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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Oct 03. 2024

(단편소설) 일상생활(完)


 8월의 햇살이 7월의 햇살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도 가만히 그늘진 평상에 앉아 바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한가롭게 책이나 읽고 있다. 온갖 도시소음에 집중해서 책을 보는 것이 여간 까다롭지만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을 곁눈질로 볼 수 있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없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포기하지 못한다. 집에서는 책을 쓴다고 통보하고는 오늘같이 한량처럼 보낸 날이 벌써 몇 년이다. 이제는 포기한 듯 내가 나가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오히려 그 편이 더 편하기에 딱히 가족들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았다. 8시가 되면 작은 아파트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물 밀 듯 쏟아져 나온다. 그 장관을 보기 위해서는 7시 50분 까지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내가 아침 평상을 좋아하는 이유가 단순히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 사람들이 출근, 등교 혹은 병원 내원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올 때 또 다른 목적의 사람들과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보기 위함이다. 어제 아침에도 젊은 여자가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고 내려오다가 산책하던 개가 싼 똥을 밞은 일이 있었다. 


 그 여자는 개똥에 밀려 갸우뚱하며 하이힐이 벗겨지는 추태를 부렸다. 여자는 연신 욕을 뱉으며 하이힐을 고쳐 신고 있는데, 마침 근처에 산책하는 개와 개 주인이 있었다. 나는 아침부터 있는 개똥을 봤기 때문에 그 산책하는 개와 개 주인이 범인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젊은 여자에게는 그들은 이미 범인이었다. 젊은 여자는 하이힐의 불편함도 잊은 채 그 개 주인에게 뛰어가며 욕지거리를 했다. 가만히 있는 개 주인은 괜한 봉변을 당했다. 개 주인은 자신의 개가 싼 똥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이야기했는데도 이성을 잃은 젊은 여자는 욕과 함께 자기 말만 하기 바빴다. 그리고 질려버린 개 주인은 그 여자와는 더 이상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개를 들어 올려 그 자리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젊은 여자는 결국 자신이 생각한 범인이 맞았다고 생각했는지 도망가는 개 주인에게 계속 욕지거리를 하며 담배를 한 대 물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개똥을 들어 봉지에 넣고는 후다닥 다시 아파트로 들어갔다. 아마, 아주머니는 새벽에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개가 똥을 싸는 것을 봤지만 아무도 보지 않았기에 그냥 무시하고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개가 싼 똥 때문에 아침부터 시끄러워지자 부리나케 치웠던 것 같다. 어제 소동 때문인지 오늘 아파트 현관문 옆에는 큼지막하게 투박한 글씨로 ‘산책 시 개똥은 챙겨가 주세요’라고 종이가 붙어있었다. 어제의 작은 소동 때문에 개를 키우는 모든 집이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들어버렸다.   

   

 매일 같이 어제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곳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빠르게 아파트를 나오거나 녹초가 돼서 들어가는 사람들뿐이다. 그래서 어제 같은 일이 더 소중하다. 어제의 일은 간략하게 정리해서 노트에 써놓기는 했지만 지금 내가 준비 중인 소설의 어디 부분에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아쉽기만 하다. 나중에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을 소재로 작품을 작성할 때,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8시가 다가오자 한, 두 명씩 아파트를 빠져나온다. 어제의 그 젊은 여자도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내려와 정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오늘은 바닥에 똥이 있는지 없는지 계속 체크하며 가느라, 시선이 정면과 아래를 오가서 흡사 비둘기처럼 보였다. 그 뒤를 할아버지 한 분이 내려오셨다.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있는데 원목나무를 니스칠했는지 아침햇살에 반사된 반질반질한 느낌이 꽤나 고급스러운 느낌을 갖게 한다. 할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자주 나오시는 분은 아니다. 어쩌다 한 번씩 지팡이와 함께 나오시는데 몇 달 전 만해도 옆에 할머니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몇 주 전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몇 달 전과 지금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만, 몇 달 전 보다 조금 더 야위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게 걱정스러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할아버지가 느린 걸음으로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가자, 20살 안팎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담배를 물며 내 쪽으로 온다. 이 놈은 대학생인 것 같기는 한데, 머리는 빨간색으로 물을 들였고, 귀에는 번쩍거리는 은 귀걸이는 몇 개나 해놔서 흉하기 짝이 없다. 볼 때마다 한 마디 하고 싶지만, 괜한 시비에 걸리지는 않을까 싶어 그냥 놔두는 참이다.      


