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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23. 2015

#99 선생님,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습니까

삐딱하니 책가방도 소설이고 터덜터덜 발걸음도 시구였다

스마트 폰을 꺼냈다.


순살 바비큐 통닭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는 팔목에 걸었다. 빵빵. 클락션이 울렸다. 비켜! 차가 내 뒤에 서서 신경질을 냈다. 나는 동공으로 쏟아지는 헤드라이트를 피해 길 가장자리로 비켜섰다. 작은 커피점 앞이었다.


커피는 시간 앞에 연약한 추억 같다. 풍미는 바람처럼 날아가버리고, 크레마는 인연처럼 사라진다. 갓 내린 에스프레소는 10초만 지나도 그 완벽함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나의 기억력도 마찬가지다. 나는 한 조각의 향기도 잃어버리기 싫었다. 그래서 스마트 폰을 꺼내 메모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조급한 마음으로 둔한 엄지손가락을 재촉하는 동안 문득 배우 문성근이 생각났다. 그의 아버지는 통일 운동을 했던 문익환 목사였다. 서슬이 퍼렇던 군부정권은 반체제 인사라는 이유로 문익환 목사를 체포했었다. 부도덕한 권력자는 기록 남기는 것을, 바퀴벌레가 빛을 꺼리듯 싫어한다. 그래서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법정에는 연필 하나 종이 한 장도 반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문성근은 그렇게 말했다. 그 재판을, 반드시 기록해서 밖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고. 밤에 집으로 돌아와 공판에서 오갔던 많은 말들을 기억에서 겨우겨우 끄집어 냈다. 우물 안으로 기어내려 가 손바닥으로 물을 퍼올리듯, 새어 나가는 기억력과 밤새 싸움을 벌였다고 했다. 


그의 절박함을 떠올리면서, 비슷한 심정으로 나는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두드렸다. 


귀한 자리의 귀한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대 국어교육과의 교수님, 여러 권의 책을 낸 소설가이자 시인, 학술단체와 소설협회 회장, 그리고 학교의 대 선배. 


우한용 선생님.


500ml 생맥주 잔 위로 건네주신 가르침들이 에스프레소의 크레마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고수의 가르침은 짧고 깊다. 스테디셀러가 되려면 콘텐츠의 압축도가 높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 더 경험이 쌓이면, 지금은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를 또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가르침이 내 안에서 스테디 할 수 있게, 기록해두어야 했다.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꼭 질문하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었다.


평생 학생들에게 글 쓰는 법을 가르쳐 온, 그리고 또한 40년 넘게 열정적으로 글을 써온 분이었다. 글쓰기에 대해 모든 것을 마스터한 흡사 '요다'같은 스승이었다. 하여 나는 선생님의 FORCE로 '루크' 만도 못한 나의 광선검을 고쳐주십사 하는 바람으로 쭈뼛쭈뼛 질문을 내밀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습니까." 


"이 방법 밖에는 없어. 많이 쓰고,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비평을 받는 거지. 글 쓰는 모임도 좋고, 블로그를 열어도 좋아. 자신의 글을 내놓아야 해." 


얼마 전 <청명시집>을 손에 들었다. 우한용 선생님 시집이다. 뒤켠의 발문에 68년, 대학생 시절 이야기가 있었다. 선생님은 사범대 문학회였다.


문학회는 매주 합평회를 열었는데, 합평회에 올라간 작품은 성하게 돌아가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무자비한 비평과 난도질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문학회 회원들은 뒤풀이 자리에서 안주 없이 카바이드 막걸리를 마시며 글을 논하고, 사랑을 논하고, 시대를 논했다.

"이념과 전쟁으로 빚어진 가족사며, 잘 안 되는 연애며, 잘 안 되는 문학이 눈물의 원천'인 시기였다." -<청명시집> 중에서

그리고 그 문학회를 거쳐간 선배들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승옥, 김지하, 이문열... 


그밖에도 문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 20~30명의 이름이 더 있었다. 많이 쓰고, 공개하고, 비판을 받는 것은 선생님이 저 문학사의 거목들과 함께 실제로 당신의 글을 싹 틔우고, 물을 주고, 바람막이를 하며 키워낸 방식이었다. 


