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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ccos Jan 21. 2021

유럽 축구 직관기 (3)프랑스 파리

네이마르가 부상이라고?

따뜻하고 열정 넘쳤던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한번 저녁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넘어왔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난 뒤 휴대폰 설정을 바꾸면서 무선 인터넷이 잘 터지는지 확인하고자 네이버를 켰을 때였다. 2019년 1월 프랑스 축구협회컵 32강 스트라스부르 전에서 발목을 부상 당해 3개월 동안 팀을 이탈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별수 있겠는가. 런던, 바르셀로나에서와 마찬가지로 경기까지 남은 날들을 즐기며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프랑스에서도 역시나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렀는데 매우 큰 건물이었다. 방은 6명이 사용했지만, 건물 자체는 아주 고급스러웠고 규모가 컸다. 우리는 4층을 이용했는데 프랑스는 건물이 1층이 아닌 0층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사실상 5층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엘리베이터가 필수가 아니었는지, 20kg이 넘는 캐리어를 들고 낑낑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짐을 풀고 파리에서 꼭 들려야 할 장소를 추렸다. 파리의 3대 미술관 중 루브르 박물관퐁피두 센터를 방문하기로 했고, 국내에는 몽마르뜨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사크레쾨르 대성당과 2019년 4월에 일어난 큰 화재로 당분간 다시 볼 수 없는 노트르담 대성당, 개선문에펠탑 등 유명한 곳은 전부 둘러보기로 했다. 여기저기 둘러볼 곳은 많은데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았으므로 한국에서 미리 파리 뮤지엄 패스를 구입해 가져갔다.

좌측부터 노트르담 대성당, 에펠탑, 사크레쾨르 대성당 [촬영 iphone xs]

파리에서는 특이하게 유니폼을 길거리에 깔아두고 판매하는 젊은 상인들이 많았는데 단돈 25유로에 PSG 선수들은 물론,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같은 유명 클럽 선수들의 유니폼도 팔고 있었다. 오피셜 패치에 혹하는 바람에 잠시 구경했지만, 이렇게 싼 가격에 파는 유니폼이 정품일 리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발길을 돌렸다. 우린 갈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놀라움을 느꼈던 장소는 퐁피두 센터였다. 알록달록한 건물의 철골들이 전부 밖으로 드러나 있었고, 배수관, 통풍구 등 건물 내부에 있어야 할 시설들도 밖으로 나와 있어 언뜻 보면 짓다 만 건물처럼 보였다. 퐁피두 센터는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전이 열리는 현대 미술관이었는데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센터 앞 광장에서는 길거리 예술가들이 색다른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피카소의 그림을 눈앞에서 생생히 볼 수 있는데, 현대 미술과 예술에 무지한 나조차도 탄성을 내뱉을 만큼 특색 있었다.

퐁피두 센터 [촬영 iphone xs]

퐁피두 센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배가 고파진 친구와 나는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주 유명한 프랑스 가정식 식당에 도착했다. 여행 막바지라 돈을 아껴 써야 했던 우리는 비교적 저렴한 음식을 주문했다. 토마토소스를 이용해 끓인 국물에 바게트와 치즈가 들어간 그라탱과 유명한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를 주문했다. 두 음식 모두 약간 거부감이 드는 생김새였지만 맛은 아직도 기억에 남을 만큼 독특하고 또 맛있었다. 이 식당의 종업원들은 아주 친절했는데, 동양에서 온 남자 두 명이 신기했는지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한국말을 알려줄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보며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물론 식사는 방해하지 않았다.) 함께 기념 촬영까지 마치고 난 뒤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왔다.


PSG와 스타드 렌의 경기는 1월 26일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25일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과 개선문, 에펠탑을 몰아 보기로 했다. 자세히 둘러보는 것보다 다양하게 보고 싶었다. 바쁘게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는 도중 휴대폰에 설치해 둔 PSG 공식 애플리케이션에서 알림이 왔다. ‘시위로 인해 경기는 하루 뒤인 27일로 연기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2018년 연말에 일어난 ‘노란 조끼 운동’이라는 시위였는데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일어난 시위였다. 시위대의 대규모 행진, 혹은 과격한 행동에 피해를 볼 수 있으니 되도록 26일에는 안전에 주의하라는 뉴스도 보았다. 경기가 하루 밀린 만큼 26일 하루를 더 얻은 우리는 프랑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베르사유 궁전을 방문하기로 했다. 26일 베르사유 궁전에 대해 할 말이 정말 많지만, 요약해 이야기하자면 비가 아주 많이 왔고, 개장 시간을 잘못 알아간 탓에 내부는 구경도 못 했으며, 숙소에 돌아오는 길은 지하철을 포함한 대중교통이 갑자기 운행하지 않는 바람에 2시간가량 걸어야 했다. 지칠 대로 지쳐 젖은 생쥐 꼴이 된 우리는 근처 식료품점에 들려 장을 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시위대와 싸운 것이 아닌지 의심도 들었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챙겨온 봉지라면과 김치, 소주로 저녁을 때웠는데 유럽에서 맛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먹었던 뽀글이와 소주, 김치 [촬영 iphone xs]

