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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Oct 17. 2024

(단편소설) 졸업(完)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의 축축한 공기가 태수의 어깨에 내렸다. 주변에는 하루를 준비하는 시장상인들의 분주한 손짓만 허공에 맴돌고 있다. 하나, 둘 시장점포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시장상인의 온기가 노란 전구에 비쳐 번지고 있다. 태수는 시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자신이 찾고 있는 꽃집 앞에 멈춰 섰다. 50년 평생 꽃이라고는 사본 적이 없는 그였기에 앞에 서성이기만 할 뿐이었다. 꽃집 주인은 백발의 노인이었는데, 태수가 앞에서 서성거리던 말건 자신의 일을 했다. 긴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노인이 태수에게 물었다.   

   

 “뭐 사실라고요?”

 “네, 우리 아이가 오늘 졸업을 하는데, 꽃을 좀 사려고요”

 “아, 졸업꽃 찾으시는구나. 빨리 이야기하시지 날도 추운데, 일단 이리로 들어와서 여기 난로에 손 좀 녹여요”     


 태수는 노인의 배려에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자, 노인은 태수에게 재차 요구하자 그제 서야 들어가서 얼어붙은 손을 난로 앞에 가져다 놓을 수 있었다. 노인은 태수가 앉은 것을 확인한 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묵묵히 하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지금 이 앞에 꽃들을 정리해야 해서 이 것만 끝나고 준비해 줄게요. 커피 한 잔 하실래요?”


 태수는 노인과 그의 앞의 길쭉한 가지와 잔가시들이 많은 장미꽃 더미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다시 손을 난로 앞에 두며 이야기했다.    

  

 “괜찮습니다. 새벽인데도 일이 많으시네요. 저는 시간이 많으니까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노인도 더 이상 태수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오래된 꽃가위로 장미를 이리저리 자르기 바빴다. 새벽의 축축한 기운은 점차 떠오르는 해가 먹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시장은 태수가 왔을 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리어카, 오토바이 그리고 머리에 식사를 올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백반집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그 사이를 10살 정도로 보이는 애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태수가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하니 7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태수는 약간의 지루함에 노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다행히 노인이 정리해야 할 장미가 많이 줄어든 뒤였다. 노인은 자신을 향한 시선이 있음을 느끼고 잠시 옆을 곁눈질로 쳐다봤다가 태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자신이 손님을 너무 앉혀둔 것이 생각나서 미안한 마음에 말을 걸었다.     


 “그런데 오늘 누구 졸업식인가요?”

 “아, 우리 큰 애 중학교 졸업식입니다”

 “아이가 졸업해서 뿌듯하시겠어요”

 “네”     


 태수는 약간 씁쓸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노인은 태수의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등하며 장미 자르는 일에 다시 열중했다. 다시 5분의 시간이 지나고 가위를 ‘탁’ 작업대 위에 내려놓으며 그가 손목에 차고 있던 토시를 벗어던지며 태수에게 물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꽃은 어떤 걸로 드릴까요?”

 “제가 꽃은 잘 몰라서, 적당히 섞어서 주세요”

 “얼마 정도까지 생각하시고 오셨어요?”

 “한, 10만 원 정도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 졸업식에 10만 원은 좀 과하고, 한 5만 원 정도로 맞춰드릴게요. 충분히 풍성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노인은 능숙하게 몇 가지의 꽃들을 통에서 뽑더니, 꽃다발 만드는 천을 재단하여 금세 졸업용 꽃다발을 만들어 태수에게 건넸다. 오색찬란한 꽃들은 시장의 꿉꿉한 분위기와 맞물려 더 화려해 보였다. 자신의 작품이 만족스러운지 70살의 노인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태수에게 어떠냐고 물었다.     


 “좋은데요. 이쁩니다. 아이가 좋아하겠어요”     


 태수가 값을 치르고 나가려고 하자, 노인은 태수에게 ‘리본’을 달아준다며 꽃을 다시 건네받아 다시 능숙하게 리본을 달아주었다. 이제야 완성된 딸아이의 졸업식 꽃을 들고 시장을 나올 수 있었다.      


 태수는 차에 올라 꽃을 옆 자리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받은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며 졸업식 일정을 소리 내어 확인했다.    

 

 “OO중학교 강당, 졸업식 10시 시작.. 그럼 나는 11시쯤 만나면 되겠군”     


 태수가 혼자 중얼거린 후 시계를 확인하자 지금 시간은 7시 30분을 가리켰다. 시간은 이르지만, 혹시 모르니 졸업식을 진행하는 학교로 출발했다. 학교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졸업식은 2시간이나 남았지만, 학교 앞에는 꽃을 파는 상인들이 더러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사 온 꽃보다는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학교의 정문을 지나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다행히 자신보다 일찍 온 학부모는 없었는지 자신이 제일 먼저 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태수가 꽃도 사고, 학교도 도착하자 이제 허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근처에 마땅히 먹을 곳이 없는 관계로 그냥 참기로 했다.      


