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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Sep 26. 2024

(단편소설) 나의 작은 방(完)

방안이 답답해서 창을 열었다. 그러자 가을바람이 온 방안을 휘젓고 다녔다. 하지만 아직은 늦더위가 가시지 않을 계절이라, 바람은 시원했지만 그 끝은 텁텁했다. 나는 이내 창을 닫아 텁텁한 기운을 없애려 에어컨을 켰다. 벽에 달랑 걸려있는 에어컨은 달그락 소리를 내며 여전히 용맹함을 보이고 있다. 자신은 오래됐지만, 아직은 쌩쌩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늦여름의 습기로 가득 찼던 방안은 다시 시원한 상태로 돌아왔다. 이제는 아까처럼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3평 남짓한 방 안에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 심심할 때 나를 위로해 줄 게임, 만화책, 피규어, 소설, 담배, 술 그리고 어제 먹은 남은 음식과 식기류들이 그러하다. 거의 다 비워져 있는 그릇을 다시 쟁반에 담아 나는 방문을 최대한 적게 열고 그 틈으로 밖에 내다 놓는다. 그러면, 저녁에 어머니는 그 그릇에 음식을 채워 내 방 앞에 둔다. 이제는 가족 모두 익숙해져 있다.

      

 처음에는 실패였다. 계속되는 취업실패, 연예실패, 친구관계 실패 들이 모두 같은 날에 벌어졌다. 1년을 준비한 취업이 실패하고, 그 짜증을 여자 친구에게 냈다가 그대로 헤어졌다. 그 위로를 받기 위해 몇몇 친한 친구들을 만났는데, 내게 슬 때 없는 조언만 하길래 욕지거리를 퍼부은 다음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그다음 날 술에서 깬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부재중 전화에는 여자 친구와 친구들의 통화가 잔뜩 걸려있었지만, 나는 전화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무기력한 와중에 집에서는 취업을 하지 못한다고 아버지의 한 마디가 내 모든 문을 닫도록 했다. 어쩌면 내가 이런 생활을 하는데 도화선은 아버지였던 것 같다. 집도 아니고 방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2주를 넘겼을 때, 아버지는 화가 나서 내 방의 방문을 발로 있는 힘껏 차셨다. 방문이 부서지는 우레와 같은 소리가 수차례 나자 그제야 조용해졌었다. 그리고는 내게 밥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또 1주일이 흐르고, 이번에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제 저러다 죽는 다면서 밥이랑 물이라도 넣어주자’고 울면서 사정해서 겨우 먹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침대에 누워만 보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조금만 화장실이 방에 딸려있어서 용변처리가 가능했다는 것 정도다. 실패를 겪은 날로부터 꼬박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3년 동안 어머님은 내게 20만 원씩 용돈을 챙겨주시고,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택배를 이용해서 사고 있다. 술이나 담배는 인터넷으로 알게 된 사람들한테 웃돈을 주고 부탁한다.      


 누군가가 나를 본다면 한심한 외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름 이 생활은 규칙이 있다. 나는 아침 8시에 기상을 해서, 샤워를 한다. 머리카락도 방에서 주기적으로 잘라, 쓰레기와 함께 방 앞에 내놓는다. 그러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고, 좋아하는 만화를 본 다음에 독서를 한다. 독서는 만화책이 될 수도 있고, 소설이 될 수도 있다. 소설까지 다 보면, 이제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어제저녁 어머님이 내 앞에 놔둔 저녁식사를 먹고 남은 음식이다. 그렇게 식사까지 마치고는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을 한다. 게임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하는 스타일이다. 6시간 정도 게임을 한 다음에 가볍게 스트레칭과 운동을 하고는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잔다.   

   

 오늘도 그런 하루를 시작했다.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자주 들어가는 온라인 쇼핑몰을 둘러보고 있는데 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피규어가 한정판으로 판매한다고 올린 것이다. 가격은 50만 원이었다. 용돈은 이제 5만 원 밖에 남지 않았고, 그 돈도 담배랑 술 사는데 써야 하기 때문에 그 피규어를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고 어머니께 손을 벌리기에도 조금 민망해서 포기할 까 싶었는데, 나와 같은 처지지만 나와는 결이 다른 외톨이 모임 카페에 어떤 PD가 인터뷰를 한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그리고 인터뷰에 응하면 50만 원을 대가로 주겠다고도 써놨었다. 그 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롱으로 일관했지만 나는 고민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 인터뷰를 해서 돈을 받아 피규어를 사기로 말이다.      