"많이 쓰고, 자신이 쓴 글을 여러 번 읽고 또 고쳐야 해. 이것은 시다, 저것은 소설이다, 이번에는 수필을 쓴다. 이런 형식에 얽매이지 말아. 글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으로 쓰는 거야. 


스포츠와 글쓰기의 차이가 있어. 스포츠는 룰이 먼저지. 주어진 룰 안에서 무언가를 해내는 거야. 하지만 글은 내용이 우선이야. 형식을 먼저 잡으면, 나는 시인이다 소설가다, 이렇게 형식을 잡으면 거기에서 벗어나는 아이디어들은 깎아서 버린단 말이야. 그러지 마. 많이 써. 내용에 진정성만 담기면 돼. " 


많이 쓸 것.

형식이 아니라 내용으로.

오로지 많이 쓸 것.


많이 쓰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던 글귀들이 떠올랐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문장이란 양적으로 많이 쓰면 확실히 좋아진다.'고 했다. 김연수도 글쓰기를 묻는 기자에게 '삶은 재능의 크기로 결정될 것도 아니고, 얼마나 질기게, 원하는 것을 향해 시간을 투자할 것인가에 달렸다.'며 답했던 적이 있다. 뉴 베리상을 수상한 동화작가 게일 카슨 레빈은 어떤가. 그가 지은 <행복한 글쓰기>는 알록달록한 어린이용 책이지만, 거기에 실린 내용은 절대 어린이용 책이 아니다. <행복한 글쓰기>에는 '글을 잘 쓰는 비결'이라는 챕터가 나온다. 그 비결들은 아래와 같다. 

1.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많이 써야 합니다.
2.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많이 써야 합니다.
3.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많이 써야 합니다.
4. 많이 쓰고 싶다면 5분이 날 때마다 글을 써야 합니다. -<행복한 글쓰기> 중에서

많이 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김연수의 표현대로, 글쓰기 역시 삶처럼 '길게 보아 평준화되는 것'이라면 많이 쓰고, 많이 고치면, 차곡차곡 실력이 쌓일 것이다. 말콤 그래드웰 앞에 노력한 시간 뭉텅이를 던져주며

1만 시간이 맞는지 세어보라고 으스댈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다. 

궁금증이 일었다.


많이 쓰는데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글쓰기의 세상에는 두 개의 탑이 있다. 탑마다 성공한 대 작가들이 그득그득 들어있는데, 작업 스타일이 정반대다. 서로를 마주 보며 시카고학파와 케인즈학파처럼 으르렁대는지는 모르겠지만, 탑 아래 있는 '루크'는 어느 탑을 택해서 올라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첫 번째 탑을 차지한 사람들은 번쩍이는 금빛 넥타이핀을 자랑하는 회계사 같다. 그들은 철저한 설계도를 그려놓고 글을 쓴다.


<7년의 밤>을 쓴 정유정 작가의 작가 노트를 보면 차라리 형사의 수사 기록이나 영화의 제작일지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물 샐 틈 없이 꽉 짜여있다. 조앤롤링은 <해리포터>를 10년간 썼지만, <마법사의 돌>을 쓸  때부터 <죽음의 성물>이 어떻게  될지 디테일한 것들을 구상해 놓았다고 했다. 인기 만화가 강풀은 어떤 컷에 어떤 대사가  들어갈지까지 정한 후에야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한다고 들었다. 


두 번째 탑에는 진짜 작가처럼 생긴 사람들이 낡은 테이블 위에 맨발로 앉아 낡은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다. 그들은 몽상하는 천재 같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고, 구름 사이로 날아다니는 뮤즈의 치맛자락을 발견하고, 끌어내려와 지면에 앉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렇게 작업을 한다고 했다. 첫 장을 쓰고, 다음 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한다. 그리고 두 번째 장을 쓴다. 이야기가 어떻게  끝맺음될지, 하루키도 모른다. 다만 끝낼 수 있다는 믿음만 가지고 쓸 뿐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킹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소설이 흥미진진한 이유는 작가인 자신도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티븐 킹은 소설 쓰기를 땅 속에 묻혀있는 거대한 공룡 뼈를 발굴해내는 작업에 비유하며 '플롯'같은 거대한 도구는 뼈를 파내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강조한 적이 있다. 


광선검으로 어설픈 칼질을 시작한 '루크'는 내심 두 번째 탑이 끌린다. 소설 쓰기가 대차대조표를 짜거나 박사논문을 써내는 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피해갈 수 없다면 재미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루크는 요다에게 질문했다. 


