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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연으로 기억될 사람들

by 최명숙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을 수 없는 전화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다시 걸었다. 마찬가지였다. 서너 번 신호를 보내다 그만두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그의 주변 인물을 나는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어디에 물어볼 데가 없다. 답답한 마음만 커졌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이렇게 연락이 안 될 수도 있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한 달도 아니다. 보름 전에도 전화했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아 끊었다.


그는 아흔 살이 넘은 퇴역 대령이다. 월남전에 직접 참여했는데, 전쟁은 할 짓이 아니란 말을 강력하게 주창하던 그다. 육사 졸업 후 군 생활만 사십 년 가까이했다는 그는 한 살 아래 아내와 둘이 살았다. 아내는 나의 제자다. 우리 엄마보다 연세가 더 많지만 제자다. 그녀는 나의 제자라는 걸 기꺼워했다. 스승의 날 꼭두새벽에 축하 문자를 보내는 제자가 그녀였다.


스승의 날이 축하해야 하는 날인지 그건 모르겠지만 그녀는 해마다 문자를 보내 나를 흐뭇하게 했다. 그러다 세상을 떠났다. 지금까지 써온 글 중에서 수필과 시를 골라 다듬어 책 한 권을 출간한 후 반년 만이었다. 연세가 아흔둘이 되었고 지병 또한 몇 가지나 안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이 생경하지 않았다. 예정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으로 인식될 정도였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애석하고 가슴 아픈 거야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퇴역 대령인 그는 내게 말했다.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무엇을 놓고 그런 말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다 소용없다’는 말은 인생이 그렇듯 무상하다는 의미일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죽음도 삶도 다 소용없다는 말처럼 들렸으니까. 어쩌면 아흔 살이 훌쩍 넘은 나이에, 그것도 남자 노인이 혼자 남게 되었다는 것이 허망해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다. 역시 받을 수 없는 전화라는 의례적인 답변만 흘러나왔다.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딸이나 아들의 연락처를 물어보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안부 정도는 알 수 있을 터인데. 그렇게 정정해 보이던 그가 그녀의 죽음 후 ‘질마재 신화’ 속의 재처럼 폭삭 사그라져 버렸을까. 아니면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어 시설이나 자녀의 집으로 간 걸까. 그렇더라도 연락은 될 것인데, 아무래도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서너 달 전쯤이었다.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며 식사초대를 했다. 조용한 일식집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두 분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마치 부모와 자식처럼 도란도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했다. 식사량이 적은 그녀는 수시로 그녀 앞으로 나온 음식을 내 접시에 놓아주었다. 나는 주는 대로 받아먹은지라 위가 포화상태가 되었다.


“최 선생님, 내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할까요?”

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 재밌는 이야기 좋지요.”

나도 웃으며 입을 열도록 재촉했다.


그는 이번에 차를 새로 샀다고 했다. 그것도 아주 비싼 외제차로. 내가 미친 건지도 몰라요, 하며 그가 껄껄 웃었다. 그걸 놓고 친구들이 말했단다. 친구라고 해봤자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은 현재 셋밖에 없다고 했다. 한 친구는 정신 나간 짓이라며 혀를 찼고, 한 친구는 뜨뜻미지근한 모습을 보였으며, 한 친구는 잘했다고 했단다. 그 친구는 육사동기인데 재산 두었다가 뭣하겠느냐며 마음껏 한 번 써보라고 했다고. 그래서 일부 기부도 좀 했고 나머지는 다 쓰고 죽을 생각이란다.


“어때요? 내 생각이.”

“아주 잘하셨어요. 자녀들은 모두 장성했을 테니까요.”

“그럼, 그럼. 줄 만큼 주기도 했고요. 평생 우리 둘이 아끼고 아끼며 살았지요.”

그때 그녀가 끼어들었다.

“군인 아내로 얼마나 아끼고 아꼈는지 몰라요. 나도 장사에 뭐에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돈을 벌어 애들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했어요.”


그녀는 숨이 차서 가쁜 숨을 몇 번이나 몰아쉬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주차장에서 그의 차를 보았다. 값만큼이나 멋졌다. 내 차의 발렛비까지 내준 그가 그녀를 상석에 앉히고 출발했다. 꼿꼿한 허리, 유머 가득한 말솜씨, 노련하고 차분한 운전솜씨, 멋진 예절과 의식까지, 아흔 살이 넘은 노인이라곤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게 두 분과 한 마지막 식사였다.


그의 안부가 궁금하다. 그러나 도대체 물어볼 곳이 없다. 그분들과 인연이 여기까지일까. 불현듯 어디선가 소식이 날아올까. 그럴 일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아쉽다. 하지만 내 인생 여정 속에 좋은 인연으로 기억될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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