 핸드폰은 택배문자를 받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는 용도 외에는 거의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PD의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고는 전화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3년 동안 누구와도 통화해 본 적이 없기에 전화는 하지 않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카페에 글 보고 연락드립니다. 인터뷰만 하면 50만 원을 주시는 게 맞습니까?」     


 글을 꾹꾹 눌러써서 보내고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과 연락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을 오늘에야 알 수 있었다. 바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상대방이 무시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을 잊고자 소주 한 병을 열었다. 보통 술은 저녁에 반주로 먹는데, 오늘만큼은 그 규칙을 깨고 한 잔 가득 소주를 부어 절반을 마셨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잔에 남은 모든 술까지 마신 뒤에야 PD에게 답장이 왔다.     


 「네, 맞습니다! 혹시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네, 가능합니다. 주제는 무엇인가요?」     


 사실 주제는 궁금하지 않았다. 은둔형 외톨이들의 삶 같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송을 통해서 멀쩡하게 사는 청년들의 자존감을 높여 시청률을 높게 만들 역겨운 계획이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은 한 치의 빗나감도 없었다.     


 「네, 저희가 이번에 취재하려는 것은 청년실업에 대한 부분이고요. 취업실패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청년들에 대해 인터뷰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얼굴공개하면 50만 원 드리고, 모자이크로 나가면 30만 원만 드리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얼굴 까겠습니다」     


 PD와 나는 몇 번 더 문자를 오고 갔고, 내일모레 내 방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3년 동안 내 방에 들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이방인의 방문과 내가 그런 약속을 잡았다는 것을 후회하며, 갑작스러운 우울감을 느꼈다. 나는 반 병정도 남은 소주병을 잔도 없이 입에 모두 털어놓고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누웠다.      


 소주 한 병에 취기가 올라와 머리가 아플 때쯤, 시계를 보니 오후 7시가 넘었었다. 저녁식사가 내 방 앞에 놓이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일어나 식사를 가져왔다. 그리고 밥을 먹으며 일단은 어머님께는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다 말고, 종이에 PD가 내일모레 찾아올 것이며, 나는 다큐멘터리 인터뷰를 할 예정이라고 써서 방문을 열고 종이를 밖에 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는 아버지가 역정을 내는 소리였다. 방문이 가려있어 무슨 소리하는지 확실히 들리지 않아 방문에 귀를 갖다 대었다. 그러자 ‘우리 집안 망신은 다 시킨다며’ 아버지의 목소리가 방문의 떨림을 통해 내게 전달되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그래도 아이가 뭐라도 해보려고 저러는 걸 텐데 우리 좋은 쪽으로 생각해 봅시다’라며 나를 변호했다. 나는 속으로 ‘오 불쌍한 어머니, 50만 원짜리 피규어 때문에 방송하는 걸 알면 많이 실망하겠지’라고 생각하며, 그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어머니는 내가 이번 PD인터뷰로 인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크신 것 같았다. 다음날 저녁 반찬은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닭볶음탕으로 준비해 주셨고, 저녁밥상 옆에는 깨끗하게 다려진 옷도 한 벌 있었다. 나는 식사와 옷을 챙겨 방으로 가져와 옷을 입어보았다. 약간 작았다. 아무래도 3년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았으니 살이 찌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까지 찌지는 않았는지 조금 타이트했을 뿐 입었을 때 이상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내일 있을 인터뷰를 위해 오늘은 저녁을 남기지 않고 다 먹고서는 바로 쟁반을 밖에 두었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환기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방에만 있는 사람이라지만, 오랜만에 오는 손님들에게 지저분한 인상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자주 쓰지 않는 방향제로 방 이곳저곳을 뿌리고, 지저분한 책상도 말끔히 치웠다. 그리고는 인터뷰에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8시에 눈을 떴다. 단 몇 시간 후에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생각에 떨리기는 했지만 어제처럼 엄청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지는 않았다. 그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약속시간이 다가왔고 10시에 딱 맞춰 그들이 집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님이 그들을 맞이했고, 이내 내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3년 만에 처음으로 방문을 활짝 열었다. 작은 키의 PD로 보이는 여자 한 명과 조연출로 보이는 내 또래의 남자 그리고 나이가 많이 보이며 머리가 벗어진 카메라맨까지 총 3명이었다. 방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어머니가 내 방 상태를 확인했다. 어머니는 생각보다 깨끗한 방에 놀라는 눈치였고, 이내 약간의 눈물을 보이셨다. 나는 그 눈물을 못 본 척하며, PD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연락드린 이태수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방이 생각보다 깨끗하네요”     