 “아저씨, 라이터 있어요?”

 “응, 여기 있어”   

  

 나는 갑작스러운 그놈의 물음에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라이터를 내어주었다. 내게 재빨리 라이터를 채가더니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내게 다시 돌려줬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놈은 그 한마디를 한 다음 내게서 빠르게 사라졌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좋은 놈일 수 도 있다고 잠깐 생각했다. 라이터를 다시 받고, 주머니에 넣으면서 지나가는 몇몇을 더 구경했다. 모두들 뭐가 그리 급한지 정문까지 뛰어다녔다. 아침 해가 제법 높게 떠서 이제 평상은 그늘로 모두 뒤덮었다. 그때가 되면 나는 허기짐을 느낀다. 이른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평상에 나왔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주린 배를 붙잡고, 담배를 한 대 물고는 천천히 음미했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피는 담배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며, 배고픔을 천천히 없앴다. 담배 한 대를 다 피우자, 이번에는 아기엄마와 아기가 유치원에 가기 위해 내려왔다.


 노란색 작은 책가방을 맨 아이는 엄마의 재촉에 못 이겨 손을 맡기고는 따라가기 바빴다. 아이는 그 와중에도 주변을 연신 살피며 무엇인가 재미난 게 없는지 찾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언제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질까 두려운 것인지 말은 하지 않고 고개만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나도 저 만한 나이 때, 세상에 참 관심이 많았다. 지저귀는 새들, 일렬로 떼 지어 움직이는 개미들, 숨죽이고 나를 바라보는 길고양이들 내게는 매일매일 새로운 자극이었던 샘인데, 이제는 그것들을 봐도 아무 생각이 없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작은 자극들에 반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괜히 심술이 날 때도 있다. ‘좀 더 순수했으면 글을 잘 쓰지 않았을까?‘와 같은 종류의 심술이다. 아이가 봉고차에 타자, 그 어미는 천천히 아파트로 들어갔다. 육아의 고단함이 등에서도 보였다.     

 

 또 몇몇 사람들이 아파트를 나와 정문으로 나가자 시간은 9시 30분을 가리켰다. 그러자 내 동생이 아파트를 빠져나오는 것이 보인다. 동생과 눈은 마주쳤지만 동생은 나를 못 본 것인지, 아니면 보기도 싫은 건지 고개를 홱 돌리더니 갈 길을 가버린다. 옛날에는 조금 더 친했던 것 같은데, 삶이 퍽퍽해서 그런지 동생도 많이 변했다. 이제 동생까지 나왔으니 집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제야 허기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는 얼마 읽지도 않은 책을 덮어 옆구리에 끼고는 담배와 라이터를 주머니에 챙긴 체 자리를 일어났다. 


 사실 지금 시간 때만 되면, 가끔 마주치는 원 노인이라는 분이 계신데, 그분은 내가 말동무라고 생각하는지 한참을 내 곁에서 본인 이야기만 하신다. 그 지겨운 이야기를 다 들으려면 아마 하루도 모자랄 것이다. 이야기에 재미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재미조차 없어서 재수 없게 잡히면 끔찍할 뿐이다. 마침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파트에서 원 노인이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빠르게 평상에서 내려와 신발을 고쳐 신었다. 원 노인은 느린 걸음으로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네, 벌써 들어가려는 가?”

 “네, 어르신 제가 오늘은 오전에 할 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고, 아쉽구먼” 

 “네, 어르신 저도 아쉽네요”    

 

 나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내가 아쉽지 않다는 것을 원 노인이 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별생각 없을 것이다. 나는 빠르게 원 노인을 지나 아파트 현관까지 갔다. 거기서 뒤를 돌아보니, 원 노인은 평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노인정 쪽으로 돌렸다. 처음부터 노인정으로 갔었으면 그런 수고는 안 하셔도 됐을 텐데, 이해는 잘 가지 않지만 나는 지금 배가 고프고, 또 그 지겨운 이야기를 들을 정도의 인내심도 없기 때문에 평상을 빠르게 나온 것은 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아파트 현관에 달려있는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러자 아침에는 없었던 ‘개똥 주의’ 종이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하지만 내게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고, 오로지 집에 가서 무엇이라도 먹을 생각에 엘리베이터 버튼만을 연신 눌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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