 없는 노 의사의 눈에 띄어, 그 의 집에서 기거하며 수발을 들었다. 노 의사는 태수가 머리가 좋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수발들게 하는 것을 멈추고, 양자로 입적해 공부를 시켰다. 노 의사의 기대에 부흥하여 의사가 되었다. 절었던 다리도 노 의사의 정성으로 호전되어 일반인처럼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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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년 전, 노 의사는 병마와 싸우다 태수의 곁에서 눈을 감았다. 태수는 이제 것 자신을 돌봐준 노 의사를 두고 어미를 찾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여 참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젔기 때문에 엄마를 찾기 위해 자신의 DNA를 여러 실종기관에 등록을 했으며, 경찰서에도 찾아가 보고, 인터넷과 신문에도 광고를 올렸다. 태수는 바로 엄마를 찾을 수 있을 것 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수표뿐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실종전담센터'였다. 다행히도 센터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을 취합하여 실종자와 그의 가족들을 찾아주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기억하는 '시장'과 '꽈배기'는 꽤 흔한 스토리였다. 그래서 요 몇 년 동안 4차례 '엄마'일 수도 있는 분들과 만났지만, 모두 아니었다. 태수는 그럴 때마다 발걸음을 돌리며, 엄마의 사진 가족이나 이름이라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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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이 되고, 태수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2시에 센터를 방문했다. 설레는 마음에 미진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약속시간인 3시가 되고, 접견실에 등이 굽은 노인과 그의 아들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노인은 태수를 보자마자 울며 뛰어왔다.
"선호야, 선호야,,,"
흐느끼는 노인의 얼굴에는 태수가 자신이 잃어버린 자식임이 확실하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태수는 자신을 선호라고 부르는 노인에게서 엄마의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태수는 노인을 가볍게 안아 자리에 앉히고는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저는 헤어졌을 때부터 이태수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노인은 절망하며, 절규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찾는 '선호'가 아님을 알게 되자 드러눕고 오열했다. 태수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미진에게 설명을 요청했다.
"사실, 저희 센터로 연락 왔을 때, '시장에서 마지막 꽈배기를 사준 아이를 찾는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태수'라는 분이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꼭 자기 아들이 맞다면서 만남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에는 당연히 맞는다고 생각했죠. 선호라는 이름은 저도 지금 처음 듣습니다"
당황하는 태수 앞에 노인의 아들이 노인을 진정시키고는 태수에게 침착하게 다시 설명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이름이 달라서 어머님께 이번에는 아닐 것 같다고 말씀은 드렸었는데, 어머님이 그 깟 이름은 바꾸면 그만인데 분명히 자기 아들이 맞을 거라고 떼를 쓰는 바람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태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는 노인의 아들에게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그랬군요. 제가 찾는 아들이 아니라 상심이 크실 것 같습니다. 무어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 때문에 힘든 걸음 해주셨을 텐데 저희가 더 죄송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 꼼꼼히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그 사내는 말을 잇지 못하고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있는 노인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고 있었다. 마음이 편지 않은 태수는 그의 아내와 센터를 나왔고, 미진은 그들을 배웅했다.
"태수 씨, 상심이 크시겠어요. 이번에 벌써 5번 째인데, 저희가 죄송스럽네요"
"아닙니다. 이렇게라도 계속 찾아주시려고 노력해 주시는데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 괜히 저 때문에 저 노인분이 실망을 더 큰 게 아닌지 더 걱정되네요"
"흠.. 태수 씨 조금 더 노력하면 꼭 어머님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저희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태수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자신이 만났던 5명의 엄마는 자기 자식을 찾지 못한 또 다른 엄마들이었다. 그때마다 자신으로 인해 상심하는 그 들을 떠올리자니,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들을 절망시키는 것이 아닌가란 괴로움에 빠졌다. 태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말없이 아내와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실망한 태수를 위해 그가 평소에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였다.