 PD는 약간 실망한 투로 이야기했다. 3년의 칩거였으면 좀 더 더럽고 냄새가 날 줄 알았나 보다. 오히려, 같이 온 남자 두 명의 땀 냄새와 살 냄새 때문에 내가 코를 찡그렸다. 그러자 그 둘은 잠시 내 눈치를 보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그냥 자리에 앉았다. 인터뷰는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질문들 수준에서 오고 갔고, PD도 나를 경멸하기보다는 안쓰럽다는 듯이 타이르듯 진행해서, 순조롭게 끝날 수 있었다. 나와는 1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고, 그리고 방 밖에서 어머니와 15분 정도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와 이야기하러 그들이 나갔을 때에는 내 방문은 다시 닫았다. 나는 밖에 상황이 궁금해서 방문에 귀를 대고 들어보니 인터뷰 내용은 거의 듣지 못하고 마지막에 PD가 어머니에게는 모자이크 처리를 해준다는 이야기만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가 떠나고 두 시간 정도 이따가 PD로부터 오늘 인터뷰 비용은 이틀뒤에 계좌로 입금해준다면서 내게 계좌번호를 묻는 문자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그래서 내 계좌번호를 문자메시지로 알려줬다. 그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3년 동안 가장 큰 사건을 하나 해치웠다는 생각에 어제처럼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돼 내이며 생각보다 남들과 어렵지 않게 이야기했다는 것에 놀랐고, 사람들도 나를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또 놀랐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3년 만에 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파인 주름과 흰머리 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쯤, 저녁상이 내 방문 앞에 놓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방문을 조금 열고 쟁반을 방으로 드릴 때, 쟁반 위에는 어머니가 직접 쓴 쪽지도 놓여있었다. ‘아들, 오늘 정말 수고했어’ 어머니의 투박한 글씨였다. 괜히 마음이 먹먹해졌다. 적당히 식사를 마치고, 쟁반을 한편에 두고는 침대에 누워 오늘 일을 복기했다. PD와의 대화, 어머니의 얼굴 등등 많은 생각이 오갈 때, 어쩐지 조연출과 카메라맨의 땀 냄새가 다시 내 코를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모두가 돌아가고 나는 환기를 다시 하고, 방향제를 많이 뿌렸는데도 말이다. 그 냄새는 잊히지 않고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된 것처럼 나를 괴롭혔다. 처음에는 불쾌했다. 더러운 냄새로 내 방이 더러워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주 한 병을 꺼내 절반을 잔에 부어 마시기 위해 손을 갖다 댔는데, 소주가 가득 든 ‘잔’이 내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그 ‘잔’을 외면했다. 그리고 입에 소주를 넣었다. 그러자 이제는 확실히 잔이 내게 무엇인가 말하려고 하는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잔’이 내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네가 본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시는데’     


 나는 마음의 소리를 외면했다. 그러자 또 들려왔다.      


 ‘너는 사실 카메라맨과 조연출의 땀냄새를 기다리는 거 아니야? 너도 할 수 있잖아. 인터뷰도 이렇게 잘해놓고선 궁상맞게 방에서 소주나 마시고 있는 거야?’


 이번에는 외면할 수 없었다. 방에는 분명 향긋한 향이 다시 감돌았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온통 그 땀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노동의 냄새, 일을 하는 자의 징표가 말이다. 모두들 일을 하는데 나는 여기서 3년 동안 무엇을 이뤘는지 나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하기 마저 민망했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 대학도 좋은 곳으로 갔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스스로가 너무 비참해졌다. 뺨에 뜨거운 무언가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평생을 흘려보지 못한 눈물이었다. 그때,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고, 거실에서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내용이 들렸다. 나는 늘 하던 데로 방문에 귀를 대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여보, 오늘 태수 방을 봤는데 너무 깔끔했어요. 그리고 향기도 나고, 그리고 태수도 살도 별로 안 찌고 건강해 보였고, 수염도 안 났고, 인터뷰할 때에는 말도 얼마나 잘하던지요”     


 어머니가 흥분하며 아버지에게 오늘 일을 설명했다. 집안 망신이나 시킨다고 핀잔을 주었던 아버지였기에 나는 당연히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숨죽여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였다.      


 “그래도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을 했나 보네”     


 아버지는 짧게 이야기하고는 더 이상 아버지의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다시 누웠다. 허공을 쳐다봤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리라 생각했다.     

 

 그러자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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