"선생님, 하루키나 스티븐  킹처럼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합니까.  아무것도 없이 백지 상태에서 일단 쓰기 시작한다는 것이 과장은 아닌가요?


"글을 쓰다 보면 이런 경우가 있어. 등장인물을 중간쯤에서 죽일 계획으로 쓰기 시작했단 말이야. 그런데 써 나가다 보면 이 친구를 반드시 살려야 할 경우가 생겨. 그러면 살려낸 이후로는 계획하고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거지. 이런 경우를 극한까지 확장하면, 시작하면서 아무 계획이 없이 글을 써 나간다는 것도 가능해.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몇 살 때는 무얼 하고 몇 살 때는 무얼 하고. 빽빽하게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있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매 순간 인연 다가오는 대로 최선을 다해 살기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둘 중에서 누가 더 진정성 있는 삶을 사느냐. 그건 살아보아야 아는 거거든. 글도 마찬가지지. 


전에 박경리 선생을 만난 적이 있어.  그분이 토지를 20년간 썼는데, 시작할 때부터 20년 후의 줄거리를 구상하고 썼다고 볼 수는 없겠지." 


가능하다. 두 번째 탑에 올라가는 것도 가능하다.


선생님의 답을 들으며 중국 동진시대 대 여행가 법현이 떠올랐다. 법현은 60이 넘은 나이에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인도 여행길에 오른 승려다. 15년간 30개 나라를 여행하고 중국으로 돌아와 경전을 번역하고 불국기(佛國記)를 남겼다. 서기 399년의 이야기다.


대 여행 가는 길을 떠날 때, 어디 가서 무엇을  할지 미리 결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정이라기보다는 고민이라 부르는 편이 맞고, 아마도 무의미한 번뇌의 영역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저 떠난다. 그뿐이다. 그런 여행이 세상을 뒤흔든다. 

마지막으로 질문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우한용 선생님의 시집 <낙타의 길>을 보면 여행지에서의 기록이 빼곡하다. 그 많은 여행 시들을 언제 다 쓰시는 건지 궁금했다. 다산 정약용은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시를 읊었다고 들었다. 작가는 그래야 하나. 여행은, 글을 쓰기 위해 하는 것일까. 


선생님은 웃으며 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맛집이 어땠다, 무슨 볼거리가 끝내줬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한 감상은 좀 없어. 낙타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머리 속에서는 계속 낙타를 보고 있거든. 기차 간이든 벤치에서든 틈틈이 메모를 하고. 소설이야, 돌아온 다음에 쓰는 거지만. 시는 그렇게 메모하면서 쓸 수 있지. 다만 이렇게 하는 여행이 올바른 것인지는 모르겠어." 

생맥주 잔이 다 비워졌다. 일이 있어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죄송스러운 말씀을 청했다.


500ml 조그만 한 잔에 가르침을 꾹꾹 눌러 담아 마셨으니 압축도가 높은 콘텐츠다. 두고두고 꺼내보아야 할 나의 스테디셀러다. 선생님은 순살 바비큐 통닭을 손에 들려 주셨다. 집에 가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이 되라 하신다. 


"서양어와 동양어 각각 하나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해. 영어는 이제 다들 하니까 그거 말고. 중국어나 일본어 중에서 하나. 불어나 독어 같은 거 하나. " 


마흔이 되어 외국어 한 두개도 제대로 못하면 한심하지 않겠냐고, 작년 가을에 주셨던 서슬 퍼런 말씀이 생각났다. 검도도 평생 할 텐데, 일본어나 배워볼까. 안 그래도 유튜브 시합 동영상 보면 못 알아듣는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마침 스승의 날이라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받은 꽃다발과 선물 보따리를 한 짐 가득 들으셨다. 양 손에 나누어 들고 언덕 길을 올라가시는 뒷 모습을 보았다.


선생님은 커다란 책가방을 메었다. 양쪽 끈 길이가 맞지 않는지 삐뚤어졌다. 재킷 왼쪽 목덜미의 카라는 가방 끈에 짓눌린 채였다. 쉰 걸음 넘게, 멀어지는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삐딱하니 책가방도 소설이고 터덜터덜 발걸음도 시구였다. 


스마트폰을 꺼냈다. 

잊을세라, 메모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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