 9시가 되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등교를 하기 시작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먼저 교실로 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9시 30분이 되자 학부모의 차량이 물밀 듯이 쏟아졌다. 차들은 저마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들어와서, 갑자기 황량해 보였다. 시간이 많이 흘러 곧 졸업식이 시작시간 앞까지 왔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빠져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강당으로 향했고, 부모들은 차에서 내려 강당으로 향했다. 일부 늦은 학부모들은 뛰기까지 했다.      


 10시 30분이 되자 강당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오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나오는 아이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일제히 카메라를 들고 연신 찍어대기 바빴다. 그때, 태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빠,

 태수의 핸드폰 너머로 딸 미진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아빠, 어디야? 혹시 안 왔어?

 “아니야, 지금 주차장이야. 좀 늦었네, 지금 끝난 거야?

 -주차장? 내가 그쪽으로 갈게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태수는 꽃을 챙겨 차에서 나왔다.      

 “아빠”     


 딸 미진은 강당부터 뛰어 온 건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태수를 크게 불렀다. 태수는 그런 딸을 보고는 양팔을 들자 미진은 그의 품에 안겼다.  

    

 “아빠, 안 온 줄 알았잖아”

 “미안 조금 늦었어. 엄마랑 아저씨는?”

 “지금 강당 앞에 있는데 아빠 만나고 온다고 이야기하고 왔어”

 “그렇구나, 딸 졸업 축하해! 여기 꽃이야”     


 미진은 꽃을 받아 들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우와, 우리 반 애들 중에 내가 제일 이쁜 꽃을 받은 거 같아. 아빠가 준 게 제일 좋아!”     


 미진이 기뻐하자 태수는 흐뭇하게 미진을 바라봤다.     


 “아빠,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 아저씨가 스테이크 사준데, 아빠도 같이 가도 되냐고 물었는데 괜찮다고 했어!”     


 사실 태수는 졸업이 끝나면, 아이의 엄마와 그녀의 새 남편이 아이와 점심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혹시 자신과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동료 김 씨에게 10만 원을 빌려 주머니에 넣어놓은 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새 남편이 같이 먹자고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했다.      


 “아니야, 아빠는 또 일 하러 가야 해서 같이 못 갈 것 같아. 아빠랑은 다음에 먹자”     


 아이는 태수의 말을 듣고 눈물을 그렁거렸다.      


 “왜, 그냥 같이 먹으면 안 돼? 일 꼭 가야 해?”

 “응. 미안해 하지만 다음에 아빠가 꼭 맛있는 거 사줄게”

 “그래도....”     


 미진은 다 들어가는 목소리로 무언가 이야기하려 했지만 결국 말하지 못했다.      


 “그럼 우리 사진 찍자”

 “사진? 아빠가 지금 작업복이라. 좀 더러운데”

 “뭐 어때? 그냥 찍자”


 미진이 반 강제적으로 카메라를 켜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이제, 엄마한테 가, 주인공이 이렇게 자리를 비우면 예의가 아니야”

 “알았어 아빠....”     


 미진은 다시 풀이 죽으며 돌아섰고, 태수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태수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차에 타서는 한 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멍하니 앞만 바라봤다. 그때, 또 태수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당신, 졸업식 왔다며?     

 아이의 엄마의 전화였다.     

 “응, 방금 미진이 만나서 인사했어"

 -같이 점심 먹으러 가지, 미진이도 기대했는데

 “아냐, 바로 일하러 가야 해서 어쩔 수 없었어”

 -그럼 저녁은 어때? 미진이랑 오늘 저녁은 먹을 수 없어?

 “저녁은 괜찮지, 그런데 미진이는 오늘 저녁에 약속 없대?

 -당신이랑 밥 먹는다고 하면 있던 약속도 취소할 애야, 한번 전화해서 물어봐봐 그리고 꽃 이쁘더라 신경 많이 썼나 봐. 미진이가 좋아 죽으려고 해, 고마워

 “미진이가 좋아해서 다행히네, 오늘 점심 맛있는 거 사줘”

 -응 알았어     


 무미건조하게 아이의 엄마와 통화를 마무리하고 태수는 다시 주머니 속에 있는 10만 원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들어 미진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미진아, 이따가 아빠랑 저녁 먹을까? 혹시 약속 있니?」

 「아니 없어 아빠!」

 「그럼 이따가 6시쯤 연락 줄게」

 「응 기다릴게」

 「그래 점심 맛있게 먹고, 이따 보자」     


 태수는 핸들에 머리를 박고 크게 숨을 쉬며, 아이를 저녁에 만날 생각에 허기진 생각이 없어지며 이제는 6시까지 어디서 기다려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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