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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널하우스 Nov 27. 2024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말했다. '책임'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부분은 단 하나밖에 없다고. 그것은 바로 '책임질 것'을 요구받는 입장이 되지 않을 것. 사고를 당하거나, 누군가 피를 흘리게 되었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은 그 누구도 짊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재해를 복구하고 상처를 봉합한다 해서 사건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기억과 경험까지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떠한 문제를 '직접 책임'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는 방법밖에 없다. 


나무위키에서는 '자신이 행사하는 모든 행동의 결과를 부담하는 것'을 책임이라 한다. 이론적으론 무결하나 실천적으론 말이 안 된다. 법정에서 살인에 대한 책임을 물을 때,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선고받는다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진 않는다. 


강간범이 붙잡혀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 해서 피해자의 상처와 기억이 소멸되는 일은 결코 없다. 책임은 언제나 우리가 행사하는 행동의 결과를 스스로 부담할 수 없음을 역설한다. 단지 이쯤에서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길 간청하는 비대칭적 합의에 호소할 뿐이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혀 놓고서는 무지를 방패로 삼는다거나 자신의 모진 행위를 정당화하며 책임을 간접화한다 해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책임을 회피한 것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책임은 더욱 막중하게 돌아올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고 간접화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가장 추악한 타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만 무관해질 수는 없다. 나의 노력도 태만도 참여도 무관심도 모두 더해진 총합이 그러한 현실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상 감히 외부인 행세를 할 수는 없다. 그럴 바엔 차라리 누군가 상처 입지 않도록, 피를 흘리지 않도록 '내가 책임질 게'라며 나설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매 순간 크건 작건 책임은 불어난다. 책임은 무한히 증식한다. '무한책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없다. 책임을 간접화할 것인가, 아니면 될 수 있는 한 '직접 책임'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익명의 누군가를 살해할 것인가, 눈앞의 한 사람을 살릴 것인가.


책임을 짊어지며 살아가는 이상 분노도 추함도 비굴도, 평온도 고귀함도 용기도 지워지지 않고 남는다. 상처도 보람도 상실되지 않는다. 책임과 직면하는 순간마다 되뇌는 만트라가 있다.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나에게 이만큼 영험한 주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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