"여보, 밥 먹어요"
저녁 밥상에 큼지막한 고기가 왕왕 들어간 묵은지 김치찌개가 있었다. 집안은 시큼한 김치냄새가 맛있게 울려 퍼졌다. 태수의 아이들은 찌개의 뚜껑이 열리자 제일 큰 고기를 골라 자기 밥그릇에 넣기 바빴고, 태수는 그런 자식들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었다.
"많이 먹어라 얘들아"
아이들은 대답도 없이 먹는 데만 열중했다. 아내는 아이들을 보고는 한 마디 했다.
"얘, 아빠가 인사하는데 들은 채도 안 하고 먹니? 얼른 인사하고 먹어"
그제야 아이들은 숟가락은 내려놓고 인사했다. 그 모습도 귀여운지 태수는 연신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잔소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게걸스럽게 찌개와 밥을 오가며 먹어대기 시작했다. 태수는 그 틈바구니사이에서 국물을 떠먹었다.
"여전히 맛있네, 그렇지 않아도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는데"
"소주 한 잔 할래? 줄까?"
"아니, 괜찮아"
풀이 죽은 태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미진이었다. 그때 문득 미진이 태수에게 물었다.
"여보, 아직도 내가 만든 김치찌개보다 어머님이 만든 김치찌개가 맛있어?"
"흠..."
태수는 고민에 빠지는 얼굴을 했다.
"이제는 당신이 만들어주는 김치찌개가 더 맛있는 것 같아"
아내는 태수에게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정말로?"
"응, 그리고 이제 어머님 찾는 건 그만하려고"
아내는 5년 동안 어머님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태수를 보며 옆에서 말리고 싶었지만 말렸을 때 태수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기 때문에 태수가 찾는 것을 포기한다고 했을 때 기쁨 반 걱정 반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갑자기?"
"오늘 센터에 갔을 때 그 노인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느꼈어.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엄마'들을 만날 텐데 그때마다 내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보고 슬퍼할 그들을 생각하면 이게 과연 잘하는 일인가 싶더라고"
"그래도 당신 어머님은 찾는 게 좋지 않을까?"
아내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태수에게 했다.
"당신도 내가 엄마 찾는 거 달가워하지 않지 않아?"
태수에 말에 아내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신의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은 본심과 남편을 한편으로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들켜버린 부끄러움이었다. 아내는 쉽사리 대꾸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태수는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괜찮아. 당신이 나쁜 마음으로 그랬겠어? 내가 엄마를 못 찾을 때마다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게 안쓰럽게 느끼니까 그랬겠지... 나는 당신이 그랬음에도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엄마를 찾았다는 연락이 올 때마다 같이 기뻐해주고 센터에 같이 가줘서 늘 고마웠어"
태수의 진심 어린 표현에 아내는 밥을 먹다 말고 눈물을 훔치려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의 대화에 이해는 가지 않지만, 뭔가 심각한 대화가 오간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금방 잊어버리고는 냄비 안의 큼지막한 고기를 찾기 위해 젓가락으로 김치찌개를 휘휘 젓고 있었다. 옆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맛있게 먹으라고 이야기를 한 뒤 일어나 서재 책상에 앉아 눈시울을 붉혔다. 시간은 흘러 1년 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다. 태수가 '엄마 찾기'를 포기하고, 일에 빠져 지냈다. 다행히 업무에 집중하니,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자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더 마음이 편해진 태수는 아내에게도 더 잘하고, 아이들도 살뜰히 챙겼다. 그리고 그만큼 일이 많이 늘어났다.
"여보, 나 내일 전남 여수에서 급하게 세미나가 잡혀서 가봐야 할 것 같아"
"내일 오전에 중요한 수술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내는 태수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업무가 늘어 많이 쉬지 못한 태수가 과로로 쓰러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응. 내일 그 수술 마치고 바로 넘어가야 할 것 같네... 어쩔 수 없지 내가 빠지면 안 되는 자리라.."