Today is Match Day

드디어 마지막 경기다. 비록 네이마르는 나오지 않지만 생제르맹에는 스타 선수들이 즐비해 있다. 아쉽긴 해도 기대가 되었다. 축구에 전혀 관심 없는 친구 녀석은 티켓값이 부담스러웠는지 이날 하루만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로 각자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방을 둘러보니 친구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일찍 나갔나 보다. 정오를 살짝 넘긴 시간에 샤워를 마치고 셀카봉과 경기 티켓, 추운 날씨였기에 한 겹 더 껴입을 옷을 챙겨 파르크 데 프랭스로 걸음을 옮겼다. 경기 시작 한참 전에 경기장에 도착한 나는 여기저기 둘러보고 싶었지만, 전날의 시위 때문인지 경계가 삼엄했다. 원래 경기가 열리는 매치데이에는 구단에 따라 출입 가능 지역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이날 나는 경기장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구장 직원분께 여쭤보니 역시나 어제의 시위 때문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심심한 사과를 받고 나는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맥주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나라에는 '블랑'으로 알려진 맥주. 이곳에서는 '크로넨버그'라고해야 알아듣더라. [촬영 iphone xs]

그렇게 시간은 흘러 킥 오프 시간에 가까워졌고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이 되자 나는 곧바로 메가스토어로 이동했다. 역시 물가가 비싼 파리라 그런지 바르셀로나와 유니폼 가격이 달랐다. 똑같은 나이키 유니폼임에도 불구하고 생제르맹 선수들의 유니폼 가격이 10~15유로 정도 비쌌고,  번호와 이니셜 마킹 비용이 별도로 추가되었다. 가격과는 별개로 파리의 메가스토어는 상당히 고급스러웠는데 선수들의 라커룸을 연상시키는 장식과 어두운 벽지, 밝은 조명이 웅장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짧지 않은 시간을 기다렸다가 들어간 메가스토어라 빈손으로 나오기 아쉬웠다. 결국 큼지막한 앰블럼이 박힌 볼 캡 하나를 구매하여 머리에 쓰고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PSG의 메가스토어 내부 모습. 마치 라커룸 같다. [촬영 iphone xs]

스타드 렌과의 리그 경기는 그다지 중요하거나 큰 매치는 아니었지만,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PSG였기 때문에 관중석이 제법 들어찼다. 함께 경기를 보러 온 노부부, 아들과 함께 온 아버지, 동네 친구들끼리 온 듯한 무리 등 우리나라 K리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오늘만큼은 혼자였지만 양옆에 앉은 아저씨들과 선수들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외롭지 않았다.


이날 파리 생제르맹은 에딘손 카바니의 멀티 골과 디 마리아, 음바페의 골로 4-1 승리를 거두었는데 선수들의 엄청난 몸놀림에 매우 놀랐다. 카바니 선수는 말랐지만 거대했고, 디 마리아와 음바페는 상상 이상으로 빨랐으며 부폰은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특히 음바페 선수를 보고 많이 놀랐는데 특유의 체형 덕분인지 빠르면서도 힘이 엄청났다. 정말 ‘닌자 거북이’를 보는 듯했다.


선수들이야 잘하는 걸 알고 있었고, 나를 더 놀라게 했던 건 장내 아나운서였다. 선발 라인업을 읽을 때부터 목을 전혀 아끼지 않고 있는 힘껏 선수 이름을 외쳤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전반 7분 에딘손 카바니가 득점에 성공하자 장내 아나운서는 천둥 같은 목소리로 “에딘손”을 외쳤고 경기장에 모인 4만여 명의 관중은 “카바니”를 외쳤다.

“앙헬” - “디 마리아”

“킬리안” - “음바페”

“에딘손” - “카바니”

정말 열정적이었다. 일방적인 경기였지만 관중들의 집중력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모두 목이 터지라 응원가를 불렀고, 선수들은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다. 네이마르? 사실 경기 보는 내내 잊고 있었다. 너무도 즐거운 경기였다.

파리와 렌 경기의 티켓 [촬영 iphone xs]

다음 날 아침 친구는 다음 목적지인 로마로 향했다. 나보다 돈을 더 모았던 녀석은 파리에서 다시 로마로, 로마에서 다시 스위스로 향할 예정이었다. 나는 런던으로 돌아가 하루 더 묵고 인천행 비행기를 통해 무사히 귀국했다.


돌아보니 꿈같았던 여행이었다. 중계 화면에서, 혹은 게임 화면에서 보던 선수들을 불과 몇십 미터 앞에서 볼 수 있었고, 화면에 잡히는 것보다 훨씬 역동적인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K리그 직관이나 국가대표 A매치 직관과는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가 함께 같은 팀을 응원하고, 토론했다. 어찌 그리 잘 아냐고 놀라는 어르신들도 있었고, 손흥민과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라는 이유로 함께 사진을 찍자는 친구들도 있었다. 과거부터 축구 경기장은 ‘융화’를 상징했다. 오늘날에서야 경기장에 스카이라운지와 스카이 박스가 생겨 그 의미가 다소 퇴색되었지만,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 구분치 않고 한 공간에 모여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한목소리를 내는 유일한 장소이다. 해외여행이 보편화 된 지금은 국적조차 상관이 없어졌다. 출신조차 따지지 않고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되는 값진 경험이었다.


우리가 경기장에 가는 이유, 바로 이런 생소한 감동에 중독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여행, 티케팅 관련 궁금하신점은 sw3773@naver.com 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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