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하는 이유
남편과 나의 정치성향은 매우 확고하다. 얼마나 확고한지 좋아하는 정치인 팬클럽에서 만나 결혼까지 했을 정도다. 우리 부부는 20년째 유시민 작가님의 팬이며 작가님이 가입했던 정당에 늘 함께했다. 현재 유시민 작가님은 어느 정당에도 당적을 두지 않고 있지만 심정적인 민주당 지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으며 우리 부부는 민주당 당원이다.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뉴스들 중 정치뉴스에 가장 관심이 많으며 대화의 주제 절반 이상도 정치가 차지하고 있다.
아이를 낳기 전, 우리가 가진 확고한 정치적 신념이 아이에게 과연 좋은 영향을 줄지 아닐지를 걱정했다. 강한 신념은 반드시 반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이라면 더더욱. 노력한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정치성향을 강요하게 될까봐 겁도 났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낳은 후에도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이 부분을 조심하자고 다짐했다.
이 다짐은 12월 3일 계엄이 터진 후 무너졌다. 평소 뉴스를 보더라도 아이가 있을때는 강한 의견을 표명하는 것 조차 망설였는데 너무 답답하고 화가나 견딜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엄마아빠의 정치적 성향, 죽었다 깨어나도 국민의 힘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 윤석열 대통령이 시행한 계엄이 왜 내란이며 현재의 대한민국이 어떤 상황인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직 만 8세,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될 예정인 아이에게는 어렵고 복잡한 주제였다. 그럼에도 엄마아빠의 감정에 쉽게 물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유가 있으면 비판이지만 이유없이 감정적으로만 욕을 하면 비난이 된다. 아이가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윤석열을 미워하고 민주당이 좋다고 말하는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걱정하던 와중, 남편이 아이와 함께 나눈 대화를 전해주었다. 민주당이 자꾸 좋다고 하길래 정당은 그 정당이 하려는 일에 동의하는게 곧 좋아한다는 의미라고 말해주었다며.
“민주당은 평화를 중요하게 여겨서 북한 같은 나라도 잘 달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사는걸 중요하게 여겨서 돈 많고 힘있는 사람들이 가진걸 좀 더 내놔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당이야.”
“국민의 힘은 힘이 있어야 평화가 있다고 생각해서 힘있는 나라하고 친하게 지내서 북한같은 나라가 우리에게 함부로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은 자기 능력대로 일을 열심히 해서 그렇게 된 거니까 가진걸 나눠달라고 하면 그 사람들이 억울해 한다고. 그리고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은 그만큼 능력이 없고 게을러서 그런거니까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정당이야.”
남편은 이렇게 설명한 후 어느쪽에 더 동의하냐고 물으니 아이가 민주당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남편은 다시, 네가 엄청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자면서 국가가 네가 번 돈을 더 많이 가져가면 억울할 것 같지 않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엄마아빠가 가난해서 그렇게 된 걸 수도 있잖아.”
남편은 너무 놀랐고 전해들은 나도 깜짝 놀랐다. 가난이 계급에 의해 세습된다는걸 이해하고있다니! 우리가 아이를 정말 마냥 어리게만 봤구나 싶었다.
남편은, 그러면 진짜 자기가 너무 게을러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 라고 물었다. 아이는 그래도 도와야 한다길래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도 죽으면 안되니까.”
남편은, 인류 문명이 몇천년동안 치열하게 고민해 사회적으로 합의한 것을 우리 아들이 직관적으로 알고있었다며 감탄했다고 전해주었다. 나도 아이의 대답을 전해듣고 벅찬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약한사람들을 국가가 보호해야한다는걸 직관으로 알고 있었다니, 내 아이가 이만큼 자랐다니. 이만큼 잘 자라준 아이가 그저 고마웠다.
요즘 10대 남자아이들이 저지르는 범죄뉴스나 2030 남자들의 극우화 현상을 보며 아들키우는 부모로서 걱정이 많았다. 지금은 부모의 말에 귀기울여 주지만 어느순간 더 이상 우리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고 아이만의 세계가 확고해질수록 부모가 개입하기란 점점 어려워질 수 있을테니까. 아이의 독립성이 강해질수록 어떤 커뮤니티에서 어떤 사람들의 글을 읽고 누구를 만날지를 더 이상 우리는 통제할 수 없다. 그래서 늘 두려웠다.
아이가 10살인 지금,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이정도 이해하고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불안은 조금 내려놓으려고 한다. 앞으로도 더 많이 대화하며 우리 부부또한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아이가 가진 약자에 대한 마음과 태도가 변하지 않고 더 확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싶다. 그것은 말로 가르칠 영역은 아닐 것이다. 유시민 작가님 말씀대로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건 부모의 삶 뿐일테니 말이다.