"이를 어째... 내일 몇 시에 가는데? 오후 2시 기차 타고 가면 내가 발표하는 6시에는 맞춰 갈 수 있을 거야. 힘들겠지만 할 수 없지 뭐"
태수는 빠듯한 일정 속에서 자신의 맡은 바 업무를 묵묵히 했다. 오전에 수술도 성공시키고, 오후의 학회 발표도 성황리에 마쳤다. 학회가 끝나고, 그 동네가 자신이 버려졌다는 동내임을 단번에 알아봤다. 동료 의사들이 뒤풀이 가자는 것도 거절한 채,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가 버려졌던 그 시장 어귀를 감으로 찾았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시장이 아니었고, 길게 늘어선 상가건물들이 그의 추억을 모두 잡아먹었다. 현재의 허무함이 이내 허기로 밀려왔다. 태수는 그때야 자신이 아침 이후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상가 건물 중 유일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백반집을 향했다. 백반집에 태수가 들어서자, 의자를 정리하고 있는 점원이 '마감했다'라고 소리쳤다.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나서려다, 주방에서 식사해줄 테니 앉으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원은 마지못해 태수에게 앉으라 권했고, 물과 수건 그리고 수저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면서 그 점원은 툴툴거렸다. 태수는 그 가게에 미안하기는 했지만, 자신도 배가 많이 고픈 상태라 눈치 볼 것 없이 먹고 가자고 생각했다. 벽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확인 중에 '묵은지 김치찌개'가 태수 눈에 보였다.
"저기 여기 묵은지 김치찌개 하나랑 소주 한 병 주세요"
태수는 숙소에서 푹 잘 생각에 소주도 한 병 시켰다. 소주는 김치찌개보다 빨리 가져다주었다. 태수는 얼른 병을 열고는 소주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곧 김치찌개가 그의 밥상에 올랐다. 찌개는 큼지막한 고기가 썰려있고, 시큼한 묵은지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 제대로였다. 그는 먼저 큼지막한 고기를 숟가락으로 퍼서 밥 위에 올린 뒤 같이 먹었다. 위화감이 없는 맛이었다. 이번에는 김치를 밥에 올려 먹었다. 역시 위화감이 없다. 태수는 이상했다. 이제까지 수많은 김치찌개를 먹어왔는데 이토록 혀 끝에서 위화감이 없이 느껴지는 김치찌개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상했지만, 태수는 연신 김치찌개를 떠서 밥에 올려 먹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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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태수는 오늘만을 기다렸다. 오늘은 아빠가 고기를 사 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린 태수는 한 달에 한 번 같은 날이 되면 신문지 두툼하게 고기를 싸 오는 아빠가 그렇게 좋았다. 왜 그날만 사 오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때가 되면 엄마가 묵은지에 고기를 넣고 푹 삶아서 우리에게 배불리 먹으라고 말해주는 날이었다. 평소에는 맑은 죽에 풀 떼기를 먹거나, 그 조차도 안되면 고구마나 감자로 때우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날 만큼은 우리 집은 고기로 배를 채우는 날이었다. 큼지막하게 썰은 고기를 아빠가 먹으면 우리는 숟가락을 들고 찌개로 달려가 퍼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흐뭇하게 소주 한 잔을 걸치는 아빠와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아빠는 자신에게만 보이게 손짓으로 조용히 오라고 한 뒤에 자신 앞에 있는 더 큼지막한 고기를 내어주고는 했었다. 엄마는 태수가 버릇 든 다며 그러지 말라고 말은 하지만, 그 눈가에는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먹는 그 김치찌개가 태수가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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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가 밥을 다 먹고도 그곳을 뜨지 못했다. 점원은 태수를 힐끔 쳐다보며 핸드폰 하기를 반복했다. 태수는 앉아서 김치찌개의 맛에서 어째서 이토록 정겨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다가 지금 먹은 김치찌개가 자신이 40년 전에 먹은 그 김치찌개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태수는 점원을 불렀다.
"저기... 제가 여기 45년 단골인데, 혹시 주방에 계신 분을 좀 뵐 수 있을까요?"
"네? 여기 생긴 지 45년이 안 됐는데... 뭐라고요?"
점원은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하지 마 태수도 지지 않고 부탁했다.
"그러지 말고, 좀 불러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인사만 드리고 가겠습니다"
시큰둥한 점원은 웬 미친 사람이 왔다고 생각해서, 빨리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주방 앞에서 크게 말했다.
"할머니, 여기 손님이 단골이라고 할머니 보고 싶데, 잠깐만 나와바"
점원이 주방에 소리치자,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등이 살짝 굽은 노인이 주방에서 나왔다. 잘 들리지 않은지 귀에는 보청기를 끼고 있고,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뭐라고? 누가 날 찾았다고?"
"응, 여기 무슨 45년 단골이라고 하던데?"
점원은 노인 근처에서 크게 소리치며, 노인의 말에 대꾸했다. 노인은 무슨 상황인지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점원의 손에 이끌려 태수의 자리까지 왔다.
"할머니 이 분이셔"
노인은 태수를 똑바로 쳐다봤다. 태수도 노인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제야 태수는 엄마의 얼굴이 그 노인의 얼굴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태수는 그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주저앉으며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점원은 태수의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엄마'라는 말에 놀라 주춤하며 뒤로 물렀고, 40년 전에 버린 아들의 얼굴을 잊지 않았던 노인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태수의 얼굴을 작은 손으로 들어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너 태수니? 태수 맞지?"
노인은 힘겹게 자신이 버린 아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며, 아들을 껴안고 울었다.
"엄마, 맞아요. 나 태수예요. 나 기억하겠어요?"
"그럼 내 아들 태수 기억하지, 정말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다음날 바로 찾아갔다 너를 다시 데려오려고, 그런데 여태까지 찾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엄마 괜찮아요. 저는 잘 컸었어요. 전 하루라도 엄마와 아빠를 원망해 본 적이 없어요. 엄마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했어요. 센터에도 가보고, 그런데 결국 엄마를 찾은 건 '김치찌개'였네요. 여기서 김치찌개를 만들어 팔아서 너무 고마워요. 이제와 찾을 수 있었어요"
"우리 아들 얼굴 한 번 보자. 이렇게 잘 컸구나. 정말 부끄럽다. 하루도 널 잊지 않았다. 정말이다. 그때는 모두가 너무 힘들었어 어쩔 수 없었어. 이 어미를 원망해라 평생 저주해라"
"무슨 소리예요. 엄마, 나를 나아주고 내 어린 시절을 기쁨으로 채워준 엄마를 왜 원망하겠어요. 고마워요. 전 단 한순간도 원망하지 않았어요.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에요"
노인의 손자인 점원이 급하게 가족들에게 전화로 '할머니가 그토록 찾던 첫째 아들이 돌아왔다'라고 연락을 했고, 그 연락에 형제들은 태수를 보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태수 앞에서 오열했다. 다만, 몇 명의 형제는 미안함과 버려지는 것이 자신이 아니었음에 부끄러워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형제는 노인과 태수를 같이 껴안으며 울었다. 늦었지만 따듯한 만남이 끝나고 모두가 진정이 되자, 태수는 집에 전화를 걸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을 바로 이곳으로 내려오겠했다. 아내는 '어머니를 찾았다'는 그의 떨리는 음성에 기쁜 나머지 야밤에 아이들을 깨워 한 달음에 여수까지 내려왔다. 다음날이 되고, 노인의 가게는 하루 휴점을 했다. 그 이유를 출입문에 써두었는데, 그 이유는 '아들에게 김치찌개를